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 대한민국 청년, 수준 넘어서기 성공 스토리 2편 이소룡편
"왜 제가 잘할 수 있는 색깔을 지워야 하나요? 지워야 하는 게 연기의 미덕일까요? 누군가에게는 그럴 수 있지만,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어떤 변화를 주고 장르적인 다른 선택도 해야 하지만, 본인이 가진 장기를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본인의 색깔에 다른 색깔도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 장혁이 남긴 말이다. 그는 사극 드라마 ‘추노’를 통해 연기파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대길 역할을 맡으면서 화려한 액션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서 활용되었던 무술이 ‘절권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절권도’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TV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 수방사 편에서 1:1 제압술 훈련 중 에피소드에서.
교관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시킬 정도로 수준급의 무술 실력을 보여주었다. 장혁은 실제로 절권도를 오랜시간 동안 배워왔던 고수다. 그렇기에 사극 드라마 ‘추노’에서도 액션신들을 멋지게 소화해낸 것은 아닌가싶다. 사실 장혁하면 절권도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절권도’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이소룡의 무술철학 개념’에 불과하다. 이소룡은 절권도를 창시하고도 진번쿵푸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자신에게 맞는 무술의 형태일 뿐이라고 밝혔다. 장혁이 구사한 무술도 정확하게는 ‘진번쿵푸‘로 이해하면되겠다.
’절권도‘창시자인 이소룡은 신장 171cm으로 다소체구가 작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피드로 커버한 것. 즉 자신의 체형에 맞는 무술을 스스로 연마한 것이다. 그것이 ‘절권도’라 불리기 시작했다.
전세계적 영상미디어 매체 유튜브에서는 ‘브루스 리 vs 테드 윙’이란 제목의 대련 영상이 올라왔었다. 이소룡은 절권도의 창시자답게 순간의 스피드와 파괴력으로 수제자 테드 윙을 단번에 제압해서 눈길을 크게 끌었다. 그의 무술영화에서 보았던 절권도는 허투가 아니란 얘기다. 여기서 더욱 흥미로운건 어느 페이스북 페이지 에서는 이소룡의 UFC 출전을 가상으로 의견을 구한 바가 있다.
논쟁 끝에 UFC 챔피언 가능할 것 같다고 의견을 내놓은 독자가 115표, 반대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43표였다. 반대가 나온 이유는 지금은 시간이 지난만큼 UFC 수준이 높아져서 이소룡이 돌아온다해도 챔피언은 어렵다고 본 것이다. 우리는 단지 재미로 상상해본 것에 불과하지만, UFC 데이터 화이트는 달리 말했다. “오늘날 종합격투기는 이소룡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다.” 이소룡이 살아서 현 시대의 UFC에서 우승하느냐 못하느냐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를 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하는지 그것이 관건이다. 이소룡 은 절권도를 만들기 위해서 한 것이 아닌, 자신의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기존의 일정한 형식과 틀에 얽매여 있는 무술을 기피하는 생각이 시발점이었다. 현재 무술계의 전설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늘 변화의 한계에 도전했던 삶이었다. 어릴적엔 남보다 여린 몸을 가지고 있었던 이소룡, 그 역시 황비홍과 같은 무술가를 꿈꾸며 그러나 몸이 연약하고 신체가 작았기에 무술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신체의 한계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갈라진다. “그럼에 불구하고 스스로 정한 길을 가느냐.” “포기하느냐.” 둘 중 하나다. 만약에 당신이 남들이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면, 또 성공하길 간절히 원한다면 지금부터 그가 취하는 행동, 노력들을 지켜보길 바란다.
“남들만큼 크지도 강하지 않아도 되니, 빨라지자. 그리고 이 스피드를 극대화시켜서 폭발적인 파워를 이끌어내자” 그는 똑같은 주먹을 16년 동안 내질렀고, 사람들은 그를 보면서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에게 맞는 무술을 연마하고 끝내 영화 카메라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주먹이 빨라졌다. 어느 정도냐면 오히려 카메라에서 촬영 할 때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하다못해 편집까지 했어야만 한다고 밝혔으니깐 말이다.
사람들에게 그의 무술은 절권도라 불리기 시작했고, 나약한 꼬마아이에서 최고의 무술가가 된 것이다. 다른 무술가들과는 달리 사상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다. 절대적인 강자라는 이미지보단 당시에 혁신적인 무술철학을 지녔고, 그 철학수준에 걸맞는 무술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 행사장에서 이소룡은 절권도 시험을 보였다. 그리고 무술을 배우러 온 후배에게 말했다. “기본적인 몇 가지 기술을 보여주시오. 그리고 그대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소?”고 물었다. 돌아오는 후배의 대답 “그건 어렵겠는데요. 불가능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옴과 동시에 이소룡이 했던 한마디 “찻잔 물이 넘쳐서 더 이상 채울 수가 없소. 그대가 잔을 비우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술을 가르치겠소. 내 잔의 물을 맛보려면 친구여, 우선 그대의 잔을 비우시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잔이 비워져야 물이 들어가듯이, 마음 자세가 흐트러져 있으면 그 무엇도 배울 수가 없다. 그리고 자신의 무술과 가르침에 대해서 이렇게 확고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는 남들이 말했던 신체의 한계를 넘은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에 맞는 무술을 개발함으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다. 이소룡은 생전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사람은 만 가지 킥을 연습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한 가지 킥을 만 번 연습한 사람이다”
그는 찻잔의 사례에서 말했듯이, ‘스폰지’처럼 흡수하고 배워야 할 것을 말했다. 그는 쿵푸의 대가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들의 무술의 장단점을 파악해서 자신의 주관대로 추려서 장점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단점은 과감히 버렸다. 오로지 실전에 특화되고, 실용성을 추구하는 ‘절권도’가 이 과정 가운데 만들어져 갔다. 그런 그에게 많은 쿵푸지도자들이 ‘제록스’란 명예롭지 못한 별명을 붙이기도 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무술을 숙련시켰다.
그에게 있어 배움과 무술의 발전 기준은 전통의 권위나 스승이 아닌,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었다. 물론 유용한 것들은 수용할 줄 알아야 하지만, 우리도 마찬가지로 전통을 자랑하는 교육기관이나 또 훌륭해 보이는 교훈이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그 믿음이 때로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이소룡은 어릴적에 진로를 선택할 때조차 비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의대교수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도 했다. 놀랍게도 교수로부터 돌아온 답장은 다음과 같았다. “자네 같이 생각이 많은 친구는 철학과를 가야 한다네.”라는 답장을 건네 받았다. 이에 이소룡은 100달러만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워싱턴 대학 철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철학, 연극, 심리학까지 공부했던 그는 무술 동아리 후배인 린다를 만나게 되어 미래를 약속하며 결혼하게된다. 이소룡은 쿵푸 아카데미를 운영하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항상 가르쳤다. “항상 자신답게 행동하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스스로를 믿으며 성공한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려 하지마라.”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한 가지 형태를 고집하지 말라. 그것을 적용하고 자신만의 것으로 발전시키고 그것이 성장 하도록 두어라. 물과 같이 되어라. 어떠한 형태나 구속 없이 자신의 마음을 비워라. 마치 물처럼. 당신은 컵에 물을 따르고, 물은 컵의 모양이 된다. 물을 병에 담으면 병의 형태가 된다. 이제 물은 흘러갈 수도 있고, 무언가를 파괴할 수도 있다. 물이 되어라,” 이런 이소룡의 철학과 무술을 연마하기 위한 노력이 만나. 1964년 롱비치 가라데 토너먼트에서 무술 시범으로 온 세상에 그의 무술이 알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그 유명한 그린호넷에서 일본인 사이드킥 KATO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그 이후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다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나의 무술철학을 세상에 알리지..?” 의문은 해답을 낳는다 했던가. 그의 첫 주연 작품, <당산대형>에서 직접 창시한 화려한 무술절권도를 처음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였고, 이는 큰 화제를 일으켰다. 바로 슈퍼스타가 되면서 자신의 무술을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부와 명예까지 얻게되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더욱 무술의 연마에 전념했고, 기존에 배웠던 기술들과 서양에서 직접 느낀 피지컥의 한계, 타 무술들의 장점과 자신만의 철학을 결합하면서 의식적으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 시대에 전문적인 보디빌딩 트레이닝이 거의 없었음에도 지방이 1%도 없는 근육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또 대단한 점은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다. 분명히 이를 위한 축적된 지식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개척해낸 것.
물론 실전 싸움을 전문적이고 익힌 현시대의 mma선수랑 싸우면 이소룡이 질수도 있겠지만 저 시대에만 한정된다면 세계 챔피언이다.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세상과 작별해서 그의 사망이유는 아직까지도 베일에감춰져 있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무술 ‘절권도’와 정신은 지금까지도 전해져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소룡의 제자라는 사람들은 크게 2분류로 나눠져 있다. 그들은 각자 절권도를 자신이 이해한 모습으로만 존재 한다는 것. 누군가는 비난한다. 그저 과장된 소문일 뿐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액션스타, 무술영화배우의 아이콘으로만 오늘날까지 사람들에게 유명세가 이어졌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 그가 시대를 앞지른 “실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대의 한계를 넘어섰던 그의 정신력은 지금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미덕일 것이다. 그가 단순한 성공과 명예만 쫓고 있던 사람이라면 할리우드에서 떴을 때 무술을 연마하는 일은 그만두었어야 할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죽기전까지도 영화촬영하는 와중에도 짬짬히 무술에 대한 연구를 했던 점이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본다면 실력을 떠나서 그의 정신력은 이미 시대를 앞지른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절권도라는 것 자체가 미완성인 셈이다.
우리가 말하는 성공의 개념을 부순 그의 사상을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바로 “자신의 한계를 알고, 또 다른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소룡도 몸이 허약했지만, 누구보다 빠르고 강력한 신체를 가지기 위해 단련했다.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무술을 사용한 것이 아닌, 이 무술들을 결합해서 자신만의 신체에 특화된 ‘절권도’를 탄생시킨 것.
이는 “다양한 스펙을 쌓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사업, 창업 아이템, 직종, 혹은 직종속에서도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게 할 수 있는 강점을 키우는데 집중해야한다. 그리고 더욱 잘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스타가 되어라. 내가 글을 잘써서 이를 널리알리고 싶다면 SNS, 미디어 영상매체를 활용하라. 노래를 잘한다면 무대에 계속 서고 오디션 프로에 나가라.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말고 꾸준히 자신의 한계점까지 도전할 것이다. 이소룡의 주먹또한 카메라에 보이지 않기까지 16년이 걸렸다.
우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단지, 그가 남겼던 말처럼, “만 가지 킥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킥을 만 번 하겠노라”하는 각오로 하나의 일을 파라. 그 노력과 시간은 당신의 성공을 보장할 것이다. 지금 당신을 넘어서기 위해서, 여러 가지 스펙을 쌓는데 치중이 되어있는가? 혹은 자신의 강점 딱 하나를 믿고 강력히 밀고나가고 있는가?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기 바란다. “인생의 진정한 비극은 우리가 강점을 충분히 갖고 있지않다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갖고 있는 강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데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강점 한 가지, 이를 절대적으로 믿고 긴 시간 마라톤 하듯이 전진하라.
그 강점을 세상 앞에 어필하라. 주목받을만하면 당신은 반드시 주목받을 것이며, 세상은 당신의 이름을 억할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시간에도 숨은 고수들은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