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과 무진등(無盡燈)
#20240527 #부처님오신날 #연등 #무진등
불기 2568년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우리 절에도 연등(燃燈)이 달렸다. (연꽃 모양이라 연등(蓮燈)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둠 속에 밝혀져 있는 연등들을 보고, 무명(無明)을 밝히는 밝음(지혜),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중생 속의 부처님을 떠올렸다.
불교의 상징은 연꽃이다. 유마경(維摩經) 불도품(佛道品)에는 유마거사와 문수사리의 대화를 통해 여래의, 깨달음의 씨앗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여래의 씨앗은 62견이나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이 되며, 이는 마치 높은 육지에서는 연꽃이 나지 못하고 낮고 질척한 진흙탕에서만 연꽃이 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처럼 깨달음이란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이, 중생과 고난 속에서 지혜를 피워내는 것이다.
끝없이 이어져 있는 연등을 보고는 무진등(無盡燈)의 의미를 생각했다. 원치 않는 태어남과 죽음을 반복하면서도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끊임없이 내는 것(개인적 의미이자, 시간을 관통하는 의미의 무진등). 그리고 주변을 조금씩 밝혀 들불처럼 퍼져나가는 밝음(단체적 의미이자 공간을 관통하는 의미의 무진등).
개인적 의미의 무진등은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陁品)에 나와 있다. 난타는 비록 가난한 신세였지만,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거두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운다. 부처님께서 이 마음을 알아보시고 신통으로 난타의 불을 계속 밝혀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셨다. 난타의 꺼지지 않는 등불은 중생구제를 향한 꺼지지 않는 마음을 나타낸다.
단체적 의미의 무진등은 유마경(維摩經) 보살품(菩薩品)에 나온다. 유마거사는 지세보살(持世菩薩)이 받지 않은 마왕 파순의 1만 2천 천녀(天女)들을 받아서 보리심을 내도록 한다. 마왕 파순이 유마거사에게 천녀들을 돌려달라고 하니 다시 데려가라고 한다. 보리심을 낸 천녀들이 어떻게 마궁으로 돌아가냐고 묻자, 유마거사는 무진등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무진등은 한 등불로 백천의 등불을 밝혀 어둠이 모두 밝아지고 그 밝음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한 사람의 보살이 백천 중생의 마음을 열고 이끌어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g.o.d의 <촛불 하나>가 떠올랐다.
너무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아
내게 있는 건 성냥 하나와 촛불 하나
이 작은 촛불 하나 가지고 뭘 하나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나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
어둠 속에서 발버둥 치는 나의 이 몸짓
불빛을 향해서 저 빛을 향해서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는 나의 날갯짓
하지만 그렇지 않아 작은 촛불 하나
켜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그 불빛으로 다른 초를 또 찾고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촛불 하나 켠다고 어둠이 달아나지 않을 것 같아도, 하나가 둘이 되고 세 개가 되듯이. 내가 하는 일들이 아무리 작고 부질없어 보여도, 하나하나 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뭔가가 되어 있겠지.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되고) 부디 내 글을 읽고도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불교에 관해 궁금해하고, 마음을 내고,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다.
references)
* 연합뉴스, 2017.04.29., <부처님오신날 연등에 담긴 뜻은…연꽃모양이란 뜻은 아닙니다>, https://www.yna.co.kr/view/AKR20170428061100005
**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불도품(佛道品) 中
그때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앗[如來種]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이 몸[有身]이 여래의 씨앗이며, 무명(無明)과 생존의 욕망[有愛]이 씨앗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씨앗이며, 4전도(顚倒)와 5개(蓋)가 씨앗이 되며, 6입(入)이 씨앗이 되며, 7식처(識處)가 씨앗이 되며, 8사법(邪法)이 씨앗이 되며, 9뇌처(惱處)가 씨앗이 되며, 10불선도(不善道)가 모두 씨앗이며, 요점을 취해서 말한다면 62견(見)이나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이 됩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위(無爲)를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正位]에 든 사람은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메마른 고원의 육지에서는 연꽃이 자라지 않지만 더럽고 습한 진흙땅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무위법을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끝내 다시는 불법(佛法)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며, 번뇌의 진흙 속에 있는 중생이라야 불법에 마음을 일으킬 뿐입니다. 또 허공에 씨를 뿌리면 싹이 틀 수가 없지만 거름으로 비옥한 땅[糞壤之地]에서는 무성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https://kabc.dongguk.edu/viewer/view?dataId=ABC_IT_K0119_T_002&imgId=009_0994_b
-> 여기서 유마경 사구게가 나온다.
高原陸地 不生蓮花 卑濕淤泥 乃生此華 (고원육지 불생연화 비습어니 내생차화)
***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陁品) 中
그때 그 나라에 난타(難陁)라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하면서 살아갔다. 그녀는 국왕과 신민의 노소들이 모두 부처님과 스님들께 공양하는 것을 보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나는 전생에 무슨 죄로 빈천한 집에 태어나, 복밭을 만났건마는 종자가 없을까?’
못내 괴로워하고 마음 아파하면서 미미한 공양이나마 기약하고, 곧 나가 구걸하기를 늦도록 쉬지 않았으나 겨우 돈 1전을 얻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기름집으로 가서 기름을 사려 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물었다.
“1전 어치 기름을 사봐야 너무 적어 쓸 데가 없을 텐데 무엇에 쓰려는가?”
난타는 그 심정을 자세히 이야기하였다. 기름집 주인은 그를 가엾이 여겨 기름을 갑절로 주었다. 그는 그것을 얻고 매우 기뻐하여 등불 하나를 만들어 가지고 절로 갔다. 그것을 부처님께 바친 뒤 부처님 앞에 있는 여러 등불 가운데 두었다. 그리고 서원을 세웠다.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났다.
밤이 지나 다른 등불은 모두 꺼졌으나 그 등불만은 홀로 켜져 있었다. 그때 목련(目連)은 그날 당번이 되었다. 날이 밝은 것을 보고 등불을 걷어치우려다가 그 한 등불만이 홀로 밝게 타면서 심지가 닳지 않은 것이 새로 맨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는 낮에 켜는 것은 아무 소용도 없다고 그것을 꺼두었다가 저녁에 다시 켜려고 손으로 끄려 하였다. 그러나 불꽃은 여전하여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옷자락으로 부쳤으나 불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이 그 등불을 끄려고 하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지금 그 등불은 너희 성문들로서는 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네가 4해(海)의 물을 거기에 쏟거나 산바람으로 그것을 불더라도 그것은 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일체중생을 두루 건지려고 큰마음을 낸 사람이 보시한 물건이기 때문이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난타 여인은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그에게 수기를 주셨다.
“너는 오는 세상 두 아승기와 백 겁 동안에 부처가 되어 이름을 등광(燈光)이라 하고, 10호(號)를 완전히 갖출 것이다.”
이에 난타는 수기를 받고 기뻐하여 꿇어앉아 출가하기를 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곧 허락하시어 그는 비구니가 되었다. 혜명(慧命) 아난과 목련은 그 가난한 여자가 고액을 면하고 집을 떠나 수기를 받는 것을 보고 꿇어앉아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난타 여인은 전생에 무슨 업을 지어 오랫동안 구걸하면서 살아왔으며, 또 무슨 행으로 말미암아 부처님을 만나 출가하여 네 무리들이 공경하고 우러르면서 다투어 공양하려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과거에 가섭이라는 부처님이 계셨다. 그때 어떤 거사의 부인은 몸소 나아가 부처님과 비구 스님들을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어떤 가난한 여자에게 공양받기를 먼저 허락하고 계셨다. 그 여자는 이미 아나함의 도를 얻은 여자였다. 그때 장자의 부인은 자기의 재산이 많은 것을 믿고 그 가난한 여자를 업신여겨, 부처님께 먼저 그 청을 받은 것을 불쾌히 여겨 말하였다.
‘세존께서는 어찌하여 제 공양을 받지 않고 저 거지의 청을 먼저 받으셨습니까?’
이렇게 나쁜 말로 성인을 업신여겼다. 그 뒤로 5백 년 동안 그는 언제나 빈천한 거지 집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 뒷날 부처님과 스님들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기뻐하였기 때문에 지금 부처님을 만나 집을 나와 수기를 받았고 온 나라가 공경하고 우러르느니라.”
그때 대중들은 부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나라 왕과 신민들은 그 가난한 여자가 부처님께 등불 하나를 바침으로써 부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모두 흠앙(欽仰)하는 마음을 내어 저마다 훌륭한 의복 등 네 가지 물건을 보시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귀천 노소를 막론한 온 나라 남녀들이 향유(香油) 등불을 다투어 준비하여 기원(祇洹)으로 가지고 가서 부처님께 공양하였다. 사람은 너무 많고 등불은 기원 수림의 사방에 가득하여 마치 별들이 공중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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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마힐소설경(維摩詰所說經) 보살품(菩薩品) 中
‘자매들이여, 꺼지지 않는 등불[無盡燈]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으니, 그대들은 이 법문을 배워야만 하오.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한 등불로 백천(百千)의 등불에 불을 밝혀 어둠이 모두 밝아지고 그 밝음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오. 자매들이여, 이같이 한 사람의 보살이 백천 중생의 마음을 열고 이끌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도록 하고, 그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모든 선법(善法)이 자꾸만 늘어나게 하는 것을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대들이 비록 마왕의 궁전에 있다 하더라도 이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무수한 천자의 천녀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면, 이야말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또 모든 중생들에게 큰 이익을 베풀어 주는 것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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