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7
내 딴에는 중요했던 이 일들이 일어나는 데에는 불과 3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뭘 먹고 속이 더부룩한데 그게 뭔지 전혀 알 수도 없고 해결법도 오리무중인 사람처럼 답답한 상태였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정들었던 내 팀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는지, 내가 세 번이나 팀을 더 옮길 수 있는지, 원래 팀의 팀원들과 이유도 없이 미묘하게 서먹해질 수 있는지, 새로 만난 여전히 친절한 다른 팀원들은 어째서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없는지, 왜 새로 팀장님이 된 사람들은 줄줄이 두 명이나 그만두는지. 그러고 나서 새 팀장으로 들어왔다는 사람은 왜 사장님의 조카인지, 그런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회사를 떠나는 이들에게 왜 떠나느냐고 묻지 않게 되었다. 그냥 좋은 데 가시라고, 그렇게만 말했다. 그즈음의 나는 직급도 달고 월급도 올라 웬만하면 200만 원이 넘는 돈을 가져갈 수 있었다.
급여명세서를 보고 있자면, 연차제도 다음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것이 야근수당이었다. 우리 회사는 야근수당이 좀 이상했다. 8시까지 남으면 저녁 식대로 몇 천 원을 주었고, 그러고 나서 9시까지 일하면 수당을 주었다. 10시까지 일하면 두 시간치 수당이 나왔다. 근데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제 수당은 없다. 열한 시까지 일해도, 열두 시까지 일해도, 다음날 새벽 한 시, 두 시가 되어도. 입찰 시즌에는 보통 11시에서 1시 사이에 퇴근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야근했는지와는 무관하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수당은 하루에 2만 6천 원이 최대였다. 근데 입찰은 제출기한이 정해져 있으니까 별 수 없었다. 다들 그렇게 포괄임금제에 뒤통수를 맞으며 일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래도 그냥 어느 회사는 수당 없는 곳도 있다던데 뭐, 하며 애써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는 퇴근해서 씻고 바로 잤다. 내가 늦으면 어떻게든 기다리며 재촉전화를 하던 엄마도 시간이 지나자 불 꺼진 안방 안에서 숨소리만 들려주었다. 나는 그즈음 가끔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줄줄 났다. 왜 나는 집에 와서 자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지, 이상한 무력감이 들었는데 그마저도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그리고 눈 뜨면 출근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2월은 야근이 정말 너무 많아서 주말에 오랜만에 얼굴을 본 엄마아빠가 내 얼굴이 너무 노랗다고 놀랐다. 나는 원래 얼굴이 노란데, 하고 거울을 봤는데 진짜 얼굴이 무슨 은행잎처럼 노랬다. 하도 회사 밑 김밥집에서 밥을 많이 먹어서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나는 맛있는 걸 먹으면 충전이 되는 사람인데 그 밥집에서 메뉴 도장 깨기를 해도 충전이 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저녁을 거르고 열한 시가 다 되어 퇴근해서 엄마한테 밥을 달라고 했다. 흑미와 잡곡이 가득 들어 시커먼 엄마밥을 멸치볶음과 먹는 데 또 막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밥은 아직도 내 인생 밥이다. 밥이라는 게 그렇게 촉촉하고 찹찹하고 뜨끈할 수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건 2월 급여명세서를 보고서였다. 그때 내 기본급이 200만 원이 살짝 안 됐는데 그 달의 극심했던 야근은 내가 견디지 못했다. 문제는 12월에도 1월에도 야근은 계속 있었지만 2월에 특히 심했다는 거다. 그리고 아마 3월에도 계속해서 야근은 있을 거라는 사실이었고. 나는 이 정도로 힘들고 정신이 피폐해지면 아무리 못해도 내 월급이 250만 원은 찍혀야 그래도 보람 있었다고 생각될 것 같았다. 그전까지 야근수당을 다 더했을 때 찍히는 월급은 210만 원에서 230만 원 사이였다.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열어본 급여명세서에 찍힌 금액은 245만 원가량. 가슴속 저기 어딘가에서 빈 밥그릇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텅.
지금 245만 원에서 당시 기본급을 제하고 남은 추가수당을 계산해 보니 나는 그 달에 18.4일을 야근했다. 2월의 영업일은 18일이었다. 주말에도 출근했다는 뜻이다. 나는 그때 뭔가 놓아버렸다. 남자친구에게 카톡 했다. 나 퇴사해야 될 것 같아. 남자친구가 그랬다. 잘 생각했어. 남자친구는 그때 '드디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내가 너무 오래 버틴다고 생각했단다. 그전부터 그만두라고 말은 했는데 나는 내가 보고 겪어야 결심하게 되는 스타일이라 아무리 말해도 먹히지가 않았다. 새하얀 사직서 양식이 내 앞에 놓였을 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커다란 빈칸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심호흡을 하고 이름과 날짜와 소속을 적고, 퇴사사유 란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 적었다. 개인사유.
내 퇴사사유는 겉으로 보기엔 잦은 야근이었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새벽 다섯 시까지 야근하고 해 뜨는 걸 보면서 집에 갔다. 죽은 듯 네 시간을 채 못 자고 다시 수정할 장표를 받기 위해 팀에서 제일 먼저 출근했다. 내가 집이 가까우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피곤해하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 그날 제안서 제출을 끝내고 다가온 퇴근시간에 피곤에 쩌든 나를 사장님 조카인 새 팀장님이 붙잡아 밥을 먹고 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전날 나보다 훨씬 일찍 퇴근하고 그날 나보다 훨씬 늦게 출근했다. 싫어서 거절했는데 계속 먹고 가라길래 밥을 먹었다. 노래방을 가야 한단다. 나는 그때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다. 노래방 앞에서 가방끈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대치상황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즐거워 보였다. 진짜 즐거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노래방도 끌려 들어가고 그러고 한 시간 넘게 그 네모난 방에 있다 나온 기억이 선명하다.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내 퇴사사유는 직장 내 인간관계에 대한 본인의 과한 기대와 그로 인한 실망, 아니 절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