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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28. 2024

예기불안, 내 곁을 든든히 지키는 공황

어제 나는 제대로 된 공황을 겪었다. 제대로 되지 않은 공황이란 것은 없겠지만, 아무튼 공황 증세를 정말로 오랜만에 제대로 느꼈다. 때는,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일하고 있을 때였다.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각자 노트북을 켜놓고 각자의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는 엑셀 작업을 하고 있었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갑자기. '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황은 '아!' 하는 느낌과 함께 온다. 함께 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와 있다. 전조증상이란 것이 없다. 왔다는 생각이,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공황은 이미 나의 곁에 와 있다. 


나의 공황 증세는 이렇다. 치지직거리는 TV 화면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고, 모든 소리가 차단된다. 웅웅 거리며 들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의 목소리만 들린다. 제일 가까이의 있는 사람의 목소리. 괜찮아? 야, 왜 그래. 괜찮아? 하는 소리가 나의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일단 엎드리거나 눕고 싶어 진다. 나는 카페 테이블에 엎드렸고, 친구는 나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나는 겨우 말한다. 물 한잔만 좀 가져다줘. 그 말도 겨우겨우, 천천히. 그럼 친구는 벌떡 일어나 물을 가져온다. 가방에 약이 있다. 항상 들고 다니는 상비약이 있다. 나는 그걸 꺼내기 위해 몇 번이고 헛손질을 한 다음에 공황약을 겨우 찾는다. 바로 약을 먹는다.


약을 먹는다고 바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약기운이 퍼질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공황을 겪어야 한다. 어지럽고, 속이 메스껍고, 그리고 울고 싶고, 나 이대로 죽으면 어떡하지 싶기도 하고, 누군가 건드리면 전기 통한 듯이 온몸이 아프다. 나는 친구에게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두라고 한다. 친구는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나를 살피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나는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는다. 그런 친구를 두고 가만히 있을 친구가 어디 있겠는가. 친구는 바로 자기 차로 가자고 한다.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마음 같아서는 벌떡 일어나 차에 타서 바로 집으로 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조금 더 누워 있다가 괜찮아질 때쯤, 아니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일어나서 바로 친구에게 부축을 부탁한다. 친구는 자신의 짐을 모두 챙기고, 내 짐까지 챙긴 후 나를 데리고 자신의 차로 간다. 아뿔싸. 나는 친구의 차에 속을 게워내고 만다. 정말 미안하다고, 세차비를 주겠다고 하는 나의 말도 친구는 개의치 않는다. 일단 너 집에 가면 괜찮아지는 거 맞지? 너 이런 거 처음 보네. 그렇다. 친구는 내가 공황이 있는지 몰랐다. 나는 친구에게 공황을 설명할 길이 없어 괜찮다는 말만 반복한다. 친구는 나를 부축해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홀연히 떠난다.


나는 옷을 벗는 것도 버겁다. 약을 하나 더 먹는다. 그러고는 침대에 그대로 쓰러져 숨을 몰아쉰다. 얼른 이 공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가 쓰는 방법이 있는데, 어디선가 본 것이다. 어디서 봤는지 몰라 출처를 밝히기는 어렵고, 하나하나 그대로 기억하는 바를 써보겠다. 우선, 1. 자신의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한다 (3가지), 2. 나의 몸에 닿는 촉감을 느껴본다 (3가지), 3. 숨을 천천히 쉬어본다. 이렇게 해봐도 사실 공황이 확실히 물러나지는 않는다. 나는 서울역에서도 한번 쓰러진 적이 있다. 공황 때문이었다. 공황은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나는 예기불안증까지 가졌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계신 이모가 알려준 것인데, 나는 특히나 이 예기불안이 심하다. 


언제 어디서 공황이 닥칠지 몰라 부담스럽고, 그 부담이 오롯이 공황을 부르는 주문이 된다. 나는 숨을 좀 돌린 다음에,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다음날에서야 친구와 연락을 하고, 엄마에게 상황을 이야기한다. 아직도 몸이 저릿한 느낌이다. 


조금만 시간이 가면 괜찮아진다는 걸 알지만, 그 순간을 이겨내는 것은 참 어렵다. 약에 의존한다기보다는 약이 없으면 안 될 것 같다(이게 의존인가?), 친구는 지금도 나를 걱정 중이다. 나는 친구에게, 그리고 나의 상황을 모르는 이들을 만날 때 꼭 내가 공황이 있어서 언제 어떤 식으로 아파할지 모르니 이해해 달라, 가방에 약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알려야 할 것을 새롭게 알아차린다. 친구 입장에선 또 얼마나 놀랐을까. 


요즘 우울과 스트레스가 쌓여 이렇게 몸이 반응한다. 죽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 소리를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다. 아는데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그냥 두는 것이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는 것이다. 나는 내가 괜찮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꼭 그럴 거라 생각한다. 오늘 짧은 통화에서 이모는 '시대의 시간에 맞추지 말고, 너의 시간에 맞추라'와 같은 말을 했다. 남을 따라 하거나 비교하지 말고, 나의 길을 찾아가라는 뜻이었다. 지금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이다. 나의 길. 그것이 가시덤불이거나 정리되지 않은 덩굴이 가득 시야를 가리고 있더라도. 나는 그게 내 길이라면 걸어갈 자신이 있다. 또 한 번 마음을 다져본다. 그리고 위로의 말을 건넨다.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저 힘을 비축하자, 알맹이를 단단하게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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