나는 일보다 사람을 더 타더라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6

by 노루

내가 그 선배에게 그런 망언(이렇게 좋은데 왜 그만두냐는)을 뱉어냈던 것은 그 선배와 정말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뼛속까지 내향인이었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진심으로 좋아했다. 어떤 역경이 있어도 믿을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면 견딜 수 있어지는 사람. 남들이 힘들어할수록 나는 더 힘을 내서 힘내보자, 좀만 참아보자 하는 사람.


우리 팀은 딱 네 명이었다. 내 사수이자 팀장님, 선배가 둘. 다들 남자들이라서 다른 팀에 있던 선배들이 나를 걱정했다. 거기 팀장님 괜찮냐, 그 팀 지낼 만하냐, 그런 말들이었다. 실제로 팀장님의 평판은 여러 모로 좋지 않았고, 팀 자체가 폐쇄적인 분위기였다. 다들 팀장님 욕을 하고 팀원들의 욕을 해도 나는 입 꾹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했다. 들고 나는 사람들이 많은 회사라 팀 구성도 자꾸 바뀌었다. 다른 팀원들이 들어오고, 언니도 들어오고 친구도 들어오고. 그래도 나는 우리 팀이 제일 좋았다. 팀이 갈라지고 동생도 들어오고. 다른 팀이 되어도 나는 그냥 그대로일 줄 알았는데 나는 생각보다 그런 걸 못 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회사생활의 첫 고비가 그때 찾아왔다. 팀이 갈라지기 직전에.


이제 팀장님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상품설명서를 보면 콘텐츠를 쓸 수 있게 될 때쯤이었다. 내가 콘텐츠의 월간 계획과 주간 계획 칸을 다 채울 수 있게 될 쯤이었다. 컨펌이 순조로워지고, 모든 게 맞아간다고 생각했다. 나 이제 일 할 수 있나 보다. 그때부터 팀장님은 슬슬 내 손을 놓았다. 콘텐츠 회의가 끊기고 클라이언트의 간단한 피드백만 오갔다. 나는 거의 혼자 콘텐츠를 기획하고 썼다. 그러다 막히는 콘텐츠가 생겼는데, 진짜 길이 안 보였다. 클라이언트는 콘텐츠에서 뭔가 계속 아쉬워했고 나는 그게 뭔지 잡아내지 못했다. 컨펌이 지체될 때마다 나는 좀 많이 불안했다. 내가 잘하는 건 글 쓰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그런 상황은 정말 좋지 않았다. 나는 자꾸만 내 속을 파먹고 좌절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곤 했다.


그 와중에 제일 답답하고 스트레스였던 건 그런 상황임에도 팀장님이 아무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클라이언트와 매일 통화하면서도, 다른 바쁜 일도 없으면서도(이건 내 뇌피셜) 그랬다. 나는 완전히 방치당했다고 생각했다. 그건 내가 원망을 갖거나 억울해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회의실에서 문제가 된 콘텐츠의 방향성을 처음부터 다시 정하다가 바보 멍청이처럼 눈물이 핑 돌고 만다. 나는 뭔가 직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같이 클라이언트를 담당했단 사수가 나에게 일언반구 말도 없이 담당을 그만두겠다고 말하기 몇 주 전의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팀장님은 팀을 놓고, 클라이언트를 놓고, 체스 판에 올려진 장기 알처럼 요상한 모습으로 다른 팀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두세 팀을 떠돌게 된다.


첫 사회생활을 이끌었던 팀장님과 팀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졌던 것 같다. 나는 그 팀에서 완전히 소속감을 가지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내가 잘못되어도 팀이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팀의 누군가가 잘못되더라도 같이 도와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그 이후의 어느 팀에서도 그렇게 마음을 놓지는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입사할 때 회사에 있던 인원의 80%가량이 퇴사한 상태였다. 고작 1년 반만의 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고 항상 긴장되어 있어야 하는 게 회사였는데 그걸 몰랐다. 사회는 그렇게 항상 불편하고 조심해야 하는 곳인데, 나는 팔자 좋게도 다르게 생각했던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진심으로 서로를 생각하고 위하고 그렇게 따뜻할 줄 알았던 거다. 그 상태로 맞이한 연말 입찰 시즌은 그 전과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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