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페미니스트 / 록산 게이
지난 겨울, 막내가 읽겠다고 고른 책들 중 하나.
왜 이 책을 골랐는지 궁금했다.
//불편하고 두려워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부제가 핑크색 표지만큼 도발적이다. 기꺼이 나쁜 페미니스트가 되려는 문화비평가의 독설이 미국 문화를 꼬집고 있었다. 대한민국 십대 여학생이 읽기에는 버거웠겠다.
내용은 어렵지 않다. 작가는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개인적 사건도, 풍족한 흑인 이민자 가정의 비만 여성으로 낮았던 자존감도 솔직하고 담백하게 이야기 한다. 다만 낯선 미국 영화와 드라마에 대한 비평에서는 독서의 흐름이 자주 끊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페미니스트]는 독자들 앞에 당당하다. 문화비평가의 목표란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위에 덮여진 안개를 걷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면서 크건 작건 수많은 부당함을 목격하면서 생각한다. "끔찍해" 하지만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 싸움을 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우리는 침묵을 지킨다. 침묵이 더 쉽기 때문이다.//
록산 게이는 복잡한 주제들이 교차되는 지점을 발견해 글을 쓰기 원한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듣기 싫을 때는 끌어내리는, 진실보다 다른 것을 찾는 대중들에게 독설의 화살을 날린다. 그는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에 관심 있는 작가다.
그는 여성의 고통이 남성의 내러티브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리는 할리우드의 스토리가 불편하다. 노예제도를 가져와 만들어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노예제 복수revenge 판타지를 거부한다. 자신의 방식으로 존엄을 찾고 백인의 아량과 호혜와 상관없는 리얼리티를 갈망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우리가 이룬 성공을 축하하고 특권도 인정한다. 다만 이쯤에서 만족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앞으로 더 해야 할 일이 많음을 잊지 않고 싶을 뿐이다. 여전히 권리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여성들을 모른척하고 지금 갖고 있는 것에 위안을 찾고 싶지 않을 뿐이다.//
#METOO 해시태그는 기타 등등에 밀려났다.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듣던 미투는 한 달도 되지 않아 뉴스에서 사라졌다. 문명의 도구들에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고 누구도 자신하지 못하겠지만 타인의 입에 귀를 의지하는 가짜 페미니스트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록산 게이의 글은 솔직하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상보다 현실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며 왜 우리가 평등해야 하는지 직설을 던진다. 글을 읽으며 작가의 실물을 느끼는 책은 좋은 책이다.
덧붙임: 이 책을 완독하면 영화와 드라마를 좀 다르게 보인다.
불편한 페미니스트라면 선명하게 보기 위해 진실의 안경을 쓰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한다. 나도 안경알을 열심히 닦아가면서 인피니트워를 봤다. 죽을뻔한 헐크는 불러도 나오질 않고 같은 색 피부 드모라는 죽음을 불사하고 맞장을 뜬다. 역시 어벤져스 중 최고는 블랙위도우. 그녀는 초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또 덧붙임: 막내는 아직 다 읽지 못했다는데...
며칠 전 수업시간, "너의 롤 모델이 누구니"는 선생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단다.
//나는 나 자신을 롤 모델로 만들어가려고 해요//
음... 그래.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