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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16. 2024

다들 멍청해지세요, 행복해집니다!

멍청 전도사

유명한 검색 사이트에 '멍청이'를 검색하면,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는 정의가 나온다. 그 외에도 '멍청이'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이 함께 나오는데, 등신, 머저리, 얼간이, 멍텅구리 등 그야말로 굉장한 단어들이 쏟아진다. 나는 사실, 누군가에게 '너 멍청해'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나 스스로 멍청하다고 여긴다. 아이고, 멍청해. 이렇게 멍청해서 뭘 할 수 있겠니.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를 자주 멍청하다고 여기고, 그래서 웃기고, 귀엽다고 느낀다. 


가끔은 아둔하고 어리석을 필요가 있다고 여긴다. 지금 이 세상은, 그러니까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너무 팽팽하다. 실이 아니라 고무줄이 팽팽하게 늘어진 느낌이랄까. 실이라도 마찬가지다. 금방 끊어질 것 같고, 금방 나에게 커다란 아픔을 안길 것만 같다. 관계에 있어선 죄다 엉켰다. 나의 머릿속에도 풀지 못한 매듭이 한가득이다.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할지, 나는 고민하다가 금세 놓아버린다. 고민하며 그 뭉치를 만지면 만질수록, 더 엉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시작점을 찾아야 하는데, 그것마저 쉽지 않다. 시작점에 끊임없이 매달리면, 어찌어찌 매듭을 풀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늘 생각에만 그친다.


내가 가장 우울하고, 멍청할 시간에 나는 가장 강해지고 새로워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자기 전에, 내일을 생각할 때 딱 그렇다는 뜻이다. 나는 자기 전에 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정리한다. 다음 날의 나를 믿는 것인데, 믿어도 너무 믿어서, 해결하지 못할 일들을 빽빽하게 적는다. 그러고 나서, 다음 날이 되면, 어찌어찌 수행하다가 일을 다 끝마치지 못한다. 그러면, 나는 또 좌절하고, 우울하고, 멍청해진다. 그러다가 새벽이 되면, 뭔가 당장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러나 지금은 자야 하고, 새벽이니까 하지 못한다는 것에 안심하며! 그러니까, 내일은 이 모든 일을 단번에 처리할 수 있을 거라 또 믿으며! 멍청을 반복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나는 이 멍청함이 좋다. 귀엽다. 마음의 주먹이 꽉 쥐어지는 듯한 이 느낌을 나는 즐긴다. 우울한 가운데에서도 어쨌든, 해야 할 일을 찾아내는 내가 귀엽고, 어쨌든 움직이는 내가 장하다. 어쨌든, 나는 내일 눈을 뜰 것이고(이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겠지만, 늘 삶에 감사해야겠지만), 나는 어떻게든 이 빽빽한 일 중에 몇 가지는 해낼 것이다. 해내고자 하는 마음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멍청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마음의 불씨가 사그라들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잘 찾아보시길, 당신의 마음에도 후후, 불면은 구멍이 뚫리는 솜사탕……이 아니라 다시 타오르는 불씨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멍청한 것을, 약간 멍하면서도 귀여운 상태로 지정한다. 실제로 그렇다. 입을 헤 벌리고, 넋을 놓고 있는 것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 표정인데, 그럴 때 나는 멍청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을 생각했는지 정신을 차리고 나선 금방 깨어버려 되새기기 어려운 경우들도 많지만, 어쨌든 대부분은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사실, 생각하지 않을 때도 많다. 나는 그때를 '뇌 쉬는 시간'이라고 부른다. 종일 잡생각에 시달린 뇌도 쉬어야 하니까.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입을 헤 벌리고, 멍청하게 있는 것이다. 아이고, 잠시 멍청했네, 다시 시작해야지, 뭐 그런 생각도 든다. 그래서, 멍청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너무 자주 멍청해도 좋다. 해선 안 되는 것보다는 해서 좋은 것이 좋은 거고, 좋은 게 좋은 거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것이다.


오늘 당신은 얼마나 멍청했나요? 물어보고 싶다. 멍청한 일을 한 가지라도 해냈나요? 물어보고 싶다. 뭔 이런 질문이 다 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가끔 물어본다. 생애 가장 멍청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나는 그런 실수담을 듣는 것이 좋다. 그때는 아찔했어도, 그 멍청함을 풀어놓는 사람들의 얼굴엔 약간의 웃음꽃이 피어있다. 나는 활짝 웃는다. 너무 귀여우시군요! 외치면서. 멍청함을 벗 삼아 하루의 팽팽함을 조금 느슨하게 해 보는 것도 참 좋은 방법인 듯싶다. 


사실, 멍청함은 뇌의 어느 부분에 어쩌고 저쩌고, 연구에 따르면 어쩌고 저쩌고, 논문을 보니 어쩌고 저쩌고, 그래서 우리는 어쩌고 저쩌고. 이런 식으로 말하고 싶진 않다. 왜냐면, 나는 멍청하고 귀여우니까. 그냥 나는 멍청하고 귀여운 채로,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그저 나의 상황과 마음을 쓰고 싶을 뿐이다. 나는 오늘 멍청한 일을 해냈다. 하루가 채 가기 전에 해냈다. 손에 멍이 들었는데, 그게 어디 부딪혀서 생긴 상처인지 모른다는 일을 해냈다. 아, 정말. 귀여워!


그러니, 멍청한 일을 벌이고 말았다고 좌절하지 말길. 당신은 귀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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