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샘의 요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움 May 15. 2023

찐빵과 단팥죽: 구룡포 (2)

단팥 묻은 찐빵이 안겨 준 익숙함

찐빵과 단팥죽

  하루는 읍으로 나가는 날이었다. 복잡하면서도 좁은 길에 이름 모를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마치 과메기 식당의 손님들처럼. 옹기종기. 자동차 창문에 후아 후아 입김을 불며 그림을 그리고는, 굳이 그림 사이로 찡긋찡긋 밖을 내다보며 코를 갖다 댔다.


 차에서 내려 아빠의 손을 잡고, 웬 낡은 문을 옆으로 밀며 들어갔다. 이번에는 무슨 음식일까. 나는 늘 그랬듯이 문에 쓰인 글자를 또박또박 읽었다.


"철규 분식!"


 그곳은 직접 만든 찐빵과 단팥죽을 파는 가게였다. 들어가자마자 한 구석에는 아주머니께서 찐빵을 잔뜩 만들고 계셨다. 밀가루 칠갑 위에 말랑거리는 반죽이 대충 뚝뚝 떼어진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따끈한 찐빵은 금방 김을 뿜으며 모습을 드러냈고, 오목한 그릇에 대충 담긴 단팥죽이 그릇 위로 빼꼼 혀를 내밀었다. 아주머니는 탁자에 접시를 내려놓으시면서 찐빵을 단팥죽에 찍어 잡수쇼-하는 따듯한 사투리도 함께 내려놓고 가셨다.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게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슈퍼에서 보던 커다란 찐빵이 아닌 주먹만 한 어린 찐빵이었다. 괜한 동질감에 덥석 손에 올려놓자 이손 저손 요동을 치며 자리를 옮겼다. 한 입 뚝 떼어 입바람을 불며 대충 씹은 찐빵을 삼키듯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는 입을 델지 모르니 불어먹으라 하시며 단팥죽을 뜨셨다.


 달달한 찐빵 하나를 다 먹어갈 때 아주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찐빵이 머금고 있던 팥도 때마침 동이 나고 없었다. 하얗고 힘없는 마지막 빵 한쪽을 그 단팥죽이라는 것에 푹-찍어보았다. 단팥죽도 처음이었고 단팥죽을 묻힌 찐빵도 처음이었으니, 잠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딱 팥죽 한 방울이 떨어질 정도의 시간이었다. 머뭇거리다가 또 다른 한 방울이 흐르기 전에 입에 쏙 넣고, 또 입바람을 불며 열심히 턱을 움직였다. 여전히 달콤했다.


 낯선 곳에서 낯선 맛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처음으로 낯설어도 낯익은 것이 다가왔다. 처음 같았지만 오래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알았던 것 같은 익숙함이었다. 편안함이었다. 포항 구룡포로 이사를 와 새로움만 가득했던 여덟 살 인생에 처음으로 마음이 붕붕 뜨지 않은 날이었다. 그날의 마음은 원래의 자리를 찾아간 듯 낮게 가라앉았다.


 혀가 달아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찐빵을 집었다. 이젠 적당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팥앙금이 혀를 감쌌다. 시골의 달콤함이 혀에 닿자 학교로 가는 돌담길이 생각났고, 1교시 마치면 뜯어먹던 흰 우유가 생각났다.


 단팥죽에 찍어 먹던 하얀 어린 찐빵은 겨울이면 어김없이 생각이 난다. 그때와 같은 자리에서 어른이 된 지금, 이제는 더 작아 보일 찐빵을 입에 꽉 차도록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잠시 머금으며 학교 앞 시냇물을 떠올리겠지. 요란한 철 필통 소리를 내던 빨간 책가방을 그려내고, 운동장 흙바닥을 열심히 구르며 넘던 줄넘기를 생각하겠지. 음식이 그리는 추억은 참으로 무한하다.


 나는 매 해 작은 바다 마을의 그 찐빵을 떠올리며 

소박한 모양에 그렇지 못한 팥소의 시골 사랑을 그리워하며

겨울을 나곤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메기: 구룡포(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