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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16. 2021

행동하는 영혼, 잡혀있는 육체

그리스인 조르바 ㅣ Nikos kazantzakis


읽어야 할 고전목록에 빠지지 않는 한 권의 책 중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 호메로스 이 후 최고의 그리스 작가로 인정받는 카잔차키스의 이 소설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쓰여져 더 흥미롭다. 20세기 초 세계의 화약고였던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카잔차키스의 삶과 문학적 서술이 인물 속에 녹아 든 작품이다. 소설의 화자는 그림자만 보고 만족하던 자신의 삶을 본질 앞으로 데려가겠다며 탄광에 투자한다. 노동자 조르바와 책벌레 화자가 비를 피해 술집에서 만난다.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의미를 찾아내려고 했던 모든 단어의 실체가 조르바의 입을 통해 쏟아진다. 단테의 신곡으로 자유를 느끼던 글쟁이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 영혼을 팽개치고 말 거라는 조르바의 한 마디에 이끌려 먹고 마시고 춤춘다. 그는 양극이 화합할 길을 모색하여 지상의 생활과 하늘의 왕국을 동시에 얻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던 마음을 조르바에게 들켜버린다.


"나를 봐요. 두목, 제발 좀 끼어들지 마시오. 내가 아무리 애써 놓아도 당신이 몽땅 무너뜨리고 말아요. 오늘 인부들에게 한 이야기, 그게 뭐요? 사회주의라고? 개코 같은 소리! 당신은 목자요, 자본주의요? 결단을 내리쇼!"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인생과 그렇지 못하는 인생이 있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대로 살아가는 자가 있고 아는 것을 살아가기에는 부족한 확신에 떠도는 자가 있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를 통해 무엇을 발견하고 확신한 걸까? 그는 내부에 도사린 두 개의 영원한 적대자를 화해시켜야 했고,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을 정리해야 했다. 탄광개발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자 자유의 여신과 함께 노는 해방감을 맛본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 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두 적대자의 화해는 그의 시도를 완전히 날려버렸을 때 이루어졌다. 화자와 조르바의 이별이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녹암을 개발하고 보러 오라는 조르바의 제안을 거절한다. 대공항을 겪어내는 독일의 쓰라린 겨울은 그를 정중하고 차가운 논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었다. 조르바는 그를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로 칭하며 지옥의 낙인을 찍는 편지를 보낸다. 조르바의 죽음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어느 날, 그는 조르바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다. 몇 주일 만에 그의 연대기를 완성한 후 조르바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조르바는 그의 영혼의 동반자인 산투르를 그에게 남긴다.


"말에 어떤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그 말이 품고 있는 핏방울로 가늠될 수 있으리."


하나님께 항의하며 조르바는 인간의 욕망을 무시하는 위선을 벗어버리라고 소리친다. 전쟁이 거듭되었던 그 시대 위에서 조르바 라는 인물은 인간성을 추구하는 상징이지만 열정과 자유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하다. 그 시대를 알고 작가의 정신을 아는 것이 읽기의 목적이 되야 함은 분명하다. 자유를 갈망한 카잔차키스의 생애는 20세기 유럽의 상황과 함께 읽어가야 한다.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하려 했던 그의 삶은 두 개의 적대자를 화해시키는 데에 이르지 못했다. 신에 대적하여 인간의 자유와 육체의 해방을 꿈꿨던 그의 문학 속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는 피곤했다. 고전을 통해 우리가 읽어내야 할 텍스트와 삶은 무엇인지 또 다시 숙제로 남겨진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침묵하는 팔과 가슴이 피 흘리지 않은 채로 이해한다며 위선을 부리고 있다. 무엇에 침묵했는지 기억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초라하다. 크레타 섬의 한 마을에서 순식간에 테러를 당하는 한 여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화자처럼 말이다. 자신의 본질을 보는 것도 두렵고 둘러 쌓여 있는 세상에 대해 침묵하는 팔과 가슴도 불구가 되어간다. 깨어있으라는 말씀은 시험을 당할 테니 벗어날 준비를 하라는 뜻은 아닐 테다. 깨어 바라보는 것과 깨어 움직이는 육체, 모두를 향한 경고다.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는 봄의 처절한 향기를 선물로 남겼다. 나는 겨울 동안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완주한 후였다. 느린 책 읽기에서 깨어난 내 몸은 섬진강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눈보라가 계곡 속으로 들어온 나의 자전거를 사정없이 밀어냈다. 어두운 산 길 위에서 자전거를 끌며 불확실한 두려움의 실체를 생각했다. 얼어붙은 길을 깨는 소리가 내 속으로 울려 퍼졌다.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은 다음날, 다시 달려 간 강가에는 새 꽃이 피었다.


"산 속의 맑은 꽃 핀 레몬과 오렌지 향기가 그윽하게 풍겨왔다. ....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그는 밖으로 달려 나와 봄철 망아지처럼 풀밭을 구르고 춤을 추었다."


이 장면은 내가 뽑은 [그리스인 조르바]의 하이라이트다. 두 적대자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찰나의 시간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또 숙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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