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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26. 2024

엄마, 정신과는 미친 사람만 오는 곳이지?

정신의학과 다녀온 후기

한 달에 한 번 나는 정신의학과로 향한다. 2주에 한 번 갔던 때랑 비교하면, 비교적 나은 편이지만, 그게 또 그렇다고 할 수 없는 게 약이 좀 늘었다. 밤에는 6알을 먹고 잠을 자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공황에 맞서기 위해선 동그란 한 알을 먹는다. 아침에는 약간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약을 4알 먹는다. 총 7알 정도가 내가 하루에 먹는 약이다. 감기나 장염에 걸려도 이 약은 꼭 먹는다. 선생님도 다른 약을 먹는 것과 겹쳐져도 상관없으니, 편하게 먹으며 치료하자고 한다. 치료. 이렇게 들으면 꼭,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정신의학과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냥 뭔지 모르게 두려웠고,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게다가 '잘 지냈어요?'라는 물음에 A.I처럼 입력된 값을 말하듯이 '잘 지냈어요.' 대답하는 것이 스스로 싫었다. 하와유 아임파인 땡큐 앤유? 같은 느낌이랄까. 잘 지냈어요? 물어보면, 왠지 잘 지냈다고 대답해야 할 것만 같고, 선생님의 다크서클을 보면 나는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사람은 하루종일 이런 상담에 시달리겠지, 지금 대기실에도 많은 사람이 있는데 나라도 좀 가벼운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해 말을 짧게 줄여서 하곤 한다. 이것도 병이다. 


지금은 가는 것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편하기 때문에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기도 한데, 그럴 때면 나는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선생님의 말을 경청한다. 나는 집중력 부족이 아니라, 완벽주의에 집착하는 ADHD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 나는,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물건이 내가 생각한 자리에 없으면 화가 난다. 하루 전날, 다음날의 일정을 모두 적어놓고, 시간에 맞춰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스로 자책한다. 화가 난다. 그래서 그날은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되지 않는다고 내가 아예 못 박아놓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요즘 나는 무기력했다. 지금도 무기력하지만, 과거형으로 적어본다. 나는 감기와 장염에 시달리고 있다. 몸이 이렇게 약해서 어쩌나, 뭘 해 먹고살겠나,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닌데, 뭘 어쩌려고, 기술도 없고, 일할 곳도 없고……. 나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원망한다. 이런 나의 상태를 들은 선생님은 말했다. 우리가 무기력할 때 제일 하면 안 되는 것이 자책과 원망, 후회라고. 그 세 가지를 하지 않고, 남들과 비교하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규칙을 정한다면, 무기력은 쉽게 사라질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실, 나는 선생님이 '규칙'에 관해서 분명히 말할 거라 여겼다. 나는 그 예상이 들어맞아서 좋았다. 그래서 선생님의 말을 더 잘 들을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리고, 생각이 많아지면 30분이라도 좀 걸으세요. 움직이세요. 남들의 생활을 볼 수 있는 SNS는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그걸 보면 자꾸 비교하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을 단정하게, 우선 자신을 단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해요. 깔끔하게 챙기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게 되면, 무기력은 저절로 없어지고 우울감도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거예요. 


맞는 말이다. 나를 단정하게 하면, 새롭게 시작하는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 나는 너무나 무기력하고, 우울한 아침이면 무조건 샤워부터 한다. 샤워를 하면, 나에게 좋은 향기가 나고, 그 향기를 맡으며 집에서 천천히 홍차를 마시고,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거나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 안 했고, 못한 것들보다 해낸 것에 중점을 두고 나를 칭찬하기. 나에게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약을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있다. 내가 다니는 곳은 어린아이들도 함께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 부모, 대부분 엄마들과 아이들이 함께 있다.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거나 가만히 있질 못한다. 똥 마려워요! 똥! 외치는 아이도 있고, 집에 얼른 가자며 보채는 아이들도 있다. 엄마가 보지 않을 때, 동생을 한 대 쥐어박고는 그 동생이 울면, 입을 막고 달래주는 아이도 있다. 전체적으로 고요한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생동감이 있다. 한쪽에 마련된 작은 놀이방은 붐빈다. 책이 있지만, 아무도 책을 보지 않는다. 그저 자동차, 공룡 장난감만 가지고 논다. 


내 옆에 누군가 앉는다. 엄마와 아들이다. 아들은 중학생쯤 되어 보인다. 이들도 사연이 있겠지. 약을 받을 차례를 기다리며 잠시 눈을 감고 있는데, 엄마가 말한다. 지금 여기가 어디야? 아들이 답한다. 정신의학과. 엄마가 다시 말한다. 정신의학과는 어떤 곳이게? 아들은 말한다. 미친 사람들이 오는 곳. 나는 눈을 뜬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들이 다시 말한다. 엄마, 근데 난 미치지 않았는데 왜 데려왔어? 


순식간에 미친 사람이 된 나는 간호사가 크게 이름을 부른 탓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일어난다. 한 달치 약을 받고, 다시 한 달을 기약하고, 나는 밖으로 나선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했던 말이 자꾸 맴돈다. 미친 사람. 미친 사람들이 오는 곳. 나는 그 말을 정정하고 싶다. 아니야, 이 친구야. 여긴 미친 사람이 오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 오는 곳이란다. 승강기 문이 열린다. 나는 1층으로 하강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자기 자신을 놓고 싶지 않은 사람이 오는 곳.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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