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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n 30. 2021

소설로 수혈받다

나폴리 4부작 / 엘레나 페란테


나에게 나폴리 4부작은 수혈이었다. 


2년 전 심한 하혈로 두 번의 수술을 하고 회복 중에 나폴리 4부작을 읽게 되었다. 작가가 진액을 뽑아내듯이 써 내려간 소설이 마치 헌혈처럼 느껴졌다. 생명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의 혈관 속으로 전해지는 피처럼 내 속에 이야기가 흘렀다. 소설을 찾아 읽는 혈액형이라면 엘레나 페란테의 소설로 몸이 뜨거워지는 경험이 가능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을 때는 겨울이었다.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간 서평단 모임, 모두 20대라니! 눈치도 없이 아줌마가 왜 나왔나 괜히 주눅이 들어지만, 소설을 읽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 눈이 밝아졌다.


'좋은 소설은 이런 것이구나. 삶의 문을 하나씩 열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비추게 하는 것이구나.'


미셸 오바마가 왜 휴가 때 이 책을 가져가겠다 했는지 알겠다. 


썬 베드에 누워 읽으면 딱이겠지만 나의 날은 차갑고 세상은 어두웠다. 엘레나 페란테는 필명으로 자신을 감추고 동굴 속에 숨어 나폴리의 빛을 써내려갔다. 글을 쓰는 내내 살아온 세월을 비춰 구구절절 자신을 투영하고, 혼란의 실체들을 하나씩 벗겨내 보는 것. 그 또한 문학의 힘이니까.




나폴리에서 절망이란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를 뜻하거나 땡전 한 푼 남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두 여자 아이가 이태리의 나폴리, 가난한 시골마을에 살았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사랑하나 질투를 감추고, 서로 다르나 같은 동네를 벗어나지 못했던 가난한 두 소녀. 그녀들은 한 남자를 사랑하고 결국 모두 그 사랑을 잃는다. 


아무것도 없지만 완벽한 지성, 날카롭고 도발적이며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릴라. 


아무것도 없지만 철저한 헌신과 두려움과 끈기를 가진 레누. 


두 여자의 우정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된 마을사람들의 과거의 증오와 대립관계, 추악한 면으로 이뤄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난다. 소설의 갈등관계는 시작부터 팽팽하다. 2대에 걸쳐 이어진 관계들은 릴라의 결혼으로 큰 경계의 해체가 이루어진다.


살아온 세월이 길지 않을 때는
혼란스러운 감정의 바탕에 있는 혼란의 실체를 이해할 수 없다

이 소설은 가족들의 이야기이며  60년대 이탈리아 남부 한 마을의 이야기이자 한 사람의 근본을 파헤치는 이야기이다. 피냄새 나는 전쟁의 역사처럼 사람들의 잔인한 관계 속을 헤집는다. 그들의 이야기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생을 이야기 한다. 물질 만능주의 속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극복의 서사라고 감히 부르고 싶다. 가난한 여성으로서의 틀을 뛰어 넘으려는 소녀들과 물질과 계층 속에서 자신을 지켜 내려는 소년들의 투쟁기라 해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랑은 두려움이라는 한계 앞에서 때로는, 혹은, 누구는 굴복하며 가끔은, 또는, 누군가는 맞선다. 좌절하며 체념했던 소년은 어느 날에는 소녀를 구원하는 투사로 변신하기도 하며, 가진 것으로 호기롭게 사랑을 취해보렸던 또 다른 소년은 그 또한 얻지 못하고 가진 부에 만족하지 못한 아버지의 모습에 갇혀버린다. 


소녀들의 도전은 오히려 용기있다. 사랑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던져버리거나 우정을 위해 포기하기도 하고, 끈기있게 자신을 뛰어넘으려고 애쓰지만 어머니를 붙잡았던 어두운 그림자가 자신을 덮을까 두려워한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었지만, 사랑하고 질투했던 한 영혼 때문에 서서히 깨어난다. 



저는 이야기를 시작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냉정하지만
안으로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뜨거운
 마그마가 존재하는 글을 쓰려고 합니다


엘레나 페란테는 필명으로 자신을 감추고 여성들의 고통과 투지를 써내려갔다. 작가의 의도는 소설 속 화자의 욕망처럼 은밀하고 강렬하다. 자신의 행동과 스스로가 항상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그녀. 등장인물들의 인생을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감정의 흐름을 무늬처럼 촘촘하게 짜내려 가는 멋진 소설을 완성했다.



글쓰기는 모순적이고 짓눌린 듯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삶의 재생입니다



우리는 왜곡된 삶을 정확하게 바라보지 않으려 한다. 


다른 이의 삶이면 쉽게 판단해 치워버리거나, 나의 삶이면 연민과 자기합리화로 덮어버린다. 


소설 읽기는 내가 차마 써내려가지 못한 삶을 대신 재생해주는 치유와 극복의 과정이다. 내가 삶을 얕잡아보고 무시하려했던 것은 아닌지. 누군가의 삶이라 무시하고 저렴한 감성에만 의지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아니면 감히 범접할 수 없다고 내 삶의 한 부분을 포기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치밀하게 비춰보면서, 나는 소설을 읽는다.


내 격렬한 감정적 동요는
그 감정의 원인을 제공한 이의 흔들림 없는 순수함을 해치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었다




덧붙임. 나폴리 4부작은 2년에 걸쳐 번역되고 한길사(그렇다. 조국의 책이 나온 곳이다)에서 출판되었다. 

나는 톨스토이의 [안나 까레리나]를 한달 동안 읽은 후, 연이어 나폴리 4부작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었다. 2년 동안 읽은 나폴리 4부작에 더 길고 더 많은 등장인물이 등장했으며, 더 역동적인 소설이었다. 


각 권마다 맨 앞에 등장인물이 집집마다 간단한 족보로 소개되어있다. 

읽다보면 이 족보를 찾아 앞 페이지로 돌아오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이태리 이름들이 너무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러시아 이름들 보다는 짧아서 잘읽힌다. 


이름은 늘 많은 것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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