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그리고 김주임 활용법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10

by 노루

코로나 악재는 우리 회사에도 덮쳐왔다. 매출이 줄고 사고가 터졌다. 디자인 직원이 퇴사하고 새로 들어온 디자인 담당자와 영업 직원이 권고사직을 당했다. 권고사직은 면담을 통해 결정되었다. 다른 직원들의 면담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내 면담에서는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 더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 물었고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두 사람이 나간 사무실은 적막했다. 나는 내 일을 해야 했는데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었다. 그럼 디자인은 누가 하지?


딱 한 명 있던 디자인 담당자였다. 그 대리님은 공장에서 필요한 표시사항 스티커 같은 부자재를 디자인했고 계열사에서 요청하는 매장 입간판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영업팀에서 요청하는 온라인 판매처의 상품이미지나 상세페이지를 작업했고 행사 배너나 공지 배너, 행사 POP 등 그냥 회사에서 발생하는 모든 디자인을 처리했다. 근데 왜 디자이너를 안 뽑고 있지? 나는 그런 게 참 궁금했다. 왜냐하면 다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있어서. 없어도 되는 사람이 나간 것처럼 그렇게 다들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까 나만 몰랐던 거다. 갑자기 공장에서 전화가 왔다. 이거 표시사항 수정 있는데 누구한테 말해요? 나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람을 뽑으신다고 하셨는데 아직 채용이 안 됐다고. 공장에서는 일단 기존파일을 수정해야 하니 그 파일을 찾아달라고 했다. 나는 디자인 담당자의 퇴사 이후 그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 내가 카드뉴스에 필요한 디자인을 PPT로 만들고 포토샵이 필요한 작업은 그 직원분께 요청할 때가 있었는데 디자인 프로그램이 그 컴퓨터에만 깔려있어서 내가 그 컴퓨터를 사용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파일을 찾았고 팀장님께 사실을 전달했다. 팀장님은 내가 열어둔 파일을 한참 보고 있더니 나한테 물었다. 김주임이 하기는 어렵겠니? 나는 일러스트를 그날 처음 열어본 사람이었다.


당장 할 사람이 없어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사무실에는 컴퓨터로 캡처도 할 줄 몰라 나를 불러 해결하는 어른들 뿐이었다. 그래서 일단 파일을 열어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다행히 포토샵이랑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어찌어찌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는 있었다. 그러고 났더니 팀장님이 그랬다. 일단 학원 다니면서 배우고 사람 뽑힐 때까지만 김주임이 하자. 당연히 디자인을 새로 해야 되는 건 할 필요 없다고, 있는 거에서 수정하는 것만 하면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퇴사한 영업 담당자의 거래처관리와 수발주도 넘어와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당장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근데 내가 그나마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어쩔 수 없음은 내가 감당할 일이 아니었던 건데.


나는 그래서 디자인 담당자가 됐다. 사람들이 디자인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하고 나한테 메일을 전달했다. 나는 급하게 일러스트 학원을 찾아 30분 일찍 퇴근하고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수업을 들었다. 저녁 먹을 시간은 없고 집에 가면 아홉 시가 넘었다. 바로 실무에 적용할 수 있는 교육이 아니라 자격증반이었는데 당장 회사 근처에서 들을 수 있는 수업은 그것밖에 없었다. 재무팀 팀장님이 교육비 품의서를 보고는 왜 이렇게 비싸냐며 놀랐다. 어느 날 수업 때문에 일찍 퇴근하는 날 보고 재무팀 팀장님이 그랬다. 회사에서 학원도 보내주고, 김주임은 우리 회사에 뼈를 묻어야겠네. 가슴부터 뒤통수까지 뜨끈하고 답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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