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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사회복지사 Apr 12. 2024

잠시 쉬어 가면서 찾은 소소한 행복

2화: 세 아이 아빠의 흔한 육아 휴직 일상

휘날리는 봄바람에 벚꽃 잎이 흩날린다. 한동안 실 책상에 앉아 멍하니 베란다 을 바라다.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가지를 넋 놓고 보고 있었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전 10시가 되면 여유로워진다. 푸릇하게 돋은 새싹들, 거실로 드리운 포근한 햇살, 둥지를 짓고 있는 까치 한 쌍, 벚꽃나무 가로수길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그 아래에서 사진 찍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봄이 왔음을 낀다. 커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벚꽃 잎이 바람에 날렸다.


육아 휴직 생활을 시작한 지 한 달하고 열흘이 지났다. 휴직을 할까 말까 망설였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휴직 생활에 젖어있다. 지금은 어떻게 하면 앞으로 남은 기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휴직하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보다 가족과 나를 돌보는 게 우선이 되었다. 먼저 주부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었다. 대체로 아침 7시에 하루를 시작한다. 기어코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아이들 덕분에 누룽지라도 끓여야 한다. 이 또한 둘째가 빨리 깨면 아침 6시에 강제 기상이다.


"누가 먼저 아빠랑 양치질할래?" 


아침밥을 다 먹으면 은밀한 경쟁을 부추기며 등원 준비를 시작한다. 스스로 이를 닦게 한 다음 차례로 양치질을 마무리해 준다. 사실 아이들 꽁무니를 따라다니느라 정신없다. 둘째 양치질 마무리해 주다 말고 셋째 화장실 뒤처리해 주기 바쁘다. 그 사이 첫째는 스스로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친다. 어쩌면 혼자서도 척척 챙기는 첫째 덕분에 간신히 멘털을 부여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 유치원 등원 버스가 이렇게 반가울 수 없다. 아마도 둘째와 셋째는 반갑게 배웅하는 줄 알 것이다. 왜냐하면 유치원 등원 차량을 떠나보낼 때 어느 때보다 활짝 웃기 때문이다. 솔직히 아이들이 학교나 유치원비로소 한숨 돌릴 수 있다. 이제 겨우 한 차례 전쟁을 치렀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육아 휴직 생활을 소개한다.


1시간 동안 집안을 정리한다. 먼저 식탁을 치운다. 다 먹은 그릇을 싱크대로 옮겨 바로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돌돌이 테이프를 굴리며 집안 곳곳을 다닌다. 먼지를 제거하면서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장난감을 장난감함에 넣고 책을 책장에 꽂는다. 청소기는 이틀 건너 하루꼴로 돌린다. 식구가 많아 세탁기와 건조기는 쉴 틈 없다. 매일 건조기에 있는 빨래를 꺼내 개거나 다 된 빨래를 건조기를 돌린다.


첫째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올 때까지 자유시간이다. 천금 같은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집안일을 끝내고 뒤도 안 돌아보고 아지트로 간다. 대체로 3시간 동안 동네 커피숍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매일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시야가 탁 트인 창가에 앉는다. 책도 읽고 그날에 해야 할 일도 적고 브런치에 발행할 글도 쓴다. 4월에는 5월 출간 계획에 맞춰 강연 준비를 하고 있다. 나름 작가의 삶을 흉내 내고 있다. 대개 음악을 들으며 멍 때리고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을 가장 기다린다. 방과 후 수업이 많은 날이라 오후 4시 20분에 하교하기 때문이다. 첫째가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면 알림장부터 확인한다. 알림장 확인란에 서명하고 다음날 준비물이나 신청서는 미리 챙겨 놓는다. 첫째에게 간식을 챙겨 주면 후딱 먹어치우고 밀크T 학습지를 푼다. 연산 문제집 한 장까지 풀면 첫째와 놀이터에 나가서 축구를 한다.


그런데 오늘은 방과 후 수업이 없는 금요일이다.


여기서 잠깐.


"일할래?, 육아할래?"


여기까지 읽고 차라리 일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오후 5시 10분에 둘째와 셋째가 하원버스를 타고 내린다. 첫째랑 놀이터에서 놀다가 아이들을 마중 나간다. 요즘 날씨가 풀리면서 적어도 1시간은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들어간다.

오후 6시가 되면 늦게 퇴근하는 아내를 대신해 저녁밥을 준비한다. 요즘 직접 요리하고 장을 보면서 물가를 채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아침저녁을 준비하면서 좋은 점은 아이들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세 아이의 입맛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지만 엄지 척하며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하다. 반찬 투정하는 아이들을 보며 부모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여기에 양가 부모님의 외래 일정 동행 스케줄이 있다. 갑작스러운 암 진단은 아내와 나에게 슬픔을 안겨줬지만 병원에 함께 동행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아픈 부모님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 부모님의 시간, 오늘의 행복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분간 나의 메인 무대는 일터가 아닌 가족과 나다. 가끔 "차라리 일하는 게 낫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잠시 쉬어 가면서 찾은 소소한 행복에 휴직하길 잘했다 생각한다. 육아 휴직은 오랜 시간 마음속에만 품고 있었던 생각을 실천할 수 있게 만든 계기였다. 더는 늦지 않게 용기를 주었다.  


2009년 첫 직장에 출근한 이래 처음으로 다. 15년 가까이 치열하게 일한 내게 주는 선물이기도 하다. 휴직하고 그동안 일하느라 놓치고 있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나와 가족, 그리고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 감사하다. 아이들 덕분에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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