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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희 Mar 15. 2021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과학의 문제

자연과학 체계의 해체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 체계는 르네상스 이후 문제점들이 밝혀진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틀렸다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 당시에는 그렇게 설명하는 게 가장 최선이라는 측면과 자연 자체가 실제로 우리의 감각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실험을 통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그의 체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똑같이 낙하한다는 설명은 배워서 알고 있다. 물론 이것이 진실일지라도 만약 이 진실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모두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고 할 것이고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모두 무겁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낙하 실험은 오늘날에도 고도의 실험 장치가 없이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이 틀렸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을 체계적 학문으로 제시한 것 자체로 커다란 가치가 있고 자연과학이 전승되어 과학적 사고를 주었다는 데 결정적 의미가 있다. 


오늘날 우주론은 우주의 생성 과정과 진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의 기본입자들이 힘에 따른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와 지구를 동시에 담고 있어 지상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와 함께 별의 운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주론은 그의 자연관을 가장 잘 요약해주고 있어 적어도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자연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천적 이론이어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우주론적 사고의 가이드 역할을 하였다. 그의 관점에 근본적인 통일성이 있고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므로 이에 필적할 만한 규모와 독창성을 가지는 통일성이 구축된 예가 없었으므로 그의 이론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하지만 지구를 중심으로 한 대칭적 동심체 우주관은 태생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 행성은 지구와 가까워지거나 멀어지기도 하여 밝기가 변하는데 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한 계절의 길이가 변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며 역행 운동을 설명하고 있으나 실제 관측과는 맞지 않는다. 이 문제는 기원후 2세기 프톨레마이오스가 주전원, 이심률 등의 수정을 가함으로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바깥과 안쪽 껍질을 가진 각각의 수정 천구와 주전원의 관계가 불명확할 수밖에 없고 이심률의 도입은 지구의 중심이 우주의 중심이 아닌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지상 세계에도 있었다. 지상에서의 온갖 변화가 불의 층의 회전으로 네 원소의 섞임으로 일어나지만, 대세적으로는 무거운 정도에 따른 해당 원소의 배열이 이루어져 해당 원소는 자기의 영역에 주를 이루고 다른 원소들을 소량 포함한다. 비록 층마다 다른 원소가 불순물처럼 소량 섞여 있을지라도 무거운 순서대로 지구 중심으로부터 흙, 물, 공기, 불이 동심구를 이루어 차례로 배열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 표면은 물로 덮여 있어야 한다. 스콜라학자들은 본래 지구는 물로 덮여 있으나 육지가 물 위로 튀어나온 형태로 되어 있다고 함으로 이 문제를 피해 갔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서로 연결된 하나의 대륙이 증거였다. 하지만 16세기의 대항해 시대에 발견된 신대륙으로 한 개의 대륙설은 깨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과학이 진리라고 여겨졌지만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첫 사건이었고 당시의 지식인들에게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물체의 운동학에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운동은 반드시 접촉에 의해서만 일어난다. 공이나 포탄이 움직이는 원인은 손이나 대포 때문일 것이므로 손과 대포가 목적인이다. 하지만 운동을 초래한 목적인이 물체와 분리된 상태에서 계속 움직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목적인이 분리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물체가 이동하는 동안 매질이 목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물체의 동력 원인이 매질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힘을 더 주면 더 멀리 나가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6세기는 여러모로 아리스토텔레스 체계가 위협받는 시기였다. 세기말에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별은 낮에도 보일 만큼 밝았고 일 년 넘게 밤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없던 별이 새로이 생겨났으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이는 지구상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천상 세계는 불변으로 별의 생성과 소멸은 없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별까지의 거리가 달보다는 크므로 새로이 관측된 별은 지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어야 하는데 실지로는 천상에 속한 별이다. 연이어 나타난 혜성은 혼란을 더 가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혜성이 달 아래의 지상에서 일어나는 기상 현상으로 여겼다. 관측된 혜성은 금성 언저리에 있어 달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행성의 천구를 관통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로써 혜성은 기상 현상이 아니었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정 천구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문시될 수밖에 없었다. 케플러는 고심 끝에 행성의 운동에 관하여 세 개의 법칙을 발견했다. 행성의 궤도가 원이 아니라 타원이라는 제1 법칙으로 주전원 및 이심률이 더는 필요치 않게 되었다. 원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케플러 시대에 이르기까지 의심 없는 완전체였다. 타원으로 행성들을 회전시키는 천구의 개념도 자연스레 사라지게 되었다. 회전시켜 타원을 만들 수 있는 입체는 없기 때문이다.


이제 아리스토텔레스 체계의 문제에 결정타를 날린 갈릴레이 얘기를 해야 한다. 갈릴레이는 기구를 사용하여 별을 관측한 첫 번째 인물이다. 망원경을 사용하여 관측한 것 모두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직간접적으로 반하는 것이었다. 금성의 위상 변화는 금성이 태양 주위를 돌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달은 산과 계곡으로 구성되어 지구와 같은 구조였다. 지구는 흙으로 구성된 유일한 천체이고 그 외 모든 별은 부드럽고 매끈한 완전 구형이 아니었다. 관측된 목성의 4개의 위성은 천동설의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태양의 흑점을 통하여 자전을 발견했다. 태양은 완전체도 아니고 불변적이지도 않고 지구만 자전하는 것이 아니었다. 천구의 붙박이별은 맨눈으로 관찰되는 별보다 훨씬 많은 별이 있어 모두가 천구에 붙어 있기는 무리로 보였다. 지동설은 아리스토텔레스 우주론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교회와 갈릴레이의 대립은 지동설을 주장하거나 근거가 되는 모든 것들을 금지하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출판된 지 70년이 지난 코페르니쿠스의 책도 판매 금지되었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교회와의 논쟁을 포기함으로써 갈등은 극적으로 봉합되었다. 싱겁게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포기는 오히려 과학 자신의 지위를 굳건하게 했다. 이제 더는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진실을 꿰맞추는 위대한 자의 도래를 기다리는 17세기 격동의 시대였다.   

   

갈릴레이는 물체의 운동을 위치, 속도 및 가속도의 개념으로 이해한 첫 번째 인물이다. 물체는 무게와 상관없이 낙하한다는 사실과 투사체 운동은 물체가 무엇이든지 관계없이 포물선의 궤적을 그린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일련의 새로운 지식은 인위적으로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환경을 직접 만들어 실험을 수행하여 알아낸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오감으로 쉽게 알려지는 순종의 노예가 아니라 오직 주의 깊은 실험을 통하여서만 알 수 있는 불규칙한 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자연과학 체계에서 물체의 운동은 4 원소 중에 흙과 관련된다. 다른 원소에 대한 물리적 설명도 도전받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공기는 무게가 없고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의 우주는 빈 곳이 없이 꽉 차 있으므로 자연은 진공을 혐오하여 항상 진공이 만들어지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진공은 지구상에서도, 우주 어디에도 실제로 없고 원리적으로도 있을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꽉 찬 우주를 상정했고 만약에 그의 우주론에 빈 곳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주는 멈출 것이었다. 접촉 없이 운동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진공의 부존재는 우주의 유한성의 토대가 된다. 그의 우주는 지구를 중심으로 하는 동심원적 형태이므로 만약 우주가 무한하다면 중심이란 없다. 그러므로 운동은 유한하고 가득 찬 공간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진공의 부재는 진공 존재 여부에 관한 실험적 반증 사례가 없는 상황에서 설득력이 있다. 토리첼리에 의해 공기가 무게가 있음이 증명되었다. 파스칼은 지표면을 비롯하여 산 등 높이를 달리하며 실험을 하여 위로 갈수록 공기압이 작아짐을 확인하였다. 공기펌프가 유행하여 다양하게 실험에 적용되어 보일은 공기의 양에 따른 압력을 변화시켜 압력과 부피의 관계를 알아내어 토리첼리와 파스칼의 연구를 심화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는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체계 중에 오직 자연과학에서만 문제가 일어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자연 현상은 이거 아니면 저것으로 정답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고대 그리스에서 바라본 자연은 당시의 인간의 감각으로는 보지 못하는 게 많았을 것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자연 현상을 정확히 알아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수정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나 정치학 또는 시학이 잘못되었다고 수정되는 일은 없다. 매우 중요한 논증이 담긴 의견으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말이다. 이 사실은 이제 자연과학과 여타 다른 학문이 통일의 관점에서 뭔가 다르다는 것을 함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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