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9
새 회사는 식품 제조업체였다. 공장은 지방에 있고 사무실은 경기도에 있는. 생산이나 출고, 구매, 물류 등의 업무는 공장 근처에 있고 영업과 영업 거래처의 재무업무는 수도권에서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우리 사무실에는 연세 지긋하신 회장님이 계셔서 모든 생활을 같이 했다. 홍보나 마케팅을 하는 팀은 없었다. 나는 왠지 영업팀 소속으로 자리를 잡아 브랜디드 채널을 만들고 콘텐츠를 올리며 방문자를 쌓았다. 그러면서 네이버에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오는 우리 제품의 후기를 만들기 위해 제품 체험단을 기획했다. 사장님이 오시면 일주일치 업무를 보고하고 새로 진행할 업무 기획안을 발표했다. 구두로 허가가 떨어지면 기안서와 품의서를 올렸다.
항상 사장님께 보고하고 진행여부를 확인한 뒤에 전자결재를 올렸는데 재무팀에서는 내가 돈 쓰는 걸 탐탁지 않아 했다. 이거 왜 돈을 이만큼이나 써야 해? 그런 질문이 매번 따라왔다. 어디에 얼마가 드는지 견적서와 다른 업체와의 비교 견적을 다 올려도 그랬다. 이거 꼭 해야 해? 효과 있는지 어떻게 알아? 나는 분명히 SNS와 온라인에서 제품 마케팅을 할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업무를 하려고 하면 뭐가 자꾸 걸리는 게 많았다. 실무 팀장들은 하라는 업무를 재무팀에서는 꼭 눈치를 줬고, 그때마다 같은 사무실에 멀쩡히 앉은 팀장님도 팀원들도 그저 못 들은 척했다. 이게 무슨 분위기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니 재무팀에서 회장님 결재를 다시 받아야 해서 발생하는 모든 지출을 경계했고, 실제로 비용에 인색한 건 회장님이었다. 회장님은 발로 뛰면 매출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서 컴퓨터 앞에 앉아 돈을 쓰는 게 왜 필요한지 항상 이해하지 못하셨다.
사실 그 생각은 사장님도 비슷하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장님에게는 30년 전, 어느 한 제품을 편의점에서 크게 성공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비결 역시 발품이었다. 있는 편의점을 다 돌아다니며 제품을 맛 보여주고 해서 입점시켰다고 했다. 1980년 후반 어느 날의 이야기였다. 사장님은 이 얘기를 한 달에 두어 번씩 주기적으로 했다. 아주 뿌듯한 얼굴을 한 채였다. 그 얘기를 할 때 사장님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생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젊은 날의 아주 화려했던 기억을 자주 꺼내는 사장님은 즐거워 보였고, 그 이야기가 끝나면 불 꺼진 무대처럼 회의실은 고요해진 채 서로 눈치 보는 영업팀 직원들만 남곤 했다.
내가 한 달쯤 근무했을 무렵, 브랜드의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만들고, 회사와 제품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며 체험단 리스트업을 하고 있을 쯤이었다. 회장님은 회의에서 업무를 보고하는 내게 그래서 매출이 얼마나 늘었냐고 물으셨다.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회사의 모든 업무의 궁극적인 목표가 매출 확대라는 건 안다. 근데 사실 잊고 있었다. 대행사에서 보낸 1년 반의 시간 동안 아무도 매출에 대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거기서 목표라면 수주나 계약 연장이 더 가까웠다. 우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였고, 매출은 고객사가 알고 있는 문제지 우리가 고객사의 매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는 아니었다. 거기서는 이미 안정적이 되어서 어떤 판매에 그치지 않은, 긍정적 인지도 제고를 위해 홍보 채널을 위해 대행사를 쓰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대부분의 클라이언트였다.
사실 회사에서 오매불망 바라보고 있는 것은 영업부밖에 없었다. B2B 중심의 매줄구조를 가진 회사여서 온라인 매출은 미미한 수준이었고 나는 홍보를 한다고 들어오긴 했지만 거래처 매장 발주와 백화점 발주 업무를 하고 있었다. 사무실로 오는 전화를 받는 일도 해야 했다. 그러니까 영업과 재무를 제외한 다른 일들을 할 사람이 사무실에는 없었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이 원래는 나와 나이 차이가 가장 덜 나는 주임님이었는데 내가 들어왔을 때 가장 달가워하고 잘 대해주려고 애쓰는 팀원이었다. 그런데 언제나 바빠 보여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날도 많아 보였던. 그 주임님은 나와 세 달 남짓을 함께 일하다가 맥없이 퇴사했다.
말로는 SNS로 회사를 홍보하고 콘텐츠는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뽑는다고 했지만 회사에서 찾는 것은 매출을 올릴 온라인 영업 직원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나는 대행사에서와 똑같이 일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회사에서 턱없이 부족한 경력직일 뿐이었다. 직접적인 매출을 내지 못하는, 무엇을 위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회사와 제품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을 자꾸만 늘어놓는, 하지만 매출과 어떤 상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수발주와 전화응대와 심부름에 써먹기는 나쁘지 않고, 그러니까 쓸모가 참 애매한 그런 직원이 되겠다. 회사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지만,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와 아주 먼 반대편에 있다는 거 하나는 확실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