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작가의 스물여덟 번째 편지
저는 오늘 아침부터 아르바이트 대타로 전시 도슨트에 나와 있어요. 막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소개하는 작품 중에 홍범 작가의 ‘기억의 잡초’가 있어요. 아크릴에 레인보우 시트지를 붙였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색이 달라져요. 기억은 변한다는 것을 표현하셨다고 해요. 그리고 우리는 기억을 ‘미화’하는 것 같아요. 너무 힘든 기억들은 사는데 불편하고 아프니 그런 기억은 ‘인 사이드 아웃’에서도 보면 멀리 보내고, 조금쯤 색을 칠하거나 바꾸기도 하죠. 기억은 ‘해석’에 따라 옷을 입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서로의 ‘기억’이 달라지죠. 원래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었든 간에 우리가 입힌 옷의 스타일에 따라 기억은 확 달라보이는 것 같아요.
저와는 반대의 고3을 살았어요, 나무님은. 전 정말 혼자있는 걸 좋아해요. 말했듯이 혼자 있어야 창작도 하고, 혼자 있어야 다양한 것들이 떠오르니까요. 외로움을, 우울을 즐기는 요상한 사람인데, 그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을 잘 거절하지 않았어요. 왜 청소년기에는 친구가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저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단짝 친구가 화가 날 정도로 그랬죠. 친구가 없는 듯 친구가 많은 그런 상태. 친한 친구들이 많은 듯 없고, 다 친한데, 화장실 같이 가자고 할 친구는 없고, 뭐 그런 거. 다들 각자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저한테만 한 깊은 얘기들.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있는데, 겉도는 저. 그랬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특히. 2학년 때 단짝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지만, 그 친구가 갑자기 저와 말을 하지 않았고, 나중에 왜 그랬냐고 하니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그 친구에겐 저밖에 없었는데 저는 너무 많은 친구와 어울리니 서운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면서 저는 사실 깊이있는 관계를 지향하니 제 마음 한 켠에 항상 빈 것처럼 그 친구에 대한 갈망이 있고, 다른 친한 친구들은 제가 이상하고 말이죠.
그래서 사실 전 친구들이 볼 때 공부를 참 안 하는데 성적은 잘 나오고, 그런데도 미워할 수 없는 애였어요. 공부를 그렇게 안 하고 친구들 얘기를 들어주고 땡땡이 치고 놀러 나가서 친구들 얘기를 들어주고 선생님께 혼나니 전교 상위권만 들어가는 독서실에 가도, 뭐랄까, 특이한 애지, 얄미운 애는 아니었달까요. 천재적인 애는 아니라서 1등을 하고 그런 건 아닌데, 수능으로는 어려운 줄 몰랐어요. 수학이 제 앞길을 막긴 했지만, 다른 건 모두 저에겐 언어였어요. 제 지능은 언어와 추리에 다 몰려있거든요. 그리고 공간지각능력이 다 까먹죠. 그래서 수학에서 태극무늬 넓이 계산하는 6학년 때 헤매고, 그 다음 그걸 극복하니 함수부터 뭔가 머릿 속에 안 그려지더라고요. 그래서 내신은 공부하는 만큼 나오고, 수능은 공부랑 상관없이 상위권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던 게 전부 영향이 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전 외롭고 싶은데, 그렇지 않아 보이려 애쓴 반면 나무님은 태생적인 고독을 진심으로 끌어안다니. 성숙한 청소년기의 마무리였네요.
그때의 나무님에게 박수와 꼭 끌어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정호승 시집과 엘리스 액자 사이의 것들은 나무님의 창고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시집과 제 사이에 ‘마수리’라는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물어다 놓은 헝클어진 가발과 아직 돌려주지 않은 수동 카메라와 그밖의 많은 서류가 꽂힌 책꽂이가 있고, 제 자리엔 기계식 키보드와 로지텍 무선 키보드와 모니터가 두 개 있죠. 일하는 분위기의 책상을 지나면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책상 위에 직인, 도장, 볼펜들, 포스트잇, 출력물, 잡다한 종이, 정리안 한 티켓들, 남은 연극 수업 자료, 반은 가려진 뭉크와 피카소 액자, 교정본 소설 출력본들이 2,500장 이상 쌓여있어요. 그 아래 책꽂이가 하나 더 있고, 제 뒤로는 전자드럼과 키보드가 있고, 발밑에는 커다란 프린터기가 있어요. 제 방이 하나의 거대한 창고 같이 느껴지기도 해요. 뭐랄까, 나중에 부자가 되면, 아주 작더라도 책상과 의자만 있는 글만 쓰는 방을 갖고 싶어요. 노트북과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이제는 단종된 K810 키보드와 함께 커피 한 잔 들고 글 외에 다른 짓은 못하게, 가끔은 책 한 권 들고 앉아서 책에 푸욱 빠져있기도 하고요. 제가 삼옥리로 이사 와서 가장 스트레스받는 게 이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거든요. 대형견이 집에 있고, 공간을 극단 사람들과 나눠 쓰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많네요. 원룸보다 더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달까요? 게다가 생활도 제 통제하에 있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이 깔끔하게 정리된 걸 바라는 제 마음은 아마 제 비극에서 시작되었지 싶어요. ‘통제감’ 저는 제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일할 때 저를 만난 사람들은 잘 예상하지 못하는데, 저는 그룹에 있을 때, 큰 모임이나 장소에서 일부러 외로운, 눈에 안 띄는 장소를 찾아요. 뭘 배울 때는 강사 눈에 띄는 데를 앉아서 교감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는, 특히 사교 모임 같은 건 참석을 안 해도 된다면 어떻게든 안 하는 걸 선호하지만, 해야만 한다면 외롭고 싶어요. 그러다 한 명이라도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다면 인사치레로 떠들고 이런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건 제 ‘시간과 공간’이 아닌 곳에서의 불안감이 많아서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모르는 사람, 학교 선생님, 술취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성추행을 당했고, 성폭행을 당할 뻔한 적도 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도를 아십니까’하는 사람들이 저한테만 오면 ‘색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상담사는 ‘제가 계기를 준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 당시엔 피해자 탓을 했어요. 지금처럼 미투도, 성인지 감수성도 없었죠. 친한 친구조차 네가 사람들에게 잘 웃어서, 네가 친절해서, 네가 그런 곳에 여행 가서, 네가 혼자 여행 가서, 네가 치마를 입어서, 너한테 유독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너한테 문제가 있어서야, 라고들 하더라고요. 최근에도요. 그런가요?
나무님은 아시죠. 전 공부하고 책 읽는 걸 좋아해서 화장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유행에 따라 옷을 입지도 않고, 제 스타일이 있을 뿐이죠. 머리도 드라이하고 나가는 건 정말 평생 손에 꼽아요. 물건도 종류별로 하나씩만 있죠. 검정 구두 하나, 샌들 하나, 슬리퍼 하나, 운동화 하나. 가방도 책가방 하나, 숄더 백 하나, 보다못해 친구가 준 여성스러운 가방 하나, 에코백은 여기저기서 준 게 몇 개. 꾸미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단 거예요. 그렇다고 제가 연애할 때 얼마나 상대에게 집중하는지 나무님도 아실 거예요. 그리고 한 번 연애하면 얼마나 오래하는 지도. 다 변명이고, 정말 색기가 있고, 제 잘못이라면, 참 웃겨요. 몸매가 좋은 것도, 얼굴이 예쁜 것도, 저보다 더 착하고 잘 웃는 사람도 많은데, 그날 그 공중전화, 그날 그 화장실, 그날 그 버스, 그날 그 길, 그게 운명이란 건지, 그곳에 제가 있어서인지, 그곳에 그런 인간이 있어서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제 ‘시간과 공간’을 통제하고 싶은 열망이 제 비극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긴 해요. 비극은 아니지만, 연년생 동생이 지적장애라 모든 것을 양보하고 고려해야했던 것도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저만의 ‘시간과 공간’에 대한 열망. 그것이 여전히 저를 미혼으로 있게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 것을 갖고 싶다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싶다는 욕심으로 드러나는 거죠. 이러니 수도원에 가고 싶다는 욕심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거였는지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우다다 얘기하고 나니 어디 포근한데 누워서 자고 싶네요. 비 오는 오후가 되었습니다. 관람객도 별로 없고 그저 한가로운 오후네요. 라고 말하니 관람객이 우루루 오셨다 가셨어요.
빨리 쓰기 시합보다는 아마 반 재입대를 한 나무님에게 위문 편지를 쓰는 기분이라 다른 일을 제쳐두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우다다 털어놓은 비극이 바람에 흘려 날아가기를. 비에 씻겨 비극의 기억이 흘러 땅에 묻히기를 빌며....
24.7.20. 영월에서 선물작가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