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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Apr 03. 2024

교장 선생님, 육아 휴직 신청합니다

1화: 생애 첫 육아 휴직 생활

"휴직한다고 언제 말해야 하나." 


어제오늘 교장실 앞 복도를 한참 기웃거렸다. 마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휴직한다는 말을  수 없었다. 맥없이 육아 휴직 신청서가 든 결재 서류판만 들고 왔다 갔다 했다. 내일은 말해야 하는데.


"신규 교육복지사 배치 계획 봤어요?"

"3월이 아닌 9월에 나 봐요."

"아니 왜요? 3월이어야 하는데..."


인사이동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 음 근무지로 신규 중점학교를 선택할 수 없게 됐다. 이례적으로 20군데나 늘었지만 모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집과 가까운 몇 개 학교를 검색하고 고른 일이 무색하게 됐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지다가 깨지고 만 것이다.  


만기 학교 중에서 근무지를 다. 문제는 만기자가 4명밖에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마저 인사 우선순위에 밀리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학교에 가야 한다. 이제부터 피 터지는 눈치 싸움이 시작다.


현재 근무지를 제외하면  개 학교밖에 안 된다. 이 와중에 한 군데는 전에 근무했던 학교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두 학교만 남았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중학교로 갈 것인가, 니면 애들 생각해서 초등학교로 갈 것인가.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5년을 좌우할 것임을 알기에 한 달을 빡세게 고민했다.


"선생님, 저 육아 휴직하기로 했어요."


초등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어느 날 만기자 중 한 선생님이 육아 휴직한다고 했다. 어느 학교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는데 결국 9월 정기 전보 기간에 맞춰 휴직한 것이다. 진심 전략 휴직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제야 9월에도 이동할 수 있음을 알았다. 선생님의 생각지도 못한 휴직 결정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도 휴직하고 9월에 전보 쓸까."

"순리대로 3월에 옮기는 게 낫나?"

"휴직하면 월급이 줄어들 텐데."

"중학교에 다시 갈 엄두는 나질 않고."

"예전에 일한 학교는 내키지 않고."

"쉬고는 싶고."


전략 육아 휴직할 것인가 VS 순리대로 3월에 옮길 것인가


이미지 출처: 김 블로그


이것저것 따지다가 머리만 복잡해졌다. 만약 휴직하면 월급이 줄어드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은 는다. 예정대로 3월에 학교를 옮기면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직접 마무리 짓고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다. 어떤 결정에도 장단점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며칠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유호가 다니는 학교로 가는 조건으로 휴직하려면 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제안했다. 사실 신규 중점학교로 지정된 20개 학교 중에 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포함됐다. 물론 전략적으로 휴직한다 해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간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신입 교육복지사가 우선 배정받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언제 또 아이들과 시간 보내겠나 싶어 휴직하기로 다. 초등학교에 입학 여섯 살 둘째와 다섯 살 셋째 결정적인 이유다. 특히 둘째의 첫 초등학교 생활이 신경 쓰였다. 누가 봐도 여섯 살 둘째의 초등학교 생활 적응이 다음 과제임이 분명했다. 론 첫째처럼 보란 듯이 잘 적응할 테지만 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로 용기 냈더니 경제적인 부담의 현실적인 문제, 직으로 인한 동료 교사들의 불편한 상황, 직접 마무리하고 싶은 만기자의 책임에 따른 고민이 한 번에 정리됐다.


눈 질끈 감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 육아 휴직 신청합니다."


이로써 생애 첫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 '교육복지호'의 항해의 을 내리고 '파파호'의 돛을 올렸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결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기로운 육아 휴직 생활을 위하여.

유호지호소이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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