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부끄러움을 갖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누가 나의 잘못을 알고 있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뿐더러 비록 남이 모른다 하더라도 하늘이 알고 자신이 알고 있기에 우리는 소위 ‘막’ 살지는 않는다.
남의 집 숟가락 숫자까지 알고 지내던 예전에는 남부끄러워서 라는 말을 곧잘 들었었다. 그 남부끄러워서 로 인해 우리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고 함부로 말하지도 않았다.
어쩌다 술 먹고 추태를 부린 젊은이는 남 부끄러워 며칠을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도둑질을 하거나 남을 상하게 한 이는 두고두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러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무엇을 하면 안 되는 지를 몸으로 배우며 자랄 수 있었다.
세상이 어떻게나 빨리 변하는지, 그 변하는 속도에 맞춰 덩달아 뛰다 보니 그러한 ‘남부끄러움’은 성공하지 못한 구닥다리 늙은이들이나 하는 말이 되었고 밤낮없이 누가 몇 억을 꿀꺽했느니 누가 누구를 폭행했다느니 하는 뉴스만 판을 치니 못 해본 놈만 등신이 된 것 같은 세상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유머 제로에 도덕관념만 높은 엄마가 답답할 것 같아 아이들에게 다섯 가지 계율만 지키는 범위 내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살아 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럼 그 다섯 가지가 무엇이냐기에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고
남의 것을 가지지 말고
나쁜 말, 거짓말을 하지 말며
부도덕한 음행을 하지 말고
술이나 마약 같은 것에 취해 자신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다 고 했더니
헐~~~ 하는 대답이 돌아왔다.
부도덕이 널리 퍼진 세상에서 고작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며 사는 것이 그리 힘드는 삶이 된 것 같지만 주변에는 이러한 것을 의식도 하지 않는데도 범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언행은 소박하지만 깊은 울림이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는 평생을 노력하고 있지만 한 가지는 아직도 어길 때가 많다.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아이들 앞에서 쪽팔리는 짓이라 당당해지기가 어렵다.
그러니 어른이라면, 최소한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라면 젊은이들에게 얼굴 들지 못하는 짓은 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
자신을 객관화시켜보고 또한 남의 경우를 돌이켜, 자신을 경책 해가며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갖고 당당한 어른의 삶을 살아가자고 권하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