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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eyonell Apr 10. 2023

노동자로서의 공항 거주자.

공항, 내게 그저, 출근길의 도착지일 뿐ㅇㅣ야.

저 멀리 타국에서, 미국에서 강의직을 하고 계시는 동료 연구자분께서, 내가 제기한 "공항이 주는 homeness"에 대한 발표를 듣고서 덧붙이셨다. 

실은, 공항을 가려고 나서는 그 발걸음부터, home을 느낀다고. 비행기를 기다리는 그 몇 시간동안, home을 이미 느끼고 있게 된다고.

그 순간 공항은 terminal도, 저멀리 미국 땅도 아니게 된다. 공항이 곧 한국이고 그리웠던 가족과의 장소가 된다. 


며칠 전, 우리집에 놀러 온 친구는 그랬다.

이 친구는 공항 리무진을 타고(;;) 우리집에 놀러왔다.

친구는 그랬다. 공항 오는 길이 새삼 설레더라고. 


그래, 공항은 거의 모든 이들에게 설렘의 기분을 선사하지 -

그렇기에 항공권이 많이 비싸도, 우리는 그러려니 하게 된다. 

공항을 가려고 나서는 길부터, 행복하게 되니까.


근 데 난 아 니 다

공항만 생각하면 지끈거려오며, 

마침내 공항을 나서는 순간 (소위 내 동료들이 말하듯) 교도소를 출소하는 기분이다.

나는 공항에서 일하며, 공항 근처, 공항철도로, 혹은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산다.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지하철, 또는 내 자동차가, 나는 야속하다.

(잠시 감정에 빠졌지만 다시 돌아오자면,)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함'의 장소인 공항이

공항 상주직원들에게 얼마나 home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말하고싶었다.

공항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고, 다양한 직군의 모든 노동자가 그러하듯, 지겨운 곳일 뿐이다. 

(오죽하면, 아무런 준비없이 툭하고 떠나길 좋아하던 나는 이제 더이상 해외여행이 싫어졌다.)


.

.

.

너무 우울하고 부정적인 얘기만 늘어놓았다. 

.

.

공항에서 출입국심사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크게 출국심사, 입국심사로 나뉘어진다.

오늘 입국심사를 했다면, 며칠 뒤에는 보통 출국심사를 하게된다.

그러다보니, 내가 <입국심사> 버튼을 클릭했던 사람들을 며칠 뒤 출국심사대에서 만나기도 하고

배웅했던 출국자들을 다시 입국심사대에서 만나기도 한다.

워낙 관찰력 &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상대편에서 기억을 못해도 나 혼자 "오오 그때 그분들이다 ㅎㅎ" 하곤 했는데

오늘은 웬걸,

한국 국적의 여성분과 그의 아들 두 명이 입국 심사대에 들어왔고

나의 심사를 기다리다가 갑작스레 "근데 우리 출국할때 만났는데..!" 라고 했다.

위의 말을 취소하겠다. 자부했던 관찰력, 기억력은 무색하게도 아예 기억이 안나는 분들이셨다.

"아 정말요!!? 아.. 기억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시간 남짓, 무표정으로 일하던 나는 잇몸이 다 보이게 웃으며 날 기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출국장에서 봤던 사람을 또 봐서, '소름이 돋는다'고 했다.

작은 것들에 큰 감흥을 느끼는 분이신가 해서, 나는 마치 소금간 설탕간이 안된 병원밥을 먹다가 

00치킨을 먹은 것 처럼 짜릿함을 느꼈다. 

내 직업은 매일 매 분, 전혀 새로운,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마중도 나가고 배웅도 하는 사람이었다.

공항이 새롭기만 한 장소가 아니었다는 게, 묘하게 노동자로서의 내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글을 써본다.

오늘은 근무날이었고

좋은 동료가 밥을 사줬고

그 동료가 내 글을 다시금 써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시한번 느끼는 거지만

나는 순간의 우연과, 선택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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