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비교체험 극과 극

문창과 졸업생의 직장생활 적응기 08

by 노루

퇴사를 하고 내 일과는 아침에 눈 떠서 구직 사이트를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나름 치열했던 첫 회사 생활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었던 이력서에는 시도 없고 소설도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고서 책도 많이 읽고 필사도 하고 싶었다. 신춘문예도 준비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닐 때 점심시간에 시집을 읽는 나를 보고 팀장님이 잠시 그 책을 가져가 시 몇 편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팀장님은 이제 이런 게 안 읽힌다고 했다.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고. 이런 것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읽히는 것 같다고. 나도 사둔 책을 읽지 못하고 자꾸만 책을 덮었다. 그러고 자꾸 천장의 무늬를 봤다. 우선 양껏 잠을 잤고 회사를 다니며 엉망으로 쪄버린 살을 빼려 밥을 줄이고 닭가슴살을 먹었다.


광고대행사의 업무에는 완전히 질려 있었다. 영문도 모르고 광고주가 쏟아내는, 그때그때 광고주의 결정에 따라 팔랑팔랑 달라지는 기준에 맞춰 일하는 게 힘들었다. 수주를 따내기 위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이삼일만에 제안서를 써내는 일도 버거웠다. 내 회사의 광고와 홍보를 하게 된다면 이보다는 더 차근차근 계획에 따라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행사가 아닌 인하우스 마케터로 지원하게 되었다. 먼저 회사를 나간 옛 동료들은 대체로 규모가 더 큰 다른 대행사로 이직했다. 거기서부터 좀 다른 길이라 그게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6개월쯤 시간을 가지며 쉬고 구직을 했다. 세 곳 정도 면접을 봤다. 서울도 두 번 면접을 보러 갔는데 두 곳은 사실 너무 멀었다. 그중 한 곳은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직원들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누구랑 누가, 심지어는 누구마저 퇴사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회사를 떠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듣고 참석한 면접에서 면접관은 나를 다른 지원자와 착각했다.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사람들이 퇴사자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던 것이 상당히 고마웠다.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낡은 상가에 위치한 회사에서 면접을 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는데 웬 할아버지가 계셔서 얼떨결에 인사를 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회장님이셨다. 그리고 뭔가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면접에 합격했다. 면접관은 내가 대행사에서 해왔던 일들을 잘 들어주었다. 해보지 않은 업무에 대해 우려하는 나에게 격려해 주는 따뜻함이 있어서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다. 그 면접관은 이후 내 사수이자 팀장님이자 본부장님이 된다.


이전 회사와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와 가장 나이가 가까운 사람은 나보다 네 살이 많은 주임님이었고, 그 바로 다음으로 나이가 가까운 사람은 나보다 열여섯 살이 많은 대리님과 차장님이었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열 명 남짓한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50세에 가까웠다. 아흔이 넘은 회장님의 연세를 제외해도 그랬다. 다들 빠르게 걷고 조잘거리던 대학교 같은 전 회사와는 너무 달라서 낯설었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도무지 일어날 줄을 몰랐고, 사무실 전체가 난방이 과해 뜨끈하고 건조했다. 사무실 곳곳에 난 화분과 한눈에 봐도 구형인 두께감 있는 모니터가 자리해 있었다. 먼지 가득한 할머니 집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그 나른한 분위기에서 전에 없던 안정감을 느꼈다. 내 나이 스물다섯에 엄마, 아빠, 이모, 삼촌뻘이 가득한 사무실 한편에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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