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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14. 2024

나는 우울하고 멍청하지만 귀엽지

꽃 중의 꽃 자기 합리화

나는 소음에 약하다. 노래가 들리거나, 많은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가득 찬 공간에선 무조건 이어폰을 착용해야 한다. 나는 집에서도 작은 소음을 막기 위해 귀를 막는다. 카페를 이용할 때면, 빗소리나 파도, 혹은 천둥과 번개가 요란한 ASMR을 선택하고, 집에서는 오로지 나의 심장 소리와 숨소리를 듣는다. 유난을 떠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렇게 해야 나는 무언가를 쓰거나 읽거나 볼 수 있다. 나도 이런 나를 어쩔 수 없다. 어쩌겠는가? 이런 것을. 나는 읽기 위해, 보기 위해, 쓰기 위해서 귀를 막는다. 


간혹, 이어폰을 챙기지 않은 날이면, 극도로 예민해지는데, 예민함은 곧 우울감을 불러온다. 우울감은 자각하지 못하는 새 갑자기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울함의 중앙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웅덩이를 고인 빗물처럼 느낀다. 이미 양말과 신발은 흠뻑 젖었고, 발은 시리다. 그런 가운데, 마른땅을 딛지 못하고, 계속 거기에 서 있는 것이다. 우두커니. 비는 오지 않는다. 그저 발목까지 차오르려는 물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전부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바로 앞에 마른땅이 있는 것이 보이더라도, 나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 너무 추워서 움직일 수 없고, 이미 발이 전부 젖어 마른땅에 가도 소용없을 것 같다. 무기력하다. 그런 것이 내가 느끼는 우울감이다.


우울감이 시작되면, 나는 자주 멍청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멍청해진다'라는 뜻에는 여러 의미가 포함되는데, 내가 진짜 멍청해지는 것이기도 하고, 멍해지는 것이기도 하고, 멍청해지고 멍해져서 멍청한 일을 벌이거나 멍청한 말을 해버리는 경우를 뜻한다. 뜻하지 않게 말을 뱉는다던가, 화를 낸다던가, 혹은 울어버린다던가! 사실 우는 일은 그리 잦지 않다. 요즘엔 하품을 해야 겨우 눈물이 나는 정도랄까. 너무 울지 않아도 문제라던데, 나는 여러모로 문제를 안고 있는 듯하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 앞에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는 나를 위해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를 하는 중이다. 나는 한 달 동안 나에게 있었던 일이나 감정을 톺아보며 그에게 어떤 대단한 것을 말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정작 내가 하는 말은 '잘 지냈어요' 이것이 전부다. '약이 저에게 참 잘 맞더라고, 잠이 잘 와요.' 혹은, '집중력을 더 높이고 싶어요' 같은 말을 통해서, 감정의 밑바닥은 쓸어내지 않고, 그저 약. 약. 약. 이번에  나는 약이 세 알이나 늘었다. 


내가 우울해지고 멍청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질투와 시기, 비교라고 볼 수 있다. 최근의 추이를 보면 그렇다. 누군가 여행을 간다거나, 상을 받았다거나, 좋은 계약을 했다거나, 어쨌든 행복한 일이 벌어지면, 나는 동시에 불행해진다. 그들이 불행해져야 내가 행복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저, 나는 '그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워'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글을 쓰고 있지. 무엇을 먹고 있나, 어디에 있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글을 쓰지. 그럼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것 아닌가, 지금 이 시간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렇게 생각하면 좋겠지만, 나는 그들과 나를 한없이 비교하기 시작한다.


나이부터 시작해서, 경력, 그리고 그들의 글을 읽어보면서 나와 다른 것은 무엇인지, 나는 도대체 뭘 했는지, 나는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그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천하지 않았는지, 나를 채찍질한다. 실컷 채찍질을 하고, 힘이 빠져서 널브러지거나, 채찍질을 심하게 맞은 후, 널브러진다. 그리고는, 아이고, 누워 있는 거 편하네, 멍청한 생각을 하며 무기력함에 빠진다. 그 사람은 그 사람만의 길을 가는 거야, 식상한 위로를 던지다가도, 그러니까 그건 그 사람의 길이니까, 음, 나는 걸을 수 없어, 그러니까 나는 눕자. 이런 멍청하고 귀여운 생각을 해버리는 것이다! 


따져보면, 나는 누군가에겐 부러운 사람이겠다. 대단한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고, 미래가 촉망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그걸 꼭 들어야 아는가? 왜 너는 들어야 아는가? 왜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자꾸만 가라앉는 것을 택하는가! 어느 목소리가 외치면, 다른 목소리가 답한다. 들어야 알지! 들어야 알지! 들어야 알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는 못하고, 빽빽 소리만 지르다가 다시 눕는다. 아이고, 눕는 게 편하네, 그러고 스르르 잠이 들거나 저녁에 뭘 먹을지 생각한다. 


우울함과 멍청함은 한끝차이고, 나는 그것을 넘나드는 중이다. 우울함과 멍청함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요즘 우울하고 멍청한 나를 귀여워하며 즐기는 중이다. 우울함이 다가오면, 꺅! 우울해! 하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그럴 때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거나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어버린다. 그저 나는 멍청한 바보가 되어버린다. 굳이 헤어 나오려 하지 않고, 무기력에 빠진다. 우울과 한 이불을 덮고 눕는다. 하기로 한 운동은 숨쉬기 운동으로 바뀌고, 읽기로 한 책은 내일, 지금 당장은 숏츠를 보거나 릴스를 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 느낀다. 


참, 귀엽지 않은가? 나는 내가 귀엽다. 그러므로, 우울함과 멍청함을 굳이 떨쳐내지 않을 작정이다. 어느 정도의 우울함과 멍청함은 나에게 필요하다. 그 기분은,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고작 침대에서 일어났을 뿐인데도,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우울하고 멍청하다. 하지만, 여기서 문장을 끝내지는 말자. 우린 다 똑같다. 어렸을 적에 눈만 가려도 다른 사람에게 내가 보이지 않는다고 느끼고, 작은 거짓말을 해본 적이 있으며, 횡단보도는 하얀색만 밟고 지나가려 하고, 그러지 못했을 땐 '아, 이건 연습!' 외친 적이 있다면, 우린 다 똑같다. 


나는 오늘도 우울하고 멍청하고 귀엽다. 그리고, 벌써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외쳤다. 실패! 아, 이건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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