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탄 할아버지
정신의학과를 가던 길이었다. 갔다가 나오는 길이었나? 아무튼, 그때 앞에서 오던 어느 할아버지를 보았다. 바구니가 달린 자전거를 탄 할아버지는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페달을 밟는 힘이 일정했다. 나에게도 있었던 자전거가 생각났다. 나는 자전거를 10만 원에 아는 지인에게 팔았다. 사놓고 도저히 탈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은 많았다. 이건 핑계다. 그때 받은 10만 원을 어디에 썼는지도 생각이 안 난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것을 잊고 산다(갑자기?).
아무튼, 다시 할아버지로 돌아가자면.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잘 타셨다. 오랫동안 탄 티가 났다. 나도 내 자전거를 딱 한 번, 아니 두 번 탄 적이 있다. 한 번은 가까운 빵집에 갔을 때였고, 한 번은 연못에 있는 자전거 트랙을 즐기러 갔을 때였다. 자전거 타기는 꽤 어렵다. 온몸 운동이 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난 후에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여러모로 아파서, 이렇게 아파도 되나 싶을 정도로 아프고, 왜 이런 걸로 아프지 싶어서 우울했다. 자전거를 탈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좀 힘들어지니까, 집에 갈 때가 되니까 너무 힘들어서 우울했다. 우울에는 많은 이유가 붙을 수 있다. 여러 이유가 다 해당되고, 합당하다. 그래서 나는 우울이 좋다(?).
할아버지는 곧잘 움직이시다가, 내 앞에서 넘어지셨다. 그러니까, 바로 앞에서는 아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옆으로 픽 쓰러지셨는데, 나는 원체 잘 놀라는 성격이라 꽥 소리를 질렀더랬다. 할아버지는 머쓱하게 웃으셨다. 나는 곧바로 달려갔다. 자전거부터 세우고, 그다음에 할아버지를 부축했다. 할아버지는 아이고, 아이고, 고마워요, 말을 반복하셨다. 나는 어디 다치지 않으셨는지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괜찮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난 이후로 크고 작은 상처는 자주 생긴다고 했다. 이렇게 갑자기 중심을 잃고 넘어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셨다. 나는 그래도 할아버지가 좀 더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길 바랐다. 안전장치라도 좀 하고 타시는 게 어때요? 요즘에는 보호대도 꽤 많던데. 그렇게 말하니 할아버지는 그냥 웃으셨다. 어차피 빨리 달리지도 못하는데, 그냥 이렇게 자기 속도대로 달리는 게 편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할아버지께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셨다. 그때까지 내 손은 자전거를 붙잡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고는 말하셨다. 늙으면 우울해요. 내가 이 자전거를 산 이유가 우울해서 샀어요. 우울해서 샀는데, 우울할 때마다 타려고 샀는데, 아무튼 매일 타게 돼요. 매일 넘어질 때도 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이어 말씀하셨다. 그런데도요, 우울해도요, 나는 중심을 잘 잡아요. 처음에는 좀 헤매는데, 곧 중심을 잡고 잘 간다니까. 뒤에서 한번 봐봐요.
그래서 나는 얼떨결에 할아버지께서 다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처음엔 삐뚤빼뚤,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발을 땅에 딛곤 했다. 그러다가, 곧 다시 페달을 밟았다. 할아버지는 뒤에 있는 나를 의식한 것인지, 조금 더 속력을 내셨다. 자전거가 우울, 우울, 하며 달렸다. 나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모습을 보았다. 인도에 있는 자전거 트랙의 줄을 잘 맞춰 달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할아버지의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울하지만, 중심을 잘 잡는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울해도 균형을 잃지 않는 것, 우울해도 나 자신을 놓지 않는 것. 나는 우울, 우울 소리 내어 말하며 걷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울을 밟으면서. 우울, 우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