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피셜
#20240925 #연기 #공 #불교
보통 불교의 교리를 얘기하면 연기(緣起)와 공(空)을 얘기하는데, ‘왜 하나가 아니고 두 가지일까?’ 의문이었던 적이 있다. 이내 곧 까먹고 말았지만.
근데 어제 문득 이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불교에서는 유위법(有爲法)과 무위법(無爲法)을 가르친다고 한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유위법은 윤회(輪廻)하는 동안에 덜 괴롭게 사는 방법이고, 무위법은 윤회를 끊고 해탈(解脫)하는 방법이다.
나는 그간 환자들에게 불교에 관해서 얘기할 때면, 불교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식으로 얘기해 왔다. 그래서 나쁘게 지어 놓으면(惡因) 나쁘게 돌려받고(惡果), 좋게 지어 놓으면(善因) 좋게 돌려받는다고(善果) 했다. 물론 전생부터 이어져 온 자신이 여태까지 어떤 씨앗들을 심었는지 모르고 열매만 주어지니까, 힘든 일이 닥치면 억울하고 괴롭고 잘 풀리면 행복해한다. 사실은 그게 다 이전에 지어놓은 것들을 돌려받는 것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씨앗을 뿌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깨닫기 전까지는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천계(天界)에 태어난다 해도 인간, 수라, 아귀, 축생, 지옥과 괴로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고 죽는 괴로움 자체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윤회 자체를 벗어나야 한다고 설하신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변하고(諸行無常),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諸法無我), 해탈이라는 영원한 즐거움을 찾으라는(涅槃寂靜) 것을 한 단어로 줄이면 공(空)이려나? 좋은 씨앗도 좋은 열매도 나쁜 씨앗도 나쁜 열매도 다 상황과 조건이 맞아서 생긴 것들일(이고 인연 따라서 오고 갈) 뿐, 영원한 게 아니니 집착할 것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추구할 바도 아니라는. 그러니 인연은 오는 대로 잘 해결하고, 다시 또 좋은 씨앗을 뿌리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일어나는 상황들을 피하지 말고 부지런히 마음을 닦고 넓히고 맑게 해서 해탈로 나아가라는 것을 한 단어로 줄이면 공(空)이 되는 게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