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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한 Feb 29. 2024

나는 우울할 때 좀비영화를 봐

나는 내가 망해갈 때, 그러니까 우울할 때, 좀비영화를 보거나 세상이 망한 영화를 보곤 한다. 나만 망할 수 없지!라는 마음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소소한 인류애(?)를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좀비영화를 보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좀비를 마구 죽이는 스펙터클한 부분도 좋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죽여도 되는 괴물, 그런데 사람이었던' 정의에 적합한 인물을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죽이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좋다.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인류애. 전쟁통에도 아이가 탄생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사랑하게 되거나, 어떤 사람의 삶을 나의 삶으로 간주하여 그 사람을 지키고 희생한다던가, 이런 부분을 볼 수 있어서, 아, 세상이 그렇게 망하지만은 않았구나, 알게 되어 좋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좋다. 그리고 또 소소한 부분을 말하자면, 그냥 상점을 마구잡이로 털 수 있고, 식량을 많이 챙기는 그 부분도 좋다. 대리만족이랄까? 그렇다고, 지금 뭘 훔치고 싶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그런 장면들이 좀비영화에는 마구 집약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나 좋다. 그래서 좀비 영화 한 편을 보고 나면 인생의 한 부분을 보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좀비 영화란 따로 없다. 좀비 영화는 그냥 좀비 영화일 뿐이고, 다 똑같다. 죽이고, 살리고, 서로 편이 갈리고, 먼저 떠난 이들이 죽거나, 어떤 다른 생존자 무리를 만나고, 그들은 또 서로를 경계하고, 그러면서 살기 위해 노력하고, 각종 무기를 만들고. 그러니까 '어찌 되었건, 살아남으려 노력한다'라는 것에 있어서 나는 깊이 감명받는다. 모든 좀비 영화에서 말이다.


좀비 영화뿐만 아니라 좀비가 없더라도 세상이 망한 이야기도 좋아한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말인데,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말한다. 아무튼, 거기서도 사람들은 여러 모습으로 살아남는다. 그 와중에 장사를 하는 사람이 있고, 그 와중에 거래를 하는 사람도 있으며, 그 와중에 사랑을 찾으러 떠나는 무모한 이들도 많다. 난 그런 무모함을 지켜보는 과정도 즐긴다. 아포칼립스도 비슷한데, 이건 세상이 그냥 멸망하고 난 뒤의 이야기라 배경이 사막인 경우도 많고……, 그럼에도 생존자는 있고 그 생존자는 다른 생존자를 찾고 또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은 사람을 찾고, 사람은 사람끼리 유대하고, 사람은 사람이 없으면 살아가질 못한다. 


이런 당연한 이치를 나는 로맨스 영화나 가족 영화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좀비 영화, 세상이 망하는 영화에서 자주 찾는다. 보면서 손에 땀을 쥐거나, 온몸에 힘을 주기도 하는데, 그게 또 영화의 묘미다. 세상엔 잘 만든 이야기와 영화가 너무나 많고, 나처럼 그 영화를 현실로 받아들이면서 생의 목표(?)를 다시 다지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본성,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그때 가서 보게 되는 것도 너무 신기하다. 요즘은 옛날처럼 좀비들이 그냥 으어어 하면서 따라다니거나 멍청하게 느린 것이 아니라, 지붕으로 점프하기도 하고, 문을 열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소통하기도 한다. 사람이 발전하듯이 좀비도 발전한다는 것인데…… 그런 좀비에 무참히 뜯어 먹히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운동하고,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것이 너무나도 필요하다고 느낀다. (좀 이상한 곳에서 나는 삶의 의지를 다시 다지곤 한다)


그런 세상에서도 살아남으려 고심하는 나를 볼 때. 나는 우울하다가도 만다. 상상력과 엉뚱한 망상은 삶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다들 우울할 땐 좀비 영화를 보시길, 아니면, 거기서 필사적으로 살아남는 자신을 상상하기라도 하시길. 아주 그냥 달리고 싶어질 테니까. 주변을 다시 보게 될 테니까. (가까운 상점과 숨을 곳을 생각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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