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스물일곱 번째 편지
세상에. 편지를 보낸 지 두 시간 만인가요? 아예 다음 편지를 써놓고 기다리신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빠른 답장이네요. 또 한 번 저를 놀라게 하는군요. 선물님은 저를 언제까지 얼마나 더 놀라게 하시려는지. 선물님의 퀵 배달 때문에 저도 이 밤에 편지를 쓰고 있어요. 사실 우리 둘 다 빠름보다는 느림을 미덕으로 사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이건 마치 글 빨리 쓰기 올림픽에 참가 중인 것 같군요. 어디 봅시다. 저도 이 밤에 편지를 다 쓸 수 있을지.
오늘 명상 프로그램 셋째 날이 마무리되었어요. 지금은 혼자 물품이 쌓인 방에서 노트북으로 이 편지를 적고 있어요. 제 앞에는 수십 개의 검은 색 의자가 쌓여 있고 왼편에는 화이트보드와 수많은 요가용 블록이, 오른편에는 각종 음식물과 다기, 생수 등이 쌓여 있어요. 그리고 구석에는 은색 접이식 사다리가 큼지막하게 놓여 있고요. 그러니까 이곳은 말 그대로 창고예요. 그렇지만 우리끼리는 우리 명상의 컨셉에 맞게 ‘온화한 방’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이 밤에 홀로 있는 이 순간 여기가 온화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적막하긴 해요. 약간의 기계음이 들리는 게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에요. 엘리스와 정호승 사이에서 글을 쓰셨다니 선물님이 약간 부럽네요.
창고. 물건을 보관하는 장소지요. 온갖 것들을 다 집어넣어 놓고 먼지 쌓이도록 방치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금 당장 유용하지 않은 것들은 죄다 창고행이지요. 그런데 저라는 사람의 심리가 희한한 게 이런 창고에 있으면 불편하면서도 마음이 편하다는 거예요. 사람 많은 모임에 가도 구석진 자리가 편해서 창고에 물건처럼 처박혀 있을 때가 종종 있었어요. 구석에서 편한 인간. 여기에서도 외로운 한 인간에 대해 읽게 되지요. 그러니까 저는 이제 막 외로움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꺼내려 해요. 그 전에 먼저 한 마디 솔직하게 하고 갈게요.
선물님 편지 마지막에 질문을 듣고 뭘 얼마나 까라는 것인가 싶었어요. 글에 담을 수 없는 걸 까라는 건 아닌 것 같고, 독자를 아예 염두에 두지 말고 쓰라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민낯을 드러내되 맛깔스럽게 까보라는 모종의 주문을 받은 것 같아서 살짝 당혹스럽더라고요. 그런데 더 문제는, 이번 명상 프로그램이 무르익고 있는 중이라 이 분위기에 젖어 저 역시 더 명상적인 모드가 되었다는 거예요. 그런 맛을 아시나요? 일순간 머릿속이 텅 빈 느낌. 텅 빈 공간을 관찰하고 있는데 관찰하는 자가 사라진 상태. 관찰은 있는데 관찰자도 없고 관찰 대상도 없는, 말로 하면 아주 이상한 이 느낌을 아실까요?
방금 선물님이 좋아할 만한 비유가 떠올라서 그대로 들려 드릴게요. 어느 날 정자들이 영문도 모르고 길을 떠났어요. 다른 수많은 정자들이 남들도 다 가고 있으니까 무턱대로 한 길을 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정자에게 의문이 일었어요. ‘내가 지금 맹목적으로 뭐하고 있는 거지?’하면서 문득 갈 길을 멈춘 거예요. 그래서 정자는 우주 공간을 부유하듯 아무데나 머물기로 했는데 머무는 족족 다 만족스러운 거예요. 추구할 게 아무것도 없어진 정자는 아무 곳에서나 아무렇게나 쉬면서 무릉도원에서 뱃놀이하듯 행복해했어요. 난자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아무 소식이 없어서 마음이 저절로 쉬어지고 어느 순간 무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기로 하자 마음이 아주 홀가분해졌지요. 이번 생에 기다릴 게 전혀 없다는 걸 알게 된 난자는 아무 애씀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해탈해버렸어요. 난자가 열반에 들고 그 자리에 사리가 남았어요. 아름다운 붉은 꽃잎 사리가 아롱아롱 떨어져 이 기쁜 소식이 정자에게까지 전달이 됐어요. 정자 역시 그 산화하는 생멸의 진리에 기쁨에 겨워 몸이 녹아내리기 시작했어요. 꽃잎 하나에 몸 하나가, 꽃잎 하나에 마음 하나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 정자도 열반에 들었어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정자와 난자의 이야기. 정자도 난자도 서로 만나지 않았으나 결론은 해피 해탈 엔딩.
재미있었나요? 즉흥적인 비유가 떠올라서 들려드렸는데 썩 괜찮지 않나요? 그러니까 제가 말한 명상적인 모드란, 외견 아무 변화도 없는데 어디선가 좋은 향이 밀려와서 어느 순간부터 정신의 방을 은은하게 다 채우고 있는 것과 비슷한 거예요. 이런 상태에서 비극을 생각하라니, 그것도 가장 큰 비극을 물으시니 난감했어요. 모든 것이 순조롭게 느껴지고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런 순간에요. 굳이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떠올렸지만 ‘그게 비극인가?’하면서 다시 가라앉더라고요. 찰리 채플린 말처럼 그때는 비극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보는 시점에서는 희극일 수 있잖아요. 교통사고 경험도 있고, 인격적인 모욕과 무시를 대놓고 받은 일도 있었지만 그 일들은 비극도 아니었고 불행도 아니었어요. 굳이 다시 겪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요. 그저 그렇게 아팠던 나를 안아주고 싶을 뿐이에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비극’이라는 단어가 외계어처럼 들리네요.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선물님의 질문이 저에게 선물이 되었어요. 그렇게 물어주셔서 적어도 지금은 이렇게 얘기할 수 있거든요. ‘제 인생에 비극은 없었습니다.’
자 이게 솔직한 제 마음이고, 그래도 사부작사부작 글을 만들어 봅니다. 기억의 창고에서 먼지를 탁탁 털고 등장한 기억. 지금의 외로운 나를 만들었던 경험이에요. 기억이 확실치는 않지만 아마 고3 내내었을 거예요. 공부하는 일 분 일 초가 아깝던 시절이라 저녁을 늘 혼자 먹었어요. 공부하던 자리에서 책을 덮어 집어넣고 곧바로 도시락을 꺼내서 혼자 먹었어요. 요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 반에서 하루 종일 고3 군집생활을 함께 하는 그 또래 아이에게는 엄청 눈치가 보이는 일이지요. 처음에는 왕따처럼 보일까 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 꽤나 두려워했던 거 같아요. ‘왕따라서 혼자 먹는 게 아니야. 먹고 떠들 시간도 아까워.’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달랬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공부 핑계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잡담도 별로 안 했고 교류 자체가 별로 없으니 고3 내내 학교에서는 말 수도 점점 줄었어요. 원래도 친구가 많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말도 별로 안 하고 애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으니 점점 더 고독해져갔어요. 하루 종일 몇 마디 안 한 날들도 있었어요. 가뭄에 땅이 갈라지듯 메마른 가슴이 참 답답해졌지요. 목말라서 죽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퍽퍽한 갈증을 견디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사막을 통과하는 느낌이랄까요? 외로움이라는 단어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고독감을 느꼈었어요.
그런데 실은 고3보다 고독이 먼저 온 거예요. 고3을 그렇게 살아서 더 외로워진 게 아니라 원래부터 외로워서 혼자 지내는 식의 생활을 한 거라고요. 외로움을 포함해 아주 어려서부터 느껴온 가슴 깊이 있는 어떤 아릿함을 나누고 싶은데 이건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소통이 불가하다는 걸 분명히 인식한 적이 있어요. 아주 절망적인 깨달음이었지요. 전생을 반복하며 쌓아온 생래적인 게 아닐까. 거미줄에 걸린 듯 헤어 나올 방도가 전혀 없는데 괜히 슬퍼만 하는 게 아닐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아니면 완전히 오해한 건지 모르겠으나 평생 그걸 끌어안고 살아야 되는 게 이번 생의 몫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 고독을 이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분명하게 인식됐을 때의 고독감. 그건 무엇에도 비견될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감이에요. 그래서 철학이니 심리학이니 영성이니 하는 것들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고요.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 상담하고 명상하는 나로 있게 한 게 고독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이게 싫지만은 않아요. 나의 가장 내밀한 것을 스스로 드러나게 하고 내가 원하지 않은 방향이었을지언정 내 인생을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펼쳐지게 했으니까요.
일면 나는 나의 고독에 감사해요. 밖으로 꺼낼 방법이 없는 절절한 내면을 잘 감촉하게 해주어서요. 심지어 사랑해요. 이렇듯 나는 나의 인간됨을 불가피하게 사랑하게 돼요. 고독이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몸이 으스러져라 껴안아주고 싶어요. 나에게 네가 잘 보인다고, 나만큼은 너를 이해한다고 꽉 안아주고 싶어요. 선물님의 질문 덕분에 고독마저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금 느끼네요. 내 인생에 비극이 없었음을, 뛰어넘을 불행이 없었음을 확인하게 해주셔서 고마워요. 마음의 창고가 활짝 열려 구석진 곳에 숨은 먼지까지 다 걷히고 맑고 상쾌한 공기가 시원하게 소통되는 듯해요. 구석진 곳이 편안한 사람은 이제 그곳이 제자리임을 알아요. 자기 자리를 찾았음에 안심하고 그 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향기를 냅니다. 바람은 밖에서 불어왔지만 향은 원래 안에 있었던 거예요. 선물 같은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향이 퍼집니다.
이제 선물님에게 질문을 돌려드려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뭐라고 답하시나요?
2024.07.19.~20. 대전에서 상담사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