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스물아홉 번째 편지
어제부로 4박 5일 명상 프로그램이 끝났어요. 오늘은 휴식 1일차, 일상 복귀 1일차예요. 어제는 마치 부처님께서 프로그램 일정을 굽어 살피시는 듯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었어요. 오늘부터는 한동안 무지 더울 거라고 하는데 선물님 일하는 곳에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주면 좋겠네요.
어제는 참 독특한 기분을 느낀 날이에요. 오래 전부터 각종 프로그램 말미에 느꼈던 거라는 걸 알아차렸는데요. 이렇게 분명하게 알아차린 건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뭔가 시큰둥해지고 시무룩해지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다들 환하게 웃으면서 명상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스님과 봉사자를 비롯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다고 표현을 하는데 살짝 동떨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게 뭘까, 왜 그러는 걸까, 곰곰이 들여다봤어요. 아무래도 그건 이별을 예감하는 마음 같았어요. 지금 아무리 훈훈해도 잠시 후에 뿔뿔이 흩어질 테니까 그 이별의 아픔을 상쇄하기 위해 미리 혼자 이별하는 마음. 그렇게 미리 마음을 쓰면 정말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는 덜 아플 테니까요.
예전에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대학교 때 다국적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과정에 조교로 3개월 정도 일한 적이 있었어요. 그 학생들은 낯선 땅에서 편하게 말붙이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저에게 호의적이었지요. 그래서 업무상의 교류 외에도 종종 함께 밥 먹고 떠들며 시간을 보냈어요. 야외 현장학습에 따라다니며 온갖 잡일을 대신해주고 일상에서 한국어 연습 상대이자 말벗이 되어준 건 물론이고요. 석 달이나 그렇게 정을 나누고 나니 마지막 순간이 생각보다 두려웠나 봐요. 마지막 날, 다들 단체버스에 타고 이제 곧 떠나기 직전이었어요. 버스 좌석 앞뒤를 오가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어요. 몇몇은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하는데 저는 쿨하게 안아주고 토닥이고는 버스에서 내려왔어요. 당시에는 그 자리에서 홀가분하게 남은 감정들을 툭툭 털어버린 듯했지만 여파는 하루 이틀 뒤에 왔어요. 진짜 갔구나. 거의 대부분 이제 다시는 우리가 만날 일이 없겠구나. 아뿔싸. 먹먹한 감정이 좀 오래 가더라고요. 잔잔하게 그 감정을 며칠이나 느꼈던 거 같아요. 가끔 인류애를 자극하는 감동적인 영상을 보고 가슴이 활짝 열릴 때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차라리 그때 질척거릴 걸. 아쉽다고 몇 번이나 바라볼 걸. 당신들이 떠나면 한동안 쓸쓸하게 느껴질 거라고 말해버릴 걸. 가슴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고 부끄럽고 수줍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내보일 걸.
돌아보면 그때 쿨했던 게 저 자신에게 창피한 거죠. 그 당시 창피할 줄 모르면 미래에 복리로 쌓인 창피를 느끼게 돼요. 아파야 할 순간에 아프지 못한 나는 훗날 더 아픕니다. 그들에게 진심을 다 못 보여준 아쉬움에. 나 역시 가슴이 떨리고 있었음을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은 가식에. 이게 내부에서 나를 콕콕 찌르더라고요. 인생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 뭐냐고 물었던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겠어요. 쿨내 나는 척하지만 사실은 외로운 내가 비극이다. 이 성격과 한평생 사는 중차대한 이 사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외로우면서도 외롭다고 말 못하는 인간은. 그러니 나랑 사는 게 나에게는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 비극이 또 ‘비극적’이지는 않아요. 왜 그런지 한번 풀어볼게요. 지난 번 편지에 구석에서 혼자 있으려는 저에 대해 이야기했지요. 그 이야기를 하고 더 자극이 돼서 그런지 이번 명상 프로그램 중에도 쉬는 시간에 두어 번 카페에 가서 혼자 앉아 있었어요. 식당 바로 아래 카페가 있어서 식사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서 묵언을 깨고 수다를 떨곤 했어요. 대화가 명시적으로 허용된 건 아니었지만 왠지 밥 먹고 나서 차 한 잔하면서는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어차피 우리 이외 다른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기저기 이동할 때마다 대화 소리가 잘 들렸거든요. 카페에 있으면 사람들의 대화 소리를 들어야 하니 야외 테라스로 나갔어요. 마침 나만을 위해 준비된 듯 덩그러니 남겨진 1인용 나무 테이블이 있어서 거기 앉았어요. 의자도 엎어져 있고 테이블은 다 낡아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테이블 같았지만 그래서 꼭 저를 위한 자리 같았어요. 테이블 위에 팔을 걸치니 오래 삭은 나무의 눅눅한 때 같은 게 묻어나더라고요. 그래도 좋았어요. 마치 특별석에 앉은 듯 제자리를 찾은 듯. 탁 트인 하늘과 산세를 보다가 옆에 흐르는 물소리를 듣다가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보다가 내 정신 상태를 점검하다가. 참 평화로운 시간이었지요.
외로운 나에 대해 선물님께 여러 번 편지를 보내고 난 후여서 혼자 있는 나를 바라보며 속으로 이런 생각도 했어요. ‘넌 참 너다.’ 어쩔 수 없이 그게 저더라고요. 누가 강제로 보낸 것도 아닌데 고즈넉하게 혼자 앉아서 즐기고 있다니.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든 거예요. 즐겨? 뭘? 아 고독을! 외로워 죽겠다고 하면서도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 이 사람이 참 웃기더라고요. 그러면서 한 가지 혜안이 찾아왔지요. 몸서리치게 싫은데 어쩔 수 없이 외롭다 못해 그리움이 되고 더 큰 사랑을 낳은 게 아니라 애초에 더 큰 사랑을 찾아 고독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고 그쪽으로 치닫다 보니 고독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고독을 사랑했구나, 그런 안목과 함께 고독이 썩 괜찮게 느껴지더라고요. 고독이 원래 사랑스러운 구석도 있는 거라면, 잘 고독할 수만 있다면 잘 사랑할 수도 있겠네. 그 찰나에 직업병이 도져서 이게 억지 인지치료가 아닌지 생각이 들어 잠시 점검도 해보았지만 진심 한 톨이 그렇다는 걸 부정할 순 없겠더라고요. 세상만사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듯 고독과 사랑이 서로를 잉태하고 북돋는 게 아닐까요. 고독 자체도, 뜻하지 않게 고독한 나도, 자꾸만 고독을 선택하는 나도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었어요. 이 혜안이 열리게 한 순간도 고독이 함께 했으니 이쯤에서 유명한 어록이 떠오르네요. 파스칼이 말하길 인간의 모든 문제는 혼자 방에 조용히 앉아 있을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다지요.
이번에 봉사자 두 분께서 저에게 이런 피드백을 해 주셨어요. ‘선생님의 존재 자체가 정말 든든했어요.’ 아마도 말 수도 별로 없이 제 할 일하는 걸 보고 그렇게 좋게 봐주지 않았을까 싶어요. 존재 자체가 든든하다니, 최고의 칭찬이지요. 그 자리에서는 그 뜻을 시시콜콜 물어보면 의미가 퇴색될 거 같아서 그냥 감사하다고만 했어요. 그리고 저 혼자는 이렇게 상상하고 이런 식으로 알아들었어요. ‘나무 하나 서 있는데 고독해보여도 뿌리가 튼튼해서 언제나 기대도 될 거 같았어요.’
제 자랑을 조금 이어가자면 다른 상황에서 다른 분들께도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제가 좀 뻣뻣해서 오해를 사곤 하는데 제 상사가 자기 상사에게 저를 두고 꾸중 아닌 꾸중을 듣고 있었대요. 그런데 나중에 듣길 제 상사가 저를 변호해주면서 ‘알고 보면 진국’이라고 했다더라고요. 제가 없던 자리에서 저를 그렇게 변호하고 보호해준 윗사람들 이야기가 몇 건 더 있는데요. 음. 제가 없을 때 저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했다니 정말 진심이 담긴 거겠지요? 그 칭찬을 고스란히 받아도 되겠다는 안심이 돼요.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어떤 면에서 훨씬 괜찮은 사람일지 몰라요. 저도 그렇고 선물님도 그렇고 우리 모두는요.
생각은 참 희한해요. 지금처럼 뇌의 회로가 가동되기 시작하면 나에게 대해 긍정적인 말을 해 준 사람들과 그런 일화들이 연이어 떠오르는데 평소에는 기억의 저편에 숨어서 잘 보이지 않아요. 우리가 애써 꺼내서 잘 닦고 빛나게 해주어야 하는 것은 저 구석에 숨어 있는 것들이에요. 먼지가 쌓인 만큼 더 정성스럽게 닦아서 내 존재 자체에 다시 빛을 던지도록. 내게 있는데도 까맣게 잊고 꺼내지 못하고 있는 보석들이 환히 빛나도록.
우리 삶에 빛나던 그런 얘기를 꺼내보아요. 선물님에게 빛나던 날들은 언제였나요? 내면에 있는데 아직 발휘되지 않고 있는 빛은 무엇인가요?
쓰다 보니 하루 더 지난 2024.07.23. 대전에서 상담사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