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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기술-경제-사회 상호작용과 국가혁신

개념과 통찰-14

by 김덕현

기술-경제-사회 상호작용과 문명 발전

인류 문명 발전을 설명하는 2가지 이론에 의하면 기술 발전에 힘입어서 경제-사회가 바뀌거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신기술이 등장하는 식으로 기술-경제-사회 시스템 간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그림 1> 참조>. 전자는 기술을 독립변수로 보는 기술결정론, 후자는 기술을 종속변수로 보는 사회구성론이다. 2016년 1월, ‘제4차 산업혁명’(4IR)을 주창한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밥은 ‘기술은 정치적(politic)’이라고 하였다. 이를 테면, 기술자, 기업가, 사용자/소비자, 정책수립자 등 이해관계자 중에서 어느 쪽의 파워가 큰가에 따라 기술결정론이 맞을 수도 있고 사회구성론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술-경제-사회 간 힘의 균형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뜻이다(참조: 4차 산업혁명의 기회와 위협).


<그림 1> 기술-경제-사회 간 상호작용

인류가 경험한 지난 혁명 중에서 특히 산업혁명, 정보혁명은 기술결정론으로 설명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경제-사회 전반을 바꾸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기술)이 등장해서 대량생산체제(: 경제)를 만들었고 자본가와 노동자, 전문가 계급(: 사회)을 형성하였다. 정보혁명은 인터넷/웹(: 기술) 등장으로 대량맞춤과 전자(상)거래(: 경제)가 가능해졌고 인류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사회)를 넘나들게 되었다.


통제 불가능한 AI 혁명의 속도와 범위

2010년대 이후, 특히 2023년 이후의 대변혁은 AI가 주도한 기술혁명(이하, ‘AI 혁명’)이라 할 수 있다. 7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AI가 최근 몇 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발전해서 문서 작성, 각종 콘텐츠 생성, 상담/조언, 교육/학습/연구 등을 포함한 개인생활이 크게 달라졌고 관련 산업생태계도 재편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소스코드의 개발 및 테스트 자동화 도구로 활용됨에 따라 소프트웨어(SW) 개발자를 포함한 기술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처럼 5~10년 이내에 인공일반지능(AGI)이 등장한다면 인간 생활 전반에서 엄청난 변화를 맞게 될 것이다. AI 혁명은 인간의 ‘인지-학습-판단’ 활동을 대체할 수도 있는 변화라는 점에서 지난 혁명이 초래한 변화와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서 현상을 이해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선택, 실행하는 시기가 된다면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AI 혁명이 종래의 혁명과 다른 점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변혁인 것뿐만 아니라 속도가 너무 빨라서 기술-경제-사회 시스템 간 상호작용이 거의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산업혁명이나 정보혁명 경우, 신기술이 개발되고 기업에 의해 제품/서비스로 만들어져서 기업, 개인, 정부 등이 도입/활용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적 격차(gap) 즉, 준비 기간이 있었다. 정보혁명 시기에는 산업혁명 때보다 그 간격이 좁혀졌지만, AI 혁명 때는 간격이 거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2022년 11월 말, 신기술 연구실 수준의 스타트업이던 오픈AI가 실험 삼아 발표한 챗GPT는 다른 어떤 혁신적 제품보다 빠르게 확산되어 불과 두 달 만에 월 사용자가 1억 명에 도달하는 신기록을 이룩하였다. 그 후 오픈AI를 포함한 여러 스타트업과 대기업이 다양한 생성형 AI 제품/서비스를 출시했지만, 혁신 그 자체에 주목할 뿐 그런 기술과 제품/서비스가 인류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충분한 준비,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공공기관이 각종 규제를 만들고, 학계가 공정하고(Fair), (결과를) 책임질 수 있으며(Accountable), 투명한(Transparent) AI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산업계도 자발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격차는 더 커지고 있을 뿐이다.


자동차, 가전제품 같은 공산품 경우, 제조자는 법률에 따라 제품 출시 후에 발생하는 결함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고 있다. 1990년대에 등장, 발전한 인터넷 비즈니스에서도 플랫폼 기업과 거래방식에 대한 규제가 소비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를 보호하고 있다. 생성형 AI가 획기적인 혁신 결과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공급기업이 할루시네이션 가능성이나 부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식의 공지만으로 각종 폐해를 덮고 가는 것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2025년 이후 급부상하고 있는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는 또 다른 엄청난 혁신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에이전틱 AI는 개별 에이전트는 물론, 여러 AI 에이전트의 작업을 지휘통제하는 오케스트레이션 에이전트의 역량에 따라 기회와 위협이 똑같이 증폭한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피지컬 AI는 SW로서의 AI와 HW인 기계/전자장치를 결합한 것으로 ‘인지-학습-판단’ 과정을 넘어 물리적 작업 ‘실행’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기에 더욱더 큰 위험요인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앞으로 등장할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는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인간의 관여가 없더라도 상호 소통하고 지식/경험을 공유하는 가운데 고수준의 집단으로 진화해 갈 것이기에 통제 불가능한 영역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AI가 만들 미래에 대한 전문가들의 전망조차 긍정 또는 부정으로 나뉘고 있음을 감안하면,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전 지구 차원의 검토,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럿이 함께 브레이크를 만들려는 노력보다 누가 더 성능 좋은 액셀러레이터를 먼저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국가/기업 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자동차가 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액셀러레이터가 아니라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인데 말이다.


AI 시대의 국가혁신시스템(NIS)

국가혁신시스템(NIS: National Innovation System)은 1980년대에 북유럽 학자들이 발전시킨 이론으로 정부, 기업, 대학, 지원기관 등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설명한 것이다 (참조: 국가혁신시스템과 플랫폼 생태계). 국가혁신은 정부가 대학, 기업, 그리고 혁신 인프라(: 규제와 촉진)에 투자하고 긍정적 여건을 조성하는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NIS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국가혁신 성과는 혁신 주체(‘actor’, 액터)별 역량과 노력도 중요하지만, 주체 간 상호작용의 유효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스타트업 간 협업, 대학/연구기관과 산업체 간 (산학)협업, 정부와 대학/기업 간 협업 등의 양적, 질적 수준에 따라 혁신 성과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늘 ‘협력’이 아닌 ‘협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協力/cooperation은 단기적, 일시적으로 힘을 합치는 실무 차원의 전술이지만, 協業/collaboration은 장기적, 지속적으로 공동의 이익을 창출해서 공정하게 배분하려는 고수준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액터 간 협업은 1980년대 당시보다 오늘날 더 중요한 성공 요인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첫째, 혁신에 대한 사회 및 인류 차원의 요구/기대가 점점 더 크고 복잡한 문제 해결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가치가 낮거나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폭우, 가뭄 같은 자연재해나 팬데믹 같은 재앙을 혼자 막을 수 있는가? 둘째, 1980년대 이후 급속하게 발전한 교통/통신 혁명의 결과로 시간적/공간적 거리가 좁혀지면서 기업 간 경쟁은 기업생태계간 경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국내의 많은 정책/전략 문서가 그와 같은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지만, 여전히 액터들은 협업보다는 경쟁하는 가운데 각자도생하는 행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업만 그런게 아니라 학문/지식의 경계를 넘어서는 대학/연구기관의 학제간 연구, 글로벌 공동연구도 부족하고 부처/기관의 벽을 넘어서는 정부/공공기관의 공동사업이나 국제협력도 여전히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국가 차원의 혁신이 성과를 거두려면 개별 액터의 역량을 키우는 것 이상으로 액터 간 상호작용(즉, 협업과 경계 파괴/낮추기)의 효율과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기술-경제-사회 시스템을 설계, 운영해야 한다.


기술 발전 속도와 범위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에 이른 AI 혁명을 준비,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술-경제-사회 혁신을 주도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서 실시간 수준으로 협업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기술혁신, 산업혁신, 사회혁신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다가 1990년대 이후 병렬적인 변화가 진행되기 시작하였는데 AI 혁명 경우에는 여러 가지 혁신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선도기업이 개발한 에이전틱 AI가 99.9%의 신뢰도로 금융 업무를 대신하고, 또 다른 기업이 개발한 피지컬 AI가 99.9%의 신뢰도로 제조 공정에서 인간 작업자와 협업하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0.1%의 오류가 선의의 투자자를 파산으로 몰거나 숙련된 노동자에게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시간 수준의 협업은 지식/정보를 공유한 가운데 아이디어 도출을 위한 발산(divergence)과 해결책 마련을 위한 수렴(convergence)을 지원하는 협업 플랫폼(참조: 전문가 협업 플랫폼을 통한 지식재생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기술자가 기업경영자와 정책수립자, 나아가 소비자/사용자의 입장이 되어 기술을 개발-시험하고 제품/서비스로 구현하는 노력, 기업경영자가 사용자의 고충이나 혜택을 헤아려서 생산-유통-AS 계획을 수립, 실행하는 노력, 정책수립자가 기술자-기업가-소비자 등의 상이한 이해를 조율하는 노력 등이 긴요한 상황이다. 어느 한쪽의 역량도 국가 차원의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동의 프레임워크(예: 용어 정의, 기술 아키텍처, 미래 청사진)를 만들고 그것에 입각해서 서로 긴밀하게 소통하는 가운데 문제를 해결해 가는 접근방식, 협업적 거버넌스(collaborative governance)와 시스템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AI 혁명에 대응하는 것은 과거처럼 정부가 전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그렇다고 단기 목표와 영리 추구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민간(기업)이 전담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국가’를 예로 들었지만, 좁게는 개별 기업 차원, 넓게는 인류 차원에서도 같은 노력과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인류 차원의 문제 경우, 우리나라로서는 리더가 아닌 팔로워가 될 수밖에 없지만, 기술 선도국인 미국이나 그에 맞서고 있는 중국과는 다른 입장에서 국익과 인간 중심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소리는 키워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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