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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May 22. 2021

말과 글 앞에서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아이히만] 김훈 [남한산성]



말을 하지 못해 글을 쓴다. 내 입을 믿지 못해 손에 기대어 생각을 지어내니 부끄럽다. 책을 읽고 쓰는 글은 낯을 두껍게 하지 않고는 감히 쓰지 못한다. 전쟁을 이긴 철학자의 눈 빛을 따라가기가 힘에 벅차기만하다. 낯선 나라의 비극을 보고하는 그 자리 앞에 나는 글을 말처럼 읽어낼 수 없어 답답했다.


글 또한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내 아둔함을 탓하고 마음을 잡고 읽어보지만 답답하다. 한나 아렌트의 글은 우리말의 글로 옮겨지며 낱말들이 꼬여져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길사가 자존심을 세우며 출판해내고 있는 그레이트북스 시리즈 중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 들었다. 인문학의 길은 쉽지 않다. 지식의 열정만 가지고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 일상의 정성과 시간의 공력이 지성을 힘있게 만든다. 모든 일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통해 역사를 배우려고 애를 쓴다. 아이히만이라는 어디에나 만날만했던 그 당시의 독일인에게 그 시대의 죄를 묻는다.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알고 있는가. 법으로 형식으로 의문을 던지는 법정에서 그의 행위의 흉악성을 증명하려는 과정은 복잡했다. 많은 이들의 증언과 기억이 더듬어진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사상과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분별하는 지를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너 자신을 아는가. 아이히만의 오류는 단순하여 복잡한 시대의 악을 극복할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어리석고 허위와 자기기만이 결합된 그는 범죄가 현실의 한 부분이 되어버려 현실대면 능력을 상실했다고 아렌트는 기록했다. 현실과 사실성으로 부터 분리된 당시 독일사회의 의식이 아이히만의 정신으로 스며들었다.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동안 인간의 생명의 말살하는 일에 무감각해진 아이히만의 행위를 그에게만 죄악으로 낙인 찍을 수 있는가. 권력의 난봉은 같은 민족에게도 예외가 없다. 격정의 시대를 거슬러온 우리 앞에 정의는 무력감으로 던져질 때가 또 얼마나 많았는가. 씨름하며 읽어내는 동안 겹쳐지는 내 나라 역사에 마음이 저렸다.


조선의 임금 인조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충심 앞에 무력하나 자비하다. 자신과 나라를 알기에 갈 길을 견딘다. 왕은 견디고 백성도 견디는 겨울은 몹시도 추웠더라. 읽는 내내 덥지 않았다. 조선의 왕은 붓을 놀리는 자들에게 구걸한다. 문인들은 숨통을 걸고 핑게를 댄다. 칸은 붓을 놀리는 자를 다스린다.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 칸은 조선의 말이 사특하고 요사스럽다 한다. 힘 앞에 글은 무력했다.


김훈은 그 저민 역사의 구구절절함을 남한산성에 가두고 손 끝으로 글을 썼다. 김훈의 글은 짧고 차가워서 내가 읽어내는 책의 농도를 짙게 했다. //... 일상의 구체성 안에서 구현될 수 없는 사상의 지표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은 내 마음에 들었다. 김훈은 행간 사이의 굴욕과 진땀을 연필로 꾹꾹눌러 제어한다. 짧은 문장 사이에 숨을 고르느라 읽기가 버거웠다. 읽혀 남음이 가슴을 파고 드니 우리말이 서럽다.


문학 앞에 철학자의 법정 보고서는 초라하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도 항거하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글 앞에서 그 죽음들은 졸렬하니 예루살렘의 애통함은 하늘에 닿고 바다를 넘나든다. 시간이 지나고 기억 속에 존재하는 말들은 아이히만이라는 한 사람 위에 악의 심판을 내리려고 구구하고 절절하다. 이방의 외계인은 그 사연들 앞에 낯설어 감히 철학자의 논조를 읽어내지 못한다. 나는 다만 문학의 기운에 얹어 역사 속에 나를 비춰볼 뿐이다. 항거와 항복 중 어느 길이 나의 길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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