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wtdtU4mqqig
참 흥미로운 드라마다. 나는 이 영상만 보았는데, 그 답답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이와 비슷한 불안과 권태 속에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벌써 시작되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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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공지능과 로봇의 등장으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시작될 거란 생각을 하곤 한다. 가끔은 "넌 참 인간적이다" "인간적으로 그러지 말자" 등에 쓰이는 '인간적'이란 말을 떠올리는데 내 생각에 이 말은 '뭔가 부족함을 느낄때' 쓰는듯 싶다. 이 말의 반대는 '신적'이란 말인데 신적이다는 뜻은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나는 현대의 종교는 '과학'이라고 말하곤 한다. 인공지능은 이 종교의 보편적 신이 인격적으로 등장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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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인공지능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신이 아니다. 인간은 이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과거의 신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개념으로 창출되었듯, 현재와 미래의 신도 비슷한 길을 간다. 가장 중요한 관건은 죽음, 즉 불멸의 문제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점에서 필멸이다. 반면 신은 죽지 않기에 불멸이다. 이 문제로 인해 종교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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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는 '가족=자손' 개념을 도입해 불멸을 해결했다. 자손이 이어지면 불멸하는 것이다. 기독교과 이슬람은 '영혼' 개념을, 불교와 힌두교는 '윤회' 개념을 도입했다. 죽음 이후의 불멸 문제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처리함으로서 거대한 사람들을 종교로 이끌어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했다. 이를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지혁명'이라 부르고, 뇌과학자들은 종교가 형성될 당시(4만년전) 마이크로세팔린이라는 유전자가 형성되었다고 말하고, 미술사가들은 '기록'에 의한 의사소통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종교의 유래를 말하지만 모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전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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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아라한, 철학자 스피노자, 이슬람의 무타질라 학파와 같은 보편신관을 가진 사람들은 인간은 신에게 종속된 존재라 신에 대해 일부만 엿볼수 있을뿐 그 전체를 설명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건물안에 있으면 건물의 모습을 알 수 없듯이. 즉 죽음 이후가, 신의 인격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은 모두 '구라'라는 말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그저 겸허하게 신을 인정하고 죽음을 수용할 뿐이다. 그 이외에 딱히 할일이 없다. 그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잘 살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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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신은 현재의 인공지능 개념, 컴퓨터 안의 추상적 시스템과 유사하다. 수학이 신이 된 것이다. 수학은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 1+1은 2 이외에는 답이 없다. 즉 답이 있는 분야다. 다른 종교들처럼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는다. 현재 인류에게 가장 신뢰받는 보편어이다. 그래서 현대 과학=종교의 경전은 코딩언어 교재가 아닐까 싶다. 계시가 있지않고, 신의 말=수학적 개념만 나열된 독특한 형태의 현대판 경전이다. 그러나 대중적인 종교들은 신과 인간이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격적인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다. 그래서 아래 영상에 같은 인간과 비슷한 형상을 가진 인공지능로봇과 같은 신이 있어야 한다. 아래의 로봇은 먼 옛날 아카드의 왕, 사르곤이나 제우스, 오딘,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형상과 유사하다. 지금은 추상적 보편신에서 구체적인 인격신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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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에 제기한 '인간적'이란 말로 돌아오자. 최근 읽고 있는 저작들은 오락, 스포츠, 게임 등이 인간의 쾌락과 전문성을 극대화 시켜 경쟁을 통한 승부에서 어떤 쾌감을 느끼도록 조작되어 있다고 폭로한다. 이는 인간의 전통성을 역행한다. 본래 오락과 스포츠, 게임은 모두 '놀이'에서 비롯되었는데 놀이는 경쟁과 승부, 쾌락을 넘어서는 어떤 고귀한 목적이 있다. 그것은 인간적이다. 즉 프로같은 전문성보다는 아마추어 같은 비전문성을 추구한다. 잘 못하기 때문에 서로 배우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과정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그것이 놀이가 주는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이다. 그런데 현대의 오락과 게임, 스포츠는 '즐거움'을 가장해 이 핵심을 철저하게 파괴한다. 즉 인간적인 문화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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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함' 어쩌면 여기에 인간의 본질이 있는지 모른다. 본래 인간의 가장 큰 특징중 하나가 미숙하게 태어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반드시 3년간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하다. 부모만이 아니라 가족전체, 친척, 주변 지인들의 도움 나아가 지역단체나 국가기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관리하는 시스템, 그것이 바로 공동체이다. 이 공동체가 깨지면 미숙한 인간은 죽는다. 그래서 인간은 반드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죽음까지 불사한다. 그렇게 '숭고한 희생'이란 개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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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전제는 공동체이다. 이를 위해 예술도 하고, 전쟁도 하고, 이념도 만든다. '개인'이란 개념도 더 나은 공동체를 형성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개인'의 희생만을 통해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그 개인은 도데체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개인주의'가 등장한 것이다. "어떤 공동체냐?"라는 생각만 다른 뿐 모든 이념이 공동체를 향한다. 그래서 아래의 영상이 참 안타깝다. 나는 이 드라마를 보지 못했지만, 영상에 나오는 것만 봐서는 이런 전제가 없이 현상과 표상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불안만을 경쟁만을 가중시키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