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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22. 2024

작은 말들이 큰 힘이 되죠

선물작가의 서른 번째 편지 

말 한 마디가 참 중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어릴 때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살면서 들었던 말 한 마디가 종종 큰 힘이 되기도 하고, 큰 상처가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말의 힘이 얼마나 센 지, 아니, 얼마나 강력한지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 해준 격려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을 때 힘을 내기도 하고, 쉽게 내뱉은 말에 상처받아 삶을 포기하거나 진로를 포기하기도 하죠.

삶의 빛나는 순간들은 스스로 만들어 가기도 하지만, ‘조명’이 비춰져야 삶이 빛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혼자 빛나려고 막 애써서 되는 게 아니라 주변에 박수 쳐 주는 사람이 있어야 빛나고, 자신에게 빛이 비춰져야 빛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되도록 자신의 노력이 없어선 안 되겠죠. 어쨌든 제가 빛났던, 제게 빛이 비춰졌던 순간을 떠올려 보면, 전 아직 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요.

대신 제가 그 순간을, 그 시간을 기다리게 하는 힘을 갖게 하는 말들, 사람들, 사건들은 있어요. 저의 비극은 예기치 않은 사람과 상황에서 왔다면, 좋은 순간들은 관계가 있던 사람들 중에서지만, 생각지 못했던 순간에, 생각지 못한 사람에게서 오는 것 같아요.


전 일을 하면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아요. 리더를 맡거나 아예 숨어서 뒷일을 많이 맡거나. 리더를 맡은 경우는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전체 총괄까지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뛰어다녀요. 팔짱 끼고 앉아서 지시하는 편이라기보다 파트 별로 일을 나눠서 맡기고 그 일을 체크하고 나면 나머지는 허드렛일이라도 펑크가 나지 않도록 보이지 않게 메꾸는 일을 하죠. 그리고 현장에서 일은 터지기 마련이라는 걸 알고, 그랬을 때 다들 이래서요, 저래서요, 라고 말을 하는데 그건 다음이라고 생각해요. ‘해결’하는 게 우선이고, 해결만 되면 잘잘못보단 다음에 그런 일이 안 생기게 반면교사만 삼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나무님처럼 존재만으로 든든하고 싶은데, 그렇진 못하고 저는 ‘존경’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끔은 그 말을 유지하려고 뭔가 가면을 더 쓰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말이 참 고맙기도 해요. ‘존경’이란 말은 진짜 가치있는 단어라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를 존경하려면 진짜 상대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뭔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할 정도여야하는데, 누군가 그렇게 생각해준다는 건 정말 제가 상대에게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반대로 뒤에서 숨어서 일할 때는 정말 티를 전혀 안 내고 일해요. 약간 닌자처럼 일한다고 해야할까요? 다들 이 정도 일한 거 티내고 싶어하는데, 심지어 이거 네가 한 거지?라고 묻거나, 한 거 얘기해 봐, 라고 해도 침묵해요. 숨어서 하기로 작정하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제가 한 걸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가져가 버리고, 다른 사람이 자기가 한 척하거나 공을 가로채서 자기 이름을 덮어쓰기, 하는 정도까지 해도, 심지어 그게 봉사가 아니라 직장이라 해도 마음 먹고 뒤에서 일하기로 했다면 기꺼이 내어줘요. 왜냐하면 ‘뒤에서 일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죠.

억울할 때도 있죠. 이용당할 때도 많고요. 그런데 아주 가끔 숨어서 한 저를 알아본 사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아주 우연한 기회에 혹시 저거 네 솜씨 같은데 아냐? 제가 침묵해도 미소를 지으면 알았다고 하면서 등을 두드리고 가면, 그게 위로가 되고 제가 빛나는 순간으로 가는 힘이 되어요. 뭐랄까, 저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든달까요?


저는 쓰는 게 편해서, 말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저에게 40분 강의가 주어졌다거나 2시간 강의를 해야한다면 그 시간을 채워서 말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고 즐겁지만, 잠깐 일어나서 말해야 한다거나 그냥 토론 중에, 계획 없이, 등등의 상황에선 사실 할 말이 없다기 보다 다른 사람에게 말할 기회를 더 주고 싶어서 저는 말을 짧게 하는 편이에요. 누군가 제게 ‘지윤이는 참 에스프레소처럼 말해’라고 한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이 왜냐고 물으니 진짜 해야 할 말이 뭔 줄 알고, 꼭 다른 사람들이 들어야 할 말을 요약해서 잘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말이 참 고맙고 힘이 되었어요. 지난 편지에 주눅이 들었었다면, 빛나는 순간들을 생각하다 보니 좀 더 자신감이 생기네요. 중간 즈음에 갑자기, 고마워요, 나무님.


저는 말이 참 빨라요. 하고픈 말은 많은데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이 안 들어줄까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걸 좋아하니 더 말할 기회를 주려고, 등등 타인 시점에서 제가 말하는 걸 생각하다 보니 얘기할 때 빨리 끝내려는 버릇이 있어요. 충청도 사람인 걸 아무도 모르는 이유 중 하나예요. 그리고 최대한 요약하려고 해요.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래서 학교 선생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게 학생들에게는 ‘설명’을 자세하게 반복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대신 인강 강사처럼 스토리텔링해서 설명하는 건 잘 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저에게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다릴 수 있게 해주는 건 논산대건고등학교 61회부터 65회 졸업생들까지 선후배들이에요. 저는 63회 논산대건고등학교 졸업생입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사립학교 상담교사가 되었어요. 그리고 감사하게 불러주신 교장선생님께는 정말 죄송하게도 3년 만에 사직했죠. 나올 때 정식은 아니지만, 졸업장을 주셨는데 저에겐 정말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닌 거나 다름 없었어요. 저는 석사를 마치면 박사를 가려고 했었어요. 그리고 시간강사를 하면서 전공 에세이를 쓰려고 했었고요. 근데 선생하면서 학생들에게 ‘꿈으로 설레니?’ 하면서 제가 진짜 꿈인 작가로서 안 설레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학교를 그만뒀고, 나중에 제 이름을 검색했을 때 책이 없더라도 꿈꾸던 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아달라고 했었거든요. 전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약속이잖아요.


그래서 가끔, 아니 요즘은 종종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약속을 떠올려요. 학생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제 인생에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때, 그리고 그 이후에 먼저 하늘로 간 친구들도 있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그건 마음이 아프다는 표현으로는 다 담을 수 없는, ... 아픔으로 평생 남겠지만, 열심히 나름의 삶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그때 꿈꾸던 모습 그대로 응원해주고 싶어요. 그 친구들도 나이를 먹어가며 누구는 꿈을 이루기도 하고, 어떤 친구는 꿈을 바꾸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겠지만,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겠죠. 나름 각자의 선택에 후회가 없기를, 혹여 후회가 남는다면, 삶의 작은 틈을 만들어 다시 시작해보기를 응원하며! 계속 약속을 지켜가고 싶어요.

보고 싶네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때의 저, 그때의 그 친구들. 참 좋은 선생님들, 참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물론 모두와 좋을 순 없지만, 그래도 나름은 최선을 다했는데,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까요? 그 친구들에게 한 마디 더 잘 건낼 수 있었을까요?

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이 오면 감사의 인사를 너무 늘어놓지 않으려고 논문마다 감사의 인사를 길게 써 놓았어요. 


제가 기다리는 빛나는 순간이 언제냐고요?

그 빌어먹을 ‘등단’ 발표요. 극작으로는 벌써 무대에 올린 극이 여러 개니까 정식 극작가로 등단이야 못했더라도 업계에서 말하는 ‘입봉’은 한 건데, 소설로 등단을 아직 못해서요. 등단이 소설가가 된다는 보장은 아니지만, 시발점이 되니 그걸 좀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효도도 좀 하고 싶고요. 아버지 산소에도 가져가서 자랑하고 싶고, 어머니 안심도 좀 시켜드리고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저 작가라고 말도 하고요.

사람들은 저에게 왜 그렇게 등단에 집착하냐고, 넌 이미 작가라고 말하지만, 아마 어딘가에 목표를 둔 사람은 알 거예요. 이를 테면 교사자격증을 땄다고 학교 선생이 바로 되는 게 아니고, 변호사 자격증을 따도 로펌에 소속이 안 되면 개업도 어렵고 바로 활동이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각자 업계 사정이라는 게 있죠. 


‘시작’을 하고 싶어요. 요즘 작가라고 스스로 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처럼 어떤 잡지든 연재해 본 경험이 있기만 해도, 극작 한 번만 해서 극을 올린 사람도 되려 저보고 작가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저는 스스로 작가라고 말 못하는 데 말이죠. 에세이 대필하신 경험이 있으신 분도 작가라고 하고요. 그분들을 낮추어 보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그래요.

뭐든 제대로 ‘시작’하고 싶은 못된 성격 때문인가 봐요. 어쩌면 전문성을 어디까지 가져가고 싶냐의 목표가 다른지도 모르고, 어느 업계에 속하고 싶냐가 다른지도 모르겠어요. 제 자신감의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당당하게 ‘작가’가 되는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당당해지는 순간. 빛나는 순간. 갑자기 연결되는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저도 나무님에게 그런 얘길 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나무님 존재만으로 든든하다고요. 진짜 나무님은 뿌리를 단단히 내린 나무같은 사람인가 봐요. 세상에 든든한 사람. 뭔가 애쓰지 않아도 단단한 사람이란 느낌도 드네요. 이미 초인이란 느낌도 들고요.

제 가장 아래에 있는 마음인 ‘부러움’이 막 튀어나오려고 해요. 제 아등바등에 비해 뭔가 우아한 느낌도 들고요. 


어쨌든 빛나는 순간을 다시 떠올리며 기다리게 해 줘서 고마워요, 나무님.

혹시 과거의 어느 한 순간으로 돌아가 어느 한 가지만 바꿀 수 있다면, 당연히 그 일은 미래의 일에 영향을 미치겠죠? 무엇을 바꾸고 싶어요? ‘시간여행자’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해서 생각난 건지, 아니면 대건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과거가 생각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문득 많은 공상영화의 아이템인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요.     


0723. 영월에서 아르바이트를 더 하게 되어 답장이 빠른 선물작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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