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혁신-25
‘조직운영’이란 용어는 명확한 정의 없이 단순히 ‘조직을 운영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필자는 조직운영(Organizational Management)을 ‘조직 목표 달성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원 확보와 운영을 계획, 실행, 조정/통제하는 모든 활동’으로 정의할 것이다. 디지털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로 자주 거론되는 경영관리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조직운영’이기에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려는 것이다. 조직운영은 구성원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업무방식과 이에 영향을 끼치는 조직구조 및 조직문화를 포괄한다. 업무방식은 개인과 팀, 나아가 조직 전체가 임무 완수를 위해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역할 분담, 작업 실행, 결과 평가 및 피드백 등을 수행하는 절차, 기준 또는 원칙, 도구, 방법론 등을 가리킨다. 예를 들면, 기업의 CxO는 자신에게 주어진 크고 작은 문제(예: 투자 결정, 임원 영입)를 본인의 지식/경험과 확보 가능한 데이터를 활용해서 해결방안을 마련한다. 제조업체 생산직원은 부품 가공이나 조립, 검사 등 작업을 자신의 기량과 주어진 장비, 자재, 치공구 등을 활용해서 정해진 기한 내에 목표 수준의 품질을 갖춘 결과물로 만든다. 전사 차원에서는 제품 기획으로부터 설계-제조-조립-시험-출하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이 표준화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진행된다. 조직구조는 구성원 각자의 역할(예: CEO, 생산관리자)과 구성원 간 상호작용(예: 지시/보고, 협조)을 설계한 것이다. 조직문화는 구성원이 공유하는 가치관, 행동 양식, 사고방식 등을 포함한다. 사람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조직운영’이라고 한다면, 사람 몸의 골격은 ‘조직구조’, 팔다리와 두뇌를 가동하는 방식은 ‘업무방식’, 긍정적/부정적 사고방식이나 적극적/소극적 태도는 ‘조직문화’에 해당한다.
조직구조는 의사결정 권한을 어떻게 분배하는가를 기준으로 관료제 조직, 방임형 조직, 분권조직, 자율조직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관료제 조직은 의사결정 권한이 (최고) 경영층에 집중되고 그중 일부를 계층적으로 하향 위임하는 구조이다. 반면, 자율조직은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조직(예: cell, 팀)이 독립적, 자율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함으로써 조직 전체가 높은 성과를 내도록 하는 구조이다. 의사소통은 조직구조에 따라 수직적(: 하향식/상향식) 또는 수평적으로 흐른다. 개인/팀의 업무방식은 독자 수행 또는 공동 수행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체 조직의 업무 프로세스는 고정적/정형적이거나 가변적/비정형으로 설계-운영할 수 있다. 가변적/비정형 프로세스는 상황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조직문화는 추후 논의하겠지만, 학자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다. 조직문화는 이를테면 여러 가지 내/외부 요인에 의해 개방적이거나 폐쇄적,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으로 형성되어 창의성, 포용성/다양성 등을 높이거나 낮추는 결과를 만든다.
조직운영의 효율과 성과는 조직구조, 업무방식, 조직문화 등에 따라 달라지므로 이들 각각이 성과에 기여하도록, 또 서로 시너지를 내도록 설계하고 그에 부합하는 성과지표로 관리하여야 한다. 조직운영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실무자와 경영진이 보유한 기량과 사용하는 도구나 기법이다. 조직구조와 조직문화는 성과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성과지표는 조직운영과 그 구성요소인 (개인/팀/전체 조직의) 업무방식 및 조직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지를 구체화한 것이다. 이상적(ideal) 성과관리 모형 중 하나인 균형성과표(BSC: Balanced Score Card)는 단기/장기, 재무/비(非)재무, 과정/결과, 내부/외부 등 4가지 측면의 균형을 도모한다.
세계경제포럼은 디지털 (조직)운영 모델을 설계-구현할 때 적용할 5가지 원칙으로 고객 중심, 간소화, 데이터 기반, 자동화/지능화, 개방 & 유연 등을 꼽았다(WEF, 2017). ‘고객 중심’은 높은 시장지배력을 갖기를 원하는 모든 조직이 지향하는 운영원리이다. ‘개방 & 유연’은 내/외부 여건이 변하더라도 연결과 협업을 통해 지속적 혁신을 이룩하기 위한 원칙이다.
<표-1> 디지털 조직운영 모델의 5가지 영역과 5가지 원칙 (출처: WEF, 2017)
<표-1>은 5가지 조직운영 영역에 5가지 원칙을 적용하는 기준을 정리한 것이다. ‘조직’ 영역에서는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수요자인 고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방 & 유연) 실무자에게 권한위임하고(: 분권화, 자율 부여), 전문가조직(COE: Center of Excellence)으로 하여금 표준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를 추진토록 해서 전사 차원에서 낭비나 중복을 피하고(: 간소화) 업무 수행 시간/비용/노력을 줄인다(: 지능화/자동화). ‘프로세스’ 영역에서는 디지털화를 통해 제품/서비스 생산 전 단계에서 내/외부와의 협업을 연결, 통합한다. ‘직원’ 영역에서는 실무자들이 고객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을 통해 기민한 실험/학습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최적화/자동화하고, 내/외부 파트너와의 연결,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도록 유도한다. ‘문화’ 영역에서는 위와 같은 혁신을 통해 고객 중심, 간소화, (실행 또는 운영하기 前) 설계, (지식/경험/자산) 공유 등 창발성을 높이는 업무 환경을 조성한다. ‘핵심성과지표’ 영역은 조직, 프로세스, 직원, 문화 등 조직운영 영역에 대한 디지털 혁신이 실질적인 재무 성과(예: ROI, NPV: Net Present Value)와 협업 수준 향상(: 정직원 비율 감소)으로 실현되도록 관리한다.
조직운영의 디지털화는 한편으로는 개인/팀 및 조직 전체 업무방식을 디지털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디지털화를 촉진할 수 있는 조직구조와 조직문화를 만드는 작업이다. 후자 즉, 조직구조와 조직문화의 디지털화는 추후 별도로 논의하기로 하고 이글에서는 전자 위주의 접근방안을 제안할 것이다. 업무방식의 디지털화는 적용 기술과 대상 업무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구현할 수 있다. 예를 들면, 기초 수준은 수작업 및 종이 중심 작업 방식과 직관이나 경험에 의존한 의사결정을 SW와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서 자동화, 지능화하고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으로 바꾸는 것이다. 중간 수준은 IoT를 활용해서 사람, 기계, 사물 등을 연결해서 실시간 수준의 센싱-판단-실행을 실현하는 것이다. 고급 수준의 디지털화는 시뮬레이션, 가상 개체(virtual object) 모델링 & 렌더링, VR/AR 등을 활용해서 디지털 트윈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조직운영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수년 후에는 최근 부상하고 있는 AI 에이전트가 일상적인 기업활동은 물론, 예외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활동도 사람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조직운영 모델이 등장할 것이다. AI 에이전트는 임무 수행에 필요한 작업을 계획-설계하고 기업 내/외부 자원(예: SW 패키지, 로봇)을 연결해서 고객의 기대를 충족하는 수준의 해결방안이 만들어질 때까지 자율적으로 활동하는 AI 모듈을 가리킨다. AI 에이전트는 1990년대 이후 인터넷 검색, 전자상거래 계약 등에 활용되고 있는 에이전트 SW가 생성형 AI 등장 이후 고도화된 것으로 목표 지향성, 이동성, 적응성, 학습/소통/협업 능력 등을 가진 개체이다.
디지털 혁신은 1990년대 이전의 디지타이제이션(digitization), 1990년대 이후의 디지털라이제이션(digitalization), 2010년대 이후의 DX 등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디지타이제이션 단계의 업무방식 디지털화는 경영학/산업공학 기반의 프로세스 혁신 기술과 데이터/콘텐츠를 디지털화하는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일본 도요타의 TPS(Toyota Production System)는 재고를 최소화하기 위한 적시생산(JIT: Just-In-Time) 방식을 자동화한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이를 린(Lean, 군더더기 없는) 제조로 재정의하였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월마트를 포함한 리테일 기업이 시범 적용했던 협업적 계획-예측-재고보충(CPFR: Collaborative Planning, Forecasting, and Replenishment)은 납품업체-생산업체-판매업체가 함께 공급망 전체 재고를 실시간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선도적 모델이었다. 즉, 공급망 참여 업체들이 함께 시장 수요를 예측해서 생산계획, 조달계획, 판매계획 등을 수립하고, 제품이 판매되어 재고가 감소하면 즉시 이를 생산과 조달에 전달해서 필요한 작업을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CPFR은 그 당시 기술 수준이나 협업 역량으로는 확산이 어려운 모델이었지만, 적어도 센서, IoT, AI, 5G 등 기술은 충분한 뒷받침이 가능한 시기가 되었다.
디지털라이제이션 단계의 업무방식 디지털화는 개인/팀의 단위업무와 조직 전체의 업무 프로세스를 자동화, 지능화하는 도구/솔루션을 활용해서 e-비즈니스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기반기술과 아키텍처는 계속 진화해 왔지만, 대부분 기업은 여러 가지 기업정보시스템을 자체개발하거나 전문업체 솔루션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 경영관리 영역의 ERP(전사적자원관리), SCM(공급망관리), CRM(고객관계관리) 등, 설계/생산 영역의 CAD/CAE/CAM(설계/해석/제조 자동화), PDM/PLM(제품정보관리), MES(제조실행시스템) 등, 공통업무지원 영역의 EDM(전자문서관리), 그룹웨어(게시판, 전자결재 포함)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부분 데이터 공유와 프로세스 혁신을 지원한다.
2000년대 초반의 조직운영 디지털화는 인터넷/웹 기반의 e-비즈니스를 RFID, 센서, 무선 통신(망), 초소형 컴퓨터 등 유비쿼터스 기술을 활용한 u-비즈니스, 나아가 스마트 기기와 SNS 등을 활용한 모바일 비즈니스를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 시기에 시스코 시스템즈는 기업 내부 협업과 기업간 거래 및 고객 상호작용 등을 인터넷 기반의 e-비즈니스로 구축하였다. 보수적 이미지의 전통 패션기업 버버리는 2006년, 새로운 CEO가 ‘디지털 미디어 컴퍼니’로 전환한다고 선언하고 이후 생산, 마케팅, 조직운영 등 기업활동 전반에서 디지털화를 추진하였다. 고객 커뮤니케이션과 패션쇼에 SNS를 포함한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하고, 옴니채널을 구축하며, 매장에서 직원이 태블릿 PC로 고객의 구매 이력을 조회한 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식의 혁신을 실현한 것이다.
DX 단계 이전의 디지털 혁신은 비용 절감(save money) 또는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식의 운영혁신이 위주였고 CIO와 IT 부서가 지원자 역할을 담당하였다. DX는 주로 수익 증대(make more money)와 수익 창출(make new money)을 목표로 한 것이어서 제품혁신/유통혁신/가치혁신을 통한 기업 성과 향상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제품혁신/유통혁신/가치혁신은 역량 있는 경영관리자와 실무자, 그리고 우수한 디지털 도구 보유 여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지기에 운영혁신 또는 조직운영의 디지털화는 가볍게 다룰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DX 단계의 조직운영 디지털화는 종래의 기업정보시스템을 패키지 구매 방식에서 클라우드 서비스 활용 방식으로 전환하고 AI, 빅데이터, IoT, AR/VR, 시뮬레이션, 로봇, 3D 프린팅, 블록체인 등 여러 가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시기에 확산한 대표적 응용으로 RPA를 꼽을 수 있다. 골드만삭스는 경제/산업 동향과 특정 기업정보 분석에 AI 기반의 검색 알고리즘과 RPA를 적용함으로써 15명의 애널리스트가 4주 걸려서 수행하던 작업을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김광석 등 2017). 싱가포르 최대 이동통신사인 싱가포르텔레콤(‘싱텔’)은 2016년 말 일부 업무에 RPA를 시범 적용하였고 2018년 10월에는 러시아 월드컵 운영을 맡으면서 직원 한 명당 로봇 한 대를 적용하는 식으로 범위를 확대하였다(김윤진, 2020).
최근, 업무방식의 디지털화로 머신러닝/딥러닝을 활용한 AI 기반 의사결정 고도화, 업무 분석/설계, 내/외부 협업, 위협 탐지 등의 지능화가 확대되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AI 기반 의사결정 시스템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시장 트렌드와 경쟁사 동향 파악, 재무 데이터 실시간 분석 및 예측, 인적 자원 최적화를 위한 직원 성과 및 역량 분석,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한 마케팅 전략 수립 지원 등을 지원한다. AI 기반 협업 플랫폼은 부서간 협업에 필요한 프로젝트 관리, 일정 조율, 문서 공유, 화상 회의 및 실시간 채팅, 업무 진행 상황 실시간 모니터링과 보고, 업무 할당 및 최적화 등을 지원한다. AI 기반 고객지원 시스템은 고객 문의 자동 분류 및 우선순위 지정, 챗봇을 통한 기본적인 고객 문의 해결, 고객 감정 분석을 통한 맞춤형 응대, 과거 사례 기반 해결책 추천 등에 활용된다. 최근, 많은 조직이 생성형 AI를 활용해서 문서, 이미지, 오디오/비디오 등을 포함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제작하고 있다. AI 기반 보고서 생성 시스템은 데이터 자동 수집 및 분석, 템플릿 기반의 보고서 자동 생성, KPI 별 실시간 모니터링 및 알림, 데이터 시각화 도구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대시보드 생성 등을 지원한다. AI 기반 디지털 매뉴얼은 정부/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의 주요 업무 프로세스를 전사 차원에서 표준화하고 구체적 절차와 실행 방법, 관련 법규, 데이터/통계, 운영 예제 등을 담은 것으로 실무자들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도구가 된다.
AI는 향후 자율운영이 가능한 AI 에이전트로 발전해서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핵심 프로세스와 경영관리/지원 프로세스 등 조직운영 전반을 지능화/자동화할 것이다. 2017년 창업한 아에라테크놀로지는 이미 기업시스템을 자율운영기업(‘Self-Driving Enterprise’)으로 전환할 수 있는 인지기반 운영체제(‘Aera Cognitive Operating System’)를 개발,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한편,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해서 가상세계가 아닌 현실세계에 분권자율조직(DAO: 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만드는 것도 점차 확산하고 있다. 2022년 초, 간송재단이 운영상 어려움으로 인해 국보인 금동삼존불감을 경매에 내놓게 되자 문화재 해외 유출을 막자는 뜻에 공감한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헤리티지 DAO를 구성하였다. 이 조직은 국보를 매입해서 소유권의 51%를 판매자인 간송재단에 기증하고 보관과 관리를 위탁하는 업무를 DAO로 수행한 것이다. 디지털 기술 발전과 사회적 요구에 따라 중앙집중식 조직이 분산화, 분권화된 네트워크 조직으로, 수직적/수평적 거버넌스는 임의적 거버넌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김광석/이광용/조민주(2017), RPA 도입과 서비스혁신: 금융산업 사례를 중심으로, Issue Monitor, 제72호, 삼정KPMG 경제연구원.
∙김윤진(2020), 내가 만든 로봇비서에게 잡무 맡기고 나, 인간은 고부가가치 일에 몰두한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04호, Sep.
∙WEF(2017), Digital Transformation Initiative: Executive Sum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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