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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15. 2024

날씨야 암만 추워봐라 내가 옷 사 입냐 우울하지

다들, 자신이 언제 우울감을 느끼는지 알고 계실까 궁금하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울이라는 것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내 옆에 우뚝 서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 깜짝이야!' 말하기도 전에, 우울감에 잠식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우울감이 찾아온 이후, 그러니까 조금 이후에, 아, 나 지금 우울하구나, 자각하는 경우가 많다. 미리 대비할 수 있었다면, '마음의 감기'라는 말도 붙지 않았을 것이다. 감기도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리는 것이 아니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내 마음에는 계절에 상관없이 비가 내리고, 먹구름이 몰리고,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기도 한다. 해가 쨍쨍할 때는 마음에 불을 얹은 듯이 뜨겁다. '마음 온난화' 현상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런 경우에는 대게 장마철처럼 우울철이 오게 마련이다. 우울철이 오면 우리는, 종일 우울하다. 씻기도 싫고, 먹기도 싫고, 대충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때운다. 먹으면 그냥 바로 배가 불러지는 알약은 없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되기도 한다(대체 그런 알약은 왜 아직 나오지 않은 것일까). 먹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배가 꼬르륵거리는 건 당연하고, 그 꼬르륵거림에 이상한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고, 근데 딱히 먹고 싶은 것은 없고, 그러다 보면 배가 고픈 것을 조금 잊기도 하고. 아니면, 슬금슬금 방을 벗어나 조금만 뭘 주워 먹고 들어오기도 하고, 그런다. 우울감은 그렇게 만든다. 사람을. 수치스럽고, 슬프게.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날씨 때문이라고 탓을 넘겨본다. 그러나, 해가 잠시 들어오는 순간에도 나는 우울하다. 날씨와는 결론적으로 우울감이 상관없다고 여겨진다. 상관은 있겠지만, 한번 시작된 우울은 해가 뜬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햇볕에 마음을 잘 펴서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모든 장기를 꺼내 물에 깨끗이 씻거나, 눈알을 빼내서 씻어 다시 장착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얼굴에 난 기미나 주근깨가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입술이 괜히 마르고, 로션을 발라도 튼 피부가 더욱 거칠게 느껴진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고, 내가 내가 싫다. 남들이 나를 보면 분명, 더럽고, 우울한 사람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까? 아니다. 그렇다. 아니다. 남들은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은 좀 너무한 일이다. 나는 우울한 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일단 이부터 닦읍시다. 이를 닦으면 자연스럽게 얼굴을 씻고 싶을 것이고, 머리를 감고 싶어질 확률이 높다. 배우 유해진 님은 매일 조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도 뛰고 싶지 않은 순간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그는, 우선 신발부터 신는다고 했다. 신발을 신으면, 나갈 수밖에 없고, 나가고 싶어지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우리 마음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다. 조종하는 키패드, 그러니까 리모컨 같은 것은 우리가 이미 쥐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을 조금 꿈틀거려 전원을 눌러보자. 전원을 끄자는 소리가 아니다. 켜자. 켜져 있었다고? 그럼 껐다가 다시 켜자. 그래도 움직이기 싫다면, 정각에 움직이자. 지금은 1시 23분이니까, 오후 2시에 일어나자, 식으로. 그냥 천천히. 나는 이 글에서 우울감을 이길 수 있고 어쩌고 저쩌고, 우리는 지금 무언가를 해야 하고 어쩌고 저쩌고, 져스트 두잇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지 않다. 나도 못하는 걸 당신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입이 아플 테고, 당신은 귀가 아플 것이다. 


날씨가 춥다. 포근한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덥다고 하고 누군가는 춥다고 한다. 누군가는 오늘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오늘 너무 우울하다고 말한다. 나는 중얼거린다. 날씨야, 네가 암만 추워봐라, 내가 술 사 먹냐, 옷 사 입냐, 우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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