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는 메타포다

by 윤여경

요즘 닐 포스트먼의 저작들을 보고 있다. 그는 인쇄문화에서 전파문화로 , 소통의 방식이 문자에서 이미지로 전환되면서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 방식이 쇠퇴하고 있는 현실을 한탄한다. 더불어 구두문화에서 문자문화로, 필사문화에서 인쇄문화로, 그리고 전파문화로의 전환을 연속적으로 주목한다. 이미지를 다루는 디자이너로서 상당한 영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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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여러가지 내 존재에 대한 통찰을 얻는다. 나는 텔레비젼 문화에 익숙한 세대다. 내가 왜 재미와 오락을 그토록 쫒았는지, 즐거움과 행복을 동일시 여겼던 이유, 무엇보다 스스로 난독증이라 여길 정도로 책을 읽기 어려운지를 알게 되었다. 실제로 나는 상당기간을 반지성적 태도로 살아왔다. 30살 이전까지는 몇개의 소설외에는 거의 책을 보지 않았다. 지금도 책에 그다지 정겨움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책을 한번에 50여페이지 넘게 읽지 못한다. 중간에 영상을 보거나 딴짓을 반드시 해야 한다. 그만큼 글에 집중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결코 글을 즐기지 않는다. 정말 고통스럽게 읽고 쓴다. 이제는 고통이 습관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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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에 익숙하지 못한 것은 짐작하다시피 텔레비젼에 빠져서 성장한 탓이다. 포스트먼에 따르면 책은 나에게 상당히 나쁜 영향을 미쳤다. 생각이 단순하고 짧아졌다. 연속적인 사고가 어려워 긴 글보다 짧은 글, 혹은 단절된 이미지에 익숙하다. 영상도 15초가 넘어가면 힘들다. 왜냐면 완결된 광고의 길이가 15초이기 때문이다. 이해안가는 글이나 이미지를 보면 화가 난다. 논증은 역겹고, 자꾸 반박하고 싶어진다. 물론 논리적 반박이 아닌 그냥 깽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고 싶고, 시키는 것과 반대로 행동하고 싶다. 실제로 난 10대 후반부터 20대까지 거의 그렇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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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사람들의 나의 추상적 말과 글에 졸립거나 투덜거리는 태도에 관대하다. 나도 그럴진데... 오죽하겠나. 수업을 시작하면 늘 학생들이게 당부한다. "졸리고 지루하면 그냥 나가라, 옆사람과 떠들고 싶으면 그냥 나가서 얘기하다 들어와라"라고 말한다. 진심인데... 안믿는 것인지 다들 그냥 그 자리에서 존다. 귀찮아서겠지. 생각하며 개의치않고 수업을 한다. 물론 힘들지만, 듣는 이들도 힘들것이란 것을 알기에 그냥 참고 한다. 그렇게 멍청하고 한심한 상황을 늘 반복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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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런 상황을 반복하는 이유는 고통이 나중에 약이 될 것이란 확신 때문이다. 나는 확실히 이 고통이 주는 효과를 보았다. 일단 멘탈이 상당히 강해지고, 상대를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화가 덜 난다. 책을 읽고, 추상적 사고를 하고, 논리가 강화되면 현실을 잊거나 바꾸거나 할 의지가 생긴다. 모순되는 표현이지만 그냥 '의지'가 생긴다는 점이 중요하다. 운이 좋다면 존경을 받을 수도 있고, 리더가 될 기회도 생긴다. 확실히 고통의 가성비가 높다. 그래서 오락과 재미, 즐거움을 철저히 배제하고 한없이 진지하고 지루한 수업을 계속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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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확실히 해악이었다. 그러나 이미지 자체가 해악은 아니다. 이미지가 주는 상상력은 글이 주는 상상력 만큼이나 거대한 효과가 있다. 물론 영상은 인간의 감각구조, 기억구조와 동일하기에 사고 그 자체를 지배한다. 그래서 영상은 상당히 신중하고 사려깊어야 한다. 하지만 글과 사진, 일러스트 등의 그래픽 이미지들은 소통을 위해 혹은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때론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상당한 유용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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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텔레이전이나 영화와 같이 일방적 영상이미지가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억눌렸던 탓인지 가히 폭발적인 소통이 일어난다. 오죽하면 빅데이터 같은 데이터 분석이 유행할까. 아무튼 사람들은 상당한 정보를 여기저기 흩뿌린다.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든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말과 글, 감정들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아마 이 현상도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것이다. 과거처럼 유저들에게 정보를 얻기 위해선 구걸하거나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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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른 기술변화는 포스트먼의 한계가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과 인공지능을 경험하지 못한 사회학자의 한계랄까. 물론 기술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것이다. 그러나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찰은 놀랍다. 나는 이미지 문화의 폐혜로 사회의 구성원들이 미성숙해지고, 경쟁을 좋아하고, 자극에 민감한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매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인간을 어떻게 한계짓는지 다소 짐작이 된다. 스포츠에 의해 경쟁이 내재화되고, 오락에 의해 사고력보다는 목표성취에 예민해지고, 왠만한 자극에는 꿈쩍도 안하니 강렬하다면 혐오적 표현도 서슴치 않는 현상들. 이 모든 것들 배후에는 매체변화가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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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스트먼의 말 '미디어는 메세지가 아니라 메타포'라는 표현에 상당히 동의한다. 그의 말대로 미디어는 특정 행동을 지시하는 메세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특정 행동을 유도하는 은유적 매체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미디어는 메세지적 '존재'가 아닌 은유적 '인식'을 중심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몇시간전 나는 인공지능을 거울 삼아 인간을 존재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글을 썼다. 반대로 미디어는 인식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론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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