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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l 17. 2021

책의 시간여행

고전 여행자의 책 / 허언


#책

덕분에 살았다. 백수가 백조가 되었다. 지겨운 직장에서 벗어나 책을 찾아 읽었다. 밥하고 빨래하고 책읽고 또 다시 반복. 고전은 밥과 빨래가 지긋지긋하지 않게 해줬다. 읽은 시간이 내 속에 차곡차곡 쌓여져 기름졌다. 내 속에 들어있는 것이 밥과 빨래는 아니니까. 


#잃어버린책 

목차를 살펴보니,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사라진 책들 중에 고전들도 많구나. <노인과 바다>가 들어있던 헤밍웨이의 단편집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20대 한 가운데를 지날 때도 곁에 있었는데. <안데르센 동화집>은 네 자매들 사이에서 낡아져 버려졌을테고, <제인에어>읽고 열받아서 볼펜을 꽉 잡고 써내려간 노트는 또 어디로 가버렸을까.


#삼중당문고 

라떼가 말일 때, 가방에 쑤셔넣고 읽던 <25시>와 <인형의 집>과 선배가 추천해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는 기억도 가물거리니 읽었으나 읽었다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고전시대를 살아온 중년이 되었고 내청춘이 읽은 고전들은 희미해져간다. 


#딸의질문 

“그걸 왜 읽어요?” <종의 기원>과 씨름하는 엄마가 신기하단다. “여기저기서 말하는데 진짜 어떻게 써있는지 궁금해.” 궁금하면 돈 내고 책을 산다. 그리고 읽는다. 대문 앞까지 가져다주니 마다할 이유가 있나? 


#여행자선배 

어떤 길을 찾아갈지 결정할 수 있다. 고전이라는 여행을 먼저 떠나본 이에게 물어보면 쉽다. 대놓고 명문대에서, 세계적인 언론들이 자기들끼리 무책임하게 정하기도 한다. <고전여행자의 책 >은 남다르다. 친절하게 가이드해주는 손길로 편집해 백열여섯권을 엮었다. 작가와 배경에 대한 각주와 핵심요약을 예쁘게 덧대어서 고전에 움찔하는 독자를 보살펴준다. 


#시간여행 

할 수 있다면 어느시대로 가고 싶나요? 이런 질문이 생각났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탄생년도를 주의깊게 살피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제목 때문도 아니었다.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즈음에야 나는 이 책이 인간의 역사를 모아놓은 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대순으로 나열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지금 내 속에 자리잡은 잠재된 인식과 교육된 지식과 정립된 가치관의 근거들이 이 고전들이었다. 자의로 찾아읽었든 타의로 주입되었든 나는 古典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덧붙임

고전은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는 두려움이 독서를 밀어낸다. 살기도 힘든데 왜 이런 책들과 씨름하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 그럼 난 이렇게 묻고 싶다. 또 먹으면 찔텐데 왜 살을 빼야된다고 고민해? 고전은 미디어홍수에 불어터진 뇌를 근육질로 바꿔주는 트레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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