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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ya Mar 17. 2018

어떤 만남 2

어머니와 아내는 벌써 일주일 전부터 내려와서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올 때부터 넘쳐나게 장을 봐 왔을 터인데도 오래도록 살지 않던 살림이라 부족한 것이 많은지 사야 할 게 끝이 없다고 넋두리를 하신다. 여기서 지낼 마지막 차례라 찾아올 사람도 더 많을 것이고 그러기에 남에게 흠 잡힐 일은 없어야 한다고 제수 거리들을 더 크고 더 푸짐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 전날에 기범이와 기범이 처가 내려왔다. 

모처럼 아이들도 뛰어다니고 안 밖으로 환하게 밝힌 불로 집안이 생기가 돌고 훈훈해졌다. 얼추 일이 끝나고 서둘러 저녁상을 다 차렸는데도 할아범이 보이지 않았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집안 곳곳에 불을 밝히고 조상을 맞아야 한다며 헛간과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변소 그리고 선산으로 가는 길까지 등불을 갖다 놓는 것은 할아범이 해마다 해오는 일이다. 식구들은 의례히 그럴 것이라 여겨 할아범의 부재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식구들이 전부 나서 이리저리 찾은 후에 쓰러진 할아범을 발견한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산소 옆이었다. 그 많은 묘지들 중에서도 더 신경을 써서 보살펴오던 산소였다. 어지러운 발자국과 파헤쳐진 흔적들로 보아 멧돼지와 마주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급히 모셔간 시내 병원에선 명절 전이라 의사들은 휴가를 떠나버리고 간단한 검사를 마치고는 줄곧 수액만 투여할 뿐이었다. 환자 또한 의식을 회복하곤 다들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었다. 의사인 손자가 옆을 지키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어수선한 가운데 세배를 오고 가느라 이틀이 지나갔다. 짧은 명절 휴가로 직장에 복귀한 날 밤에 기범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아범이 나와 어머니를 찾는다는 것이다. 

하루 반나절 동안 할아범은 놀라울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져 있었다.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가자는 손자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극구 퇴원할 것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내가 들어섰을 때 할아범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줄 알지만 정말 이 늙은이 평생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사고 뵙자고 했습니더. 지가 돌아가신 어른들께 아침저녁으로 찾아뵙고 부탁드리고 또 부탁드렸심니더. 염치없는 줄 압니더. 그래도 지가 살아오면서 딱 이 한 가지 원, 우리 엄니한테 부끄러운 자식이 안 될라고 이렇게 부탁드리는 겁니더. 우리 기범이 일은 지가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큰 어른과 작은 어른께는 말씀드렸으니 다 알고 계셨습니더.

 

지는 촌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아십니더. 워낙에 없는 살림에 어릴 때부터 엄니랑 둘이 살다 보니 마흔이 넘어 까지 장가도 못 들었습니더. 어느 날 배가 부른 어떤 여자를 엄니가 되려 왔습디더. 일 갔다 오는 길에 만났는데 아무래도 오늘내일 해산을 할 것 같고 갈 데도 없다 길래 데려 왔다고 하데요. 그 여자는 보름쯤 후에 아들을 하나 낳고는 칠도 안 지났는데 도망을 가 버리십니더. 그냥 눌러 앉혀 살게 하려던 엄니는 아이만 얻게 된 거지요. 아이가 돌이 되던 날  엄니가 아이를 데리고 멀리 가서 살라고 하데요. 여기서는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니 이 아이를 니 새끼로 키울 수는 없을 거라고요.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더. 큰 어른은 절대 근본을 모르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대하셨지만 작은 어른이 아이를 봐서 받아들이자고 사정사정했습니더. 그래서 작은 어른이 동에 가서 호적도 새로 정리하고 이름도 짓고 지 손자로 올렸십니더.


  지 소원은요, 택이 서방님이 살아 계실 동안만 큰 어른 제삿날 메밥 한 그릇 올려 달라는 것입니더. 지는 안 그래도 되는데 엄니 평생소원이 그것이었습니더. 제사 지내줄 자손 하나 없이 죽는 거는 사람이 태어나서 할 일이 아니라고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지 새끼 하나 맹글어 놓고 죽어야 조상님들께 떳떳한 삶이고 죽어서도 황천에 떠돌지 않는다는 것이 지 엄니 생각이었십니더. 우리 기범이는 내가 죽으면 외국에 나갈 거라고 벌써부터 얘길 했으니 서방님께 부탁 드립 니더. 서방님 살아계실 동안 만이요. “


  어머니는 자기 손자 놔두고 무슨 일이냐고, 이건 밥 한 그릇 떠놓는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어디 감히 조상님 제상에 근본 없는 뜨내기 메를 같이 올리느냐며 노발대발이었다. 또한 제사상에 차리는 음식은 아내가 해야 했기에 아내 눈치를 아니 볼 수도 없는 일이기도 했다.

 

  이런 얘기가 오고 갈 동안 기범이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놀라지도 않는 걸 보면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인데 그 긴 세월 동안 명절이면 꼭 참석을 해왔고 내색도 없었다는 것이 괘씸하기도 했다.

“의대 다닐 때 할아버지 건강검진을 위해서 피를 뽑아 간 적이 있었어. 아무리 해도 병원엔 안 가시겠다고 해서 피만 뽑아 갔는데 그때 유전자 검사도 했었어. 내 아버지 얘기를 한사코 피하곤 해서 진짜 할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했었거든. 처가에서 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는데 할아버지 살아계실 때까지 만이라도 한국에 있겠다고 했더니 그 말을 아내가 할아버지께 한 것 같더라고.”


  해가 뜨기 전에 할아범은 눈을 감았다. 정월 초나흘에 세상을 떠났으니 제사는 초사흘에 지내야 한다. 그 날은 우리 할아버지 기일이다. 할아범은 평생소원했던 큰 어른과 같은 날 같은 상에서 메를 받게 되었다.     

 종족을 이어가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과, 오랜 관습 앞에서 힘을 잃은 한 개인의 나약함과 이기심이 할아범의 삶을 빛나게도 안타깝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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