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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20. 2021

독서의 기술 (다산지식경영법과 비교)

How to Read a Book/M.J. Adler



20세기를 꽉 채워 100년을 살아낸 철학박사 모티머 J.애들러는 책 읽는 방법에 대한 경전 한편을 썼다. 40세에 쓴 책을 30년 후 인 1972년에 개정했는데, 그동안 미국의 읽는 교육이 아직도 제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안타까워 했다. 우리 나라는 어떠한가. 대학 수학능력시험 중 언어영역의 비중은 상당하다. 교육에 관심있는 부모들도 자주 말한다. 독서 많이 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고. 하지만 과연 우등생들의 책읽기는 지식을 넓혀주고 있을까.


책 읽기는 지식을 위한 능동적인 에너지의 발산이다. 또한 책을 읽는 것은 저자와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다. 꼭 잡고 있는 공으로는 게임도 없고 즐거움도 없다. 책을 통한 지식의 소유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배우는 교육과는 다르다. 교사없이 배우는 스스로의 깨달음이다. 독서는 두뇌를 깨우고 감각을 사용하며 경험을 들추어내는 통합적인 활동이다.


점수를 위한 글읽기로는 지식의 에너지를 키울 수 없다. 뇌리에 남아 사람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할 수 없다. 생각을 넓히는 이유는 새로움을 위해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자의 탄생은 종국에는 저자를 만드는 싹과 같다. 모든 저자들은 한 명의 독자였고 누군가는 한 권의 책읽기로 혁명을 시작했으며 세상은 변화되었다.


한 권의 책은 한 권의 사람이다. 그리고 한 권의 책은 독자를 통해서 완성된다. 의욕적인 독자가 되지 않으면 저자를 읽을 수 없다. 글을 읽는다 해도 정신을 읽을 수 없다. 애들러는 의욕적인 독자가 되는 법을 가르친다. 책이 전달하는 지식의 특성을 파악하고 책에 따라 각기 알맞은 방식으로 읽는 법이 있음을 보여준다. 책은 건물의 설계도처럼 짜여져 있어 저자가 지어놓은 의도와 전개를 찾아내야 비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조언한다.


이제 독자는 새로운 권리와 특권을 행사할 자격을 갖추었다. 비평의 시간이 왔다. "가장 잘 배우는 독자는 가장 비평적이다."고 선언해주었으니 독자는 저자의 동료가 되었다. 독자의 비평은 책을 통한 소통의 열매다. 역사상 훌륭한 저자는 훌륭한 독자였다. 훌륭한 독자의 비평은 새로운 저자 탄생의 예고편이다.


공부의 세계로 입문하면 한 권의 책으로 만족할 수 없다. 두 권 이상의 책을 통합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이 갖춰졌다. 독서의 4수준에 이르렀다. 주제를 파악하고 스스로 쟁점을 규정지으며 공격적인 글 읽기로 나아간다. 통찰에 대한 에너지가 없으면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그러나 머뭇거리지 말라. 이제 독자는 다만 읽기만 하는 자가 아니다. 쓰기 위해 읽고 있는 새로운 저자이다.


애들러의 독서법의 전개는 도전의 의욕이 꺽일만큼 수준이 높아진다. 책 좀 읽어보겠다고 찾아온 사람을 험산준령을 넘자고 끌고가는 형색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우리가 그동안 해온 일반적인독서는 수동적인 형태였고, 애들러가 지향하는 독서법의 방향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에서 요구하는 독서는 책을 통한 지식의 습득의 폭을 넓히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방향을 지향한다.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이런 독서법의 대가가 있었다. 정민교수는 그의 책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에서 정약용의 공부법을 "다산치학 10綱50目200訣 "로 정리했다. 통합적 인문학자인 다산은 책읽기의 능동적 방법과 비평의 실제는 그의 저서들이 증명하고 있다. 정민교수가 觸類旁通法촉류방통법이라 칭한 "비슷한 것끼리 엮어 옆에까지 통한다"는 이 지식경영법은 통합적 책읽기의 제4수준의 독서법과 통한다.


애들러의 독서법과 다산의 지식경영법은 다른 시대의 다른 문화적 배경을 뛰어넘는다. 두 학자는 지식을 위한 책읽기에서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정민교수는 그의 책의 5강에서 논리의 힘은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는데, 그 중 彼此比對피차비대(유용한 정보들을 비교하고 대조하며), 屬詞比事속사비사(갈래를 나눠서 논의를 전개하고), 一反至道일반지도(발상을 뒤집어 때달음에 도달하는)의 수준으로 나아간다. 다산의 공부법은 독서를 기초로 전인격과 국가의 창조적인 경영에까지 이르른다.


애들러는 부록의 추천도서 목록을 통해 서양 역사 속의 다산과 같은 인물들의 책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137명의 서양의 명저들은 평생동안 읽어 볼만한 가치가 있다. 인류가 영구히 관심을 가지고 있을 만한 주제에 관해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다. 분명 책 읽는 기술을 향상시켜줄 만한 능력 밖에 있는 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신을 확장시켜야만 배울 수 있다는 애들러의 이론을 신뢰한다면, 때로는 우리의 머리를 넘어서는 책을 붙잡아야 한다.


좋은 책 읽기는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다. 한 눈에 들어온 그림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그림들 속에서 자리잡고 있는 작은 그림을 찾아내는 것 처럼 저자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단어의 의미를 찾고, 문맥과 맥락을 이해하며 그 사이를 이끌고 있는 통일성과 논리를 찾아야 한다. 결국 작가가 책을 쓰기 위해 개요를 작성했던 흔적까지 독자가 발견하는 기적이 일어난다. 저자와 독자의 合一의 순간이 왔다.


훌륭한 책은 책장을 넘기기 전에 앞으로 전개될 생각하고 질문하게 한다. 내가 생각한 내용을 다음 단락에서 발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저자와 함께 호흡하며 책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세계에 있음을 황홀해진다. 훌륭한 저자와 좋은 독자의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때로는 시간의 흐름을 사정없이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두려워지지 않고 스릴을 느끼는 모험과 같다. 지식을 넓혀주는 책 읽기는 살아있는 공부의 진정한 자유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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