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륜 May 17. 2021

두들겨라 그러면 써지리니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



작가들이 등장하는 영화의 장면들은 매력적이다. 

샌드백을 치며 펀치를 훈련하는 권투선수처럼 넘치는 에너지로 키보드를 두들긴다. 

이미 다 알고 있는 노래를 부르듯, 


“타다닥, 타다닥” 


유혹적인 소리들이 백지를 채워간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하더니 허공에서 낱말들을 잡아 새겨 넣는다. 하나씩 하나씩...


쓴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이야기를 채우는 것이 작가의 숨쉬기다. 

재미있던지 지루하던지 결국 누군가에게 읽히지 못하고 처박힐 운명일지라도 쓰는 것은 호흡이기에 멈출 수 없다. 쓰는 것을 멈추면 작가의 생명은 멈춘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여도 시간을 잠시 늦춰줄 뿐 작가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다. 

스스로 호흡하는 것, 작가에게 살아있는 것은 글쓰기다.


“인생은 예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다.” 

이름처럼 비싼 값으로 히트작을 날리던 스티븐 킹이 자신의 작가이력서 마지막에 고백한다. 

그에게 쓰기 위한 인생이 곧 예술이었다. 이런 작가정신을 가진 사람에게 백지는 경박하게 대할 수 없는 진지한 존재다. 마음 속 생각을 완벽하게 옮겨 적어낼 수 없을까봐 두려워 떨지라도 빈 종이를 채워 넣는 작가에게 글쓰기의 진지함은 당연하다.


이미 재료는 머리에 들어있고 가슴으로 농익었지만 연장통을 꺼내어 하나씩 연결하지 못하면 쓸모가 없다. 

연장통을 들고 다닐 팔 힘도 점검하라. 

문단이라는 지도를 펼치고 의도와 주제에 벗어나 헤매지 않도록 기본을 지키며 글쓰기에 들어서라. 

기본을 잃으면 생명도 짧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작가는 자기가 본 것을 말하는 소임을 가지고 있으며 이야기의 진행자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자신의 작품이 진실하게 들리기를 바란다면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입을 다물고 남이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이다.


스티븐 킹의 창작론은 그의 다사다난했던 작가 이력에 비하면 평범하고 당연하다. 

좋은 소설은 반드시 스토리에서 시작되어 주제로 나아간다는 그의 확신을 이 매력적인 글쓰기 책이 증명하고 있다.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답게 그는 자신의 작가론을 화면으로 보이듯 펼치고 있다. 인물들이 등장하고 대화를 이루며 사건이 발생하고 갈등이 진행된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처럼 작가로서의 자신을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일시에 연결되는 통찰력의 순간 때문에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스티븐 킹. 

그의 열정이 고스라니 전해지는 창작이야기가 그의 소설 만큼이나 흥미롭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던 시기에 알콜중독으로 취해있을 때에도 그의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인생에서 쫓겨난 기분으로 쓴 작품이 모호하고 재미없어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은 쓰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 때도 글쓰기로 극복한다. 


"... 그리고 분명한 것은 다만 얼마쯤 뒤에는 낱말들이 더 빨리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 ... 고통을 이겨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신나거나 흥겨운 느낌은 아니었지만 성취감으로도 충분히 흐뭇했다. 어찌했던 시작은 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백지를 마주하는 공포는 몸의 통증만큼이나 고통스럽지만 그 순간을 넘어가면 모든 것이 차츰 나아진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는 시작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빈 길에 발자국을 남기듯이 묵묵히 달려가면 이야기가 완성된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지 않으면 음악은 들리지 않고, 

캔버스 위에 붓을 움직이지 않으면 밀밭 위의 까마귀가 날지 않는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쓰는 것이라던,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 속의 대사가 낡은 타자기의 펀칭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두들겨라 그러면 써지리라. 

Punch the keys for the story.


가자, 이야기의 끝을 누구나 기다린다. 

이전 14화 말과 글 앞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