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째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그냥 감기도 하고, 제대로 된 감기다. 기침하느라 말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약 기운 때문에 종일 헤롱거린다.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코가 꽉 막혀 너무나 힘들다. 그런 기간을 지내면서도 나는 할 건 다 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나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는 것, 등이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감기가 나에게서 떨어지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는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매번 후회하고, 매번 우울하고, 그래도 행복해한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나의 삶이랄까.
감기 이외에도 우울한 일은 많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두 친구는 각자 결혼했고, 한 친구는 결혼을 준비 중이다. 나는 결혼도 뭐도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 반가워 평소보다 높은 텐션으로 그들을 만나러 갔다. 예전처럼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나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각자 옆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의 신랑, 신부로 인해 편하게 이야기하기는 더 어려웠다. 심지어, 4명으로 된 모임은 여자 둘, 남자 둘 인터라, 자칫 오해 살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만 했다. 이건 당연한 일이지만, 내가 제일 우울하고 아쉬웠던 건, 내가 짝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죄다 아파트 평수를 이야기했다. 84부터 시작해서 알아듣지 못할 숫자가 오가고, 아파트 브랜드가 오간 다음에는 학세군, 초품아 같은 단어가 흘렀다. 다음엔 차에 관해서, 다음엔 명품 브랜드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나는 그런 거 몰라요오 아무것도 몰라요오' 표정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옛날에 우린 무슨 이야기를 했었지? 생각해 보니 정말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라 생각나지 않았다. 누가 누군가의 짝꿍이었다는 사실, 등하교를 늘 함께 했었다는 사실, 아이스크림을 매일 사 먹었다는 사실 등. 아주 시시껄렁한 이야기들이었는데, 나는 오히려 그때 그 이야기를 떠드는 것이 더 행복하고 좋았던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쉽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나는 그들의 길을 축복한다, 내가 뒤처졌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그런데도 왜 이렇게 우울할까, 생각해 보면, 뭔가 많이 달라진 우리들의 사이랄까, 아니면, 조금 더 어른이 된 그들을 영원히 피터팬이고 싶은 내가 바라보는 관점이랄까.
우울한 일은 또 있다. 나는 요즘 또 진로에 관한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글 쓰는 것을 그만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면서 생계도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 고민은 모두가 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방법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답이 없다. 답이 없다. 나는 아직 답을 알지 못하겠다. 단기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면, 의외로 많은 나이에 퇴짜 당한다. 모르겠다.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감기가 빨리 나아야 하고, 그 건강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어째 점점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지.
오늘도 변함없이 우울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