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폐증후군(자기 스스로를 폐쇄하는)에 관련한 책 <뉴로트라이브>를 읽고 있다. 겨우 반을 넘기고 있지만 읽을수록 우리 시대를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 자체가 자폐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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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는 곧 개인주의다. 이 사회는 더이상 나눌수 없는 개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개인들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에 평등하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에서 자유와 평등은 서로의 전제로 작동된다. 그래서 개인주의는 개인의 방종이 아니다. 개인은 타인을 존중하는 선에서 스스로의 권리와 책임감을 갖는다. 타인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먼저 타인의 감정을 깊게 공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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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은 개인이 스스로의 세계에 갇히는 성향과 증상을 말한다. 하지만 개인주의와 자폐증은 다르다. 개인주의의 개인들은 서로 감정적으로 공감하기를 갈망하지만 자폐증은 감정적 소통을 꺼려한다. 물론 자폐증도 소통을 원한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소통한다. 자폐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언어를 구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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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극도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수학과 같은 과학적 언어다. 이들의 뇌는 감성보다는 이성적으로 작동하며 이성적 소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래서 대면적인 대화를 꺼려하고 대면하지 않는 대화, 무선통신에서 더 자유롭게 대화한다. 즉 익명성이 보장되는 디지털 공간에서 더 편안함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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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대 디지털 환경의 발달에 자폐증후군의 사람들이 크게 기여했다. 그들은 가상의 공간을 만들고 코딩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구사하고, 공상과학소설을 쓴다. 그들은 이미 SNS와 유튜브와 같은 디지털 공간을 장악하고 활약한다. 이 공간들에서 그들의 논리적 과학적 언어는 항상 승리하고 사람들은 승리한 이들에게 열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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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이란 단어도 등장했다. 감정이 노동이 된다니....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데... 아무튼 감정을 꺼려하는 태도는 자폐증의 증상이라는 점에서 '감정노동'이란 개념을 악의적으로 활용해 감정을 배제한 산업, 디지털 산업들이 등장할 수 있는 논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감정노동을 피해 면대면의 대화를 꺼리고, 힘들어하며, 점차 자기만의 공간, 내면속으로 숨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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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가면 게임방송이 성행하고, TV는 예능이 지배하고, 뉴스는 카톡이나 SNS로 은밀하게 소통된다. 모두 면대면 대화를 통한 감정 공유를 교묘히 피하는 소통 기법들이다. 이들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로 이런 상황들을 옹호하고 설파한다.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만나지 않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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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자폐증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폐증후군은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데, 자폐증후군이 강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중의 하나가 독서를 좋아하고 보편적 법칙과 질서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나 또한 자폐증환자이며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폐증 환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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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경향성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굳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을까. 야나기 무네요시가 강조했듯 보통 아름다운 세상은 굳이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미 사회적=공동체적인 세상은 굳이 공동체를 강조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갔던 세상은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기에 그는 굳이 공동체를 강조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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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는 '함께 같아지자'는 말이다. 다소 위험한 말이지만 긍정적으로 읽으면 상호 모방하자는 말이다. 사실 동물은 감정을 모방한다. 서로의 소리와 표정을 공유하며 감정이 모방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웃고 있는 사람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슬픈 사람을 보면 눈물이 나온다. 즉 공동체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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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시대가 공동체성을 상실한 이유를 다소 알 것도 같다. 자폐증후군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증후군으로 세상이 얼마나 발달했고, 편리해졌고, 풍요로워졌는지 인정하는 편이다. 게다가 나 또한 그런 증후군을 추구하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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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중요한 만큼 그 한계도 인식해야 한다. 자폐증 성향이 강해질수록 공동체성이 사라진다. 감정이 배제되면 인간은 극도록 잔인할 수 있다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원폭과 같은 가장 강력한 폭력은 감정이 배재된 상황에서 출현했다는 그 교훈 말이다. 폭력이 용인되면 그 폭력은 반드시 누군가를 향하게 된다. 과연 우린 폭력에 저항하고 제어할 수 있을까? 감정이 배제되고 이성으로 포장되어 합리화된 그 폭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