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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편덕후 Feb 13. 2021

쿵푸의 시작

남편덕후 비긴즈4


 놓은 책을 주말 동안 열심히 읽고 있다. 미용실에서.
 대화 이후, 마음만 가꾸면 되지  외모를 가꾸는지는 나도 모를 일이지만,
머리 주변을 빙빙 도는 기계 아래에서 독서를 하자니 머릿속을 개조하는  재미있는 기분이 든다.

일단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으로 진보-보수 이해하기.
나에게  필요했던 내용이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머리가  비어서 뭔가를 쌓아 올릴 틀조차 없는  문제였으니.
예를 들어, 어른들 세대에서 자주 듣는 " 사람 민주주의자가 아니고 공산주의자야~"라는 말은 오류다.
민주주의는 정치적 개념이고 공산주의는 경제적 개념이니까.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 정도가 되는 거구나. 자본주의는 기업과 자본가의 지지를 받는다. 세금을 줄이고 분배보다는 성장 중심의 정책을 갖기 때문에 정당도 보수 정당과 어울린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어르신들은 대게 저임금 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저임금 노동자가 공산주의를 병적으로 비난하는 이상한 구도는 우리 역사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구나. 독특성보다는 아픔이겠지.
신선했던 사실은 진보와 보수의 스펙트럼을  줄의 그래프로 그려봤을 , 종교는 보수 쪽에 있다는 사실. 종교는 기본적으로 내세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현실을 바꾸려는 마음이 적다는  책의 내용이었다. 세월호 사건  부활절 예배를 드리던 교회의 모습이 스쳤다. '그럼에도 감사하자', '기도로 기다리자', '사람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자' 같은 말들은 잘못된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손발을 묶어두기  좋은 구실이 되었다. , 분명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버림받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셨는데.  부분은 나중에 그분과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서 여쭤봐야겠군.

탈색했던 끝머리를 잘라내고 앞머리도 단정하게 다듬었다. 어설픈 탈색으로 상징되는 나의 지난날을 떠나보낸 기분이 들었다.



월요일이 밝았고, 아침 직원회의가 끝나자마자 외근을 준비하는 그분을 지나치는  말을 걸었다.
" 주말에 칸트  샀어요!"
, 목소리가 살짝 떨리긴 했지만 좋아, 자연스러웠어.
자리를 정리하던 검은 코트가 눈을 똥그랗게 떴다.
" 정말요?"
"! 자본론 관련된 것도 하나 사고..."
"그러셨어요? ... <자본론> 김수행 교수님이 번역한  사시는  좋은데..."
" 그건 아니고 관련된 얇은 책이었는데. 누가  건지는  봤네요..."
"저도  공원 어딘지 찾아봤어요."
으악. 검은 코트가 미소를 짓자 누가 주먹으로  심장을 세게 때렸다.

 공원이라면!  안에서  철학자의 이름을  공원 이야기를 스치듯 했었는데. 사실 철학에 대해선 아는  없어서 뭐라도 끄집어냈던 소재였다. 그러니까 지금 그걸 기억했다가 주말에 컴퓨터를 켜고 검색창을 열어서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고 검색을 해봤다는 말씀이신가? 그건 나와의 대화가 잊을  없을 정도로 강력했기에 검색해  수밖에 없었다는 ? 나는 피어나는 망상을 뿌리치고 태연한  자리로 돌아왔다. 이상하게 손끝이 차갑고 몸에 긴장이  풀리질 않았다.

 시간 , 서점으로 외근을  그분에게서 카톡이 왔다.

"칸트 관련 도서를 "구입" 하신 거죠? 저한테 연락 한번 주시지....  제목과 저자   있을까요?"
"칸트 도서는 얇고 쉬운 책이에요! <초역 칸트의 >이라는 책이에요. <자본론 공부> 샀어요. 완전 처음부터 공부해 보고 싶어서요!"
"쿵푸에 입문하셨군요~  그때 커피에 입문했는데. 입문 동기네요"

잠시  그분은 서점 매대에 올려져 있는 <자본론 공부> 사진을 보냈다.

"인문 베스트에 올라와 있는 책이네요. 열공 하십시오 ^--------^"
"독파할  있을지ㅠㅠ감사합니다 스승님ㅠㅠ"
"스승은 무슨ㅠㅠㅠㅠ 독파할  있습니다!! 여튼, 쿵푸할  있는 공부가 되길!! "
"근데 쿵푸하는  뭐에요?"
""공부"라는 말이 "쿵푸"에서 나왔어요. 쿵푸를 통해 몸을 수련하고 적에 맞서 싸울  있듯 공부를 통해 세상 정사와 권세, 우리 시대 강력한 우상들의 작동 방식을 간파할  있게 되고 또한 이에 맞서 싸울  있게 되는 법이지요. 그래서 공부는 수련이고 수련하듯 인내를 가지고 해야 하는 법입니다^^
요즘엔 사람들이 이런 공부를 하질 않기에...좋은 공부 하길 바라는 마음에^^"

말투 뭐야 장원 급제하실 기세네. 내가 크크크와 느낌표를 남발할 동안 보내 주시는 느리고 길고 깊은 메세지.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성경 공부 외의 공부를 독려해 주는 목회자는 처음 만나보는  같다. 철학이나 역사, 정치 같은 영역은 하나님과 적대적인 '세상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런데 공부를 통해 잘못된 세상에 맞설 힘을 가질  있다니.  이상 걸어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신앙의 여정에  다른 길이 열리는  같다.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는  훨씬 많지만 뭔가 두렵지가 않다. 야만의 세상에 가라앉지 말라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좋은 스승님이 계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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