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 안경 / 조르조 바사니
#외국소설
읽기 어려울 때, 역사와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무솔리니 집권기의 이탈리아 페라라에 사는 부르주아 유대인이라면? 이 배경이 조르조 바사니 문학의 핵심이라는데, 200페이지도 안되는 작은 책을 읽으려고 역사책을 먼저 읽어야 하나?
#배경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데. 백년전 부유한 유대인 집안의 문학가의 삶을 상상해보는 건 소설을 읽는 가장 매력적인 일이다. 바사니는 처음 만난 나를 일차세계대전 후 이탈리아 북부의 도시로 데리고 간다. 파시즘 체제의 공포나 유대인 박해의 비참함을 서술하지 않아도 소설 속에 들어가면 알게 된다.
#도시
페라라의 지도까지 첨부된 책. 바사리는 <페라라 소설>로 대표되는 작가라고. 연극무대처럼 그려지는 도시 풍경,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미묘한 갈등, 관찰자 시점의 섬세한 묘사가 짧은 소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전쟁 이후 유럽의 부르주아들의 풍요로운 삶이 그들 속에 내재된 사회적 불안과 겹쳐지면서 상황이 고조된다.
#그사람
금테 안경을 쓴 잘나가던 의사선생. 자신이 내세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은 성품과 기질과 학식으로 칭송하고 원하지 않은 파시스트 당원증까지 씌워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을 알게 된 후, 그는 하루 아침에 '그런'사람이 된다. 어릴 때부터 그를 알고 지낸 '나'는 그의 몰락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연민을 느끼지만 거리를 둔다. 결국 자신이 유대인으로 당하는 비극을 겪게 된 후에야 '그런'사람이라는 올무가 도시를 절망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개인
존중받아야 마땅할 인간의 가치는 집단 앞에서 무력해진다. 도시 안의 부르주아, 그 안의 파시즘, 그리고 유대인, 거기에 동성애자까지. 개인은 분류당해 행복과 불행의 선긋기로 나눠지고, 교집합 속에 끼어들지 못한 개인은 위기의 상황에 놓였을 때 절망에 갇히게 된다. 페라라는 바사니의 소설 속에서 화려함과 외로움의 역설적 공간이다.
#안경
얼마전 금테안경을 맞췄다. 내 한심한 눈을 도와주는 훌륭한 기능이 있다. 다초점에 변색기능까지. 짝눈, 난시, 노안, 눈부심도 문제없다. 남과 다른 것은 무엇이든 누구에게든 있다. 안경의 도움을 받으면 바라보는 건 어렵지 않다. 보이지 않는 것은 시력의 문제만은 아닐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