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일까? 물론 여러 상황들에 따라 다양한 답들이 나오겠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대답은 아마도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가 아닐까 싶다. 여러 불행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꼭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닌가 보다.
얼마 전 일본에 살고 있는 동생과 전화를 하고 있었다. 동생네는 개를 두 마리 키우고 있는데 그 이름도 화려한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 종인 8살 보리와 푸들 3살 반짜리 반야이다. 낯선 외국 생활에 외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제부가 보리를 먼저 데려오고 4년이 지나서 조카애가 반야를 데려왔다.
보리는 너무 어려서 와서인지 한동안 적응도 못했고 자폐 증세까지 있어 집을 나서면 가던 길이 아니면 가려고도 않고 고집을 부려서 동생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라고 푸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 반면에 반야는 눈치 빠르게 주인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덩치에 비해 활동적이다. 산보라도 나가면 이리저리 저 가고 싶은 데로만 가려고 고집부리는 보리와 주인의 오른쪽 1보 앞에서 또박또박 걸어가는 반야 중에서 누가 더 예쁠지는 말을 안 해도 다 알 것이 아닌가.
반야가 처음 오던 날 보리도 서열 다툼이라는 걸 하려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단다. 덩치가 자기보다 세 배는 큰 보리를 보고 반야가 죽기 살기로 짖어대니까 소파 밑으로 슬금슬금 뒷걸음질해 들어간 보리는 그때부터 반야에게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한다. 그 덩치에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리가 없다고 단지 덩치로나 나이로나 우습고 가소로 워서 한번 눈 감아 준 것일 뿐이라고 믿고 싶었지만 3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보리는 반야의 눈치를 보면서 슬슬 피해 다닌단다. 주인의 포근한 무릎을 차지한 것은 당연 반야이다.
애완견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좋아하면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 믿으며 끊임없이 강아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동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언제나 신나게 행복하게 하는 이야기는 보리와 반야 이야기이다. 그날도 “언니야 나 지금 너무 무서워서 전화했어. 있잖아 이불을 널려는 데 보리가 자꾸 앞에 걸리적거려서 ”아이고 보리야 엄마가 힘들어 죽겠다. 저리 좀 가면 좋겠다 “라고 했더니 얘가 벌떡 일어나서 옆으로 가서 눕는 거 있지. 얘가 아무래도 내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아.” 하는 것이었다. 너가 발로 밀었겠지 했더니 절대 그러지 않았단다.
이렇게 이어진 이야기는 끝도 없이 계속되어 수십 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를 처음 듣는 듯 맞장구를 쳐야 했고 그 잘생기고 천재 같다던 보리는 깜찍하고 영리한 반야에게 밀려 천덕꾸러기 같은 인상을 풍기어 갔다.
“있잖아 지 귀염 지가 끼고 있다고 보리는 미운 짓만 골라가면서 하니까 자꾸만 홀대를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 반야가 언제나 내 침대에 올라와서 같이 자는데 하루는 보리가 물끄러미 보는 게 불쌍해서 올라오게 했더니 자꾸 이불을 핥아 대서 지 집으로 돌려보냈어.”
한창 흉을 보다가 동생이 갑자기 소곤소곤 목소리를 한껏 낮추면서 하는 말, “자고 있는 줄 알았더니 보리가 저쪽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어. 아무래도 내 말을 다 듣고 있었던 것 같아. 눈빛이 쓸쓸하게 체념한 듯한 표정이야. 언니야 어떡하나? 내가 황희 정승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아.”
그래도 그 강생이들은 동생의 주된 이야깃거리라 그만둘 수는 없기에 우리는 그날부터 보리와 반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A군과 B 군이라고 고쳐 말하면서 키득거린다. 천재 같은 보리가 A군 B군을 곧 알아들을 것은 시간문제이기에 또 다른 이름을 생각해 내어야 하겠지만 당분간은 마음껏 수다를 떨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