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교장실 앞 복도를 한참 기웃거렸다. 차마 교감 교장 선생님에게 휴직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맥없이 육아 휴직 신청서가 든 결재 서류판만 들고 왔다 갔다 했다. 내일은 말해야 하는데.
"신규 교육복지사 배치 계획봤어요?"
"3월이 아닌 9월에 뽑나 봐요."
"아니 왜요? 3월이어야 하는데..."
인사이동을 앞두고 고민이 생겼다.다음 근무지로 신규 중점학교를 선택할 수 없게 됐다. 이례적으로 20군데나 늘었지만 모두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다. 집과 가까운 몇 개 학교를 검색하고 고른 일이 무색하게 됐다. 호박이 넝쿨째 굴러 떨어지다가 깨지고 만 것이다.
만기 학교 중에서 근무지를골라야 한다. 문제는 올해 만기자가 4명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거나 다름없다. 그마저 인사 우선순위에 밀리면 울며 겨자 먹기로 남들이 선택하지 않은 학교에 가야 한다. 이제부터 피 터지는 눈치 싸움이 시작됐다.
현재 근무지를 제외하면 세 개 학교밖에 안 된다. 이 와중에 한 군데는 전에 근무했던 학교다.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두 학교만 남았다. 집에서 10분도 안 걸리는 중학교로 갈 것인가,아니면 애들 생각해서 초등학교로 갈 것인가. 순간의 선택이 앞으로 5년을 좌우할 것임을 알기에한 달을 빡세게 고민했다.
"선생님, 저 육아 휴직하기로 했어요."
초등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어느 날 만기자 중 한 선생님이 육아 휴직한다고 했다. 어느 학교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 쉬었는데 결국 9월 정기 전보 기간에 맞춰 휴직한 것이다. 진심 전략 휴직은 상상도 못 했다. 그제야 9월에도 이동할 수 있음을 알았다. 선생님의 생각지도 못한 휴직 결정은 혼돈 그 자체였다.
"나도 휴직하고 9월에 전보 쓸까."
"순리대로 3월에 옮기는 게 낫나?"
"휴직하면 월급이 줄어들 텐데."
"중학교에 다시 갈 엄두는 나질 않고."
"예전에 일한 학교는 내키지 않고."
"쉬고는 싶고."
전략 육아 휴직할 것인가 VS 순리대로 3월에 옮길 것인가
이미지 출처: 김 블로그
이것저것 따지다가 머리만 복잡해졌다. 만약 휴직하면 월급이 줄어드는 대신 혼자만의 시간은 는다. 예정대로 3월에 학교를 옮기면 대체 인력을 뽑아야 하는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지만 직접 마무리를 짓고 다른 학교로 옮길 수 있다. 어떤 결정에도 장단점은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며칠을 머리 싸매고 고민했다.
"유호가 다니는 학교로 가는 조건으로 휴직하려면 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아내가 제안했다. 사실 신규 중점학교로 지정된 20개 학교 중에 첫째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포함됐다. 물론 전략적으로 휴직한다 해도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간다는 보장은 없다.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신입 교육복지사가 우선 배정받을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언제 또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겠나 싶어 휴직하기로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여섯 살 둘째와 다섯 살 셋째가 결정적인 이유다.특히 둘째의 첫 초등학교 생활이 신경 쓰였다. 누가 봐도 여섯 살 둘째의 초등학교 생활 적응이 다음 과제임이 분명했다.물론 첫째처럼 보란 듯이 잘 적응할 테지만 말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기로 용기 냈더니 경제적인 부담의 현실적인 문제, 휴직으로 인한 동료 교사들의 불편한 상황, 직접 마무리하고 싶은 만기자의 책임에 따른 고민이 한 번에 정리됐다.
눈 질끈 감고 교장실에 들어갔다.
"교장 선생님, 육아 휴직 신청합니다."
이로써 생애 첫 육아 휴직을 신청했다.잠시 '교육복지호'의 항해의 닻을 내리고 '호호이파파호'의 돛을 올렸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어떤 생활이 펼쳐질지 기대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잘한 선택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의 결정을 믿어보기로 했다. 슬기로운 육아 휴직 생활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