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 한 달 후면 넌 독일로 떠나는구나. 집에서 챙겨갈 물품 목록을 만들고 학교 등록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겠지. 엄마한테 듣자 하니 걱정하느라 잠도 잘 못 잔다며? 학생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이 어때? 이전에 나랑 같이 지내자고 독일로 오라고 했을 때 계속 거절했었잖아.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마침내 독일에 가기로 했는지 궁금하다. 지금 보니 우린 12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같은 공항에서부터 모험의 첫발을 내디뎠던 거네.
내게 독일행은 마지막 출구였어. 그때의 나는 마치 작은 상자에 갇힌 느낌이었거든. 손발이 묶이지 않아서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뭘 해도 그 상자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상태 말이야. 아무리 노력을 해도 결과는 정해진 곳까지고, 그 이상의 변화를 끌어낼 수는 없었어. 길을 찾고자 걷고 또 걸어도 매번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기에 분노와 화를 마음에 담고 살았던 걸지도 몰라. 그냥 될 대로 되라, 내가 무얼 해도 변하는 게 없는데 굳이 왜... 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 당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너무도 즐겁게 지낸다는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내 답도 한국이 아니라 멀리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닐까 싶었어. 그래서 더 절박하게 모든 걸 걸고 떠날 수밖에 없었지. 가서 나를 시험해보면 진정 나로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제 자유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리자마자 날숨과 함께 처음으로 터져 나온 말이야. 난 그만큼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나 봐.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든 다 헤쳐나갈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물 잘 먹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났어. ‘모험’의 정의가 뭔지 알아? 위험을 무릅쓰고 어떠한 일을 하는 거야. 여행으로 한 번 가봤던 곳에 홀로 가서 정착하는 거니까 당연히 위험 요소가 따르기 마련이지. 그런데 그런걸 걱정할 새가 없었어. 기대됐을 뿐.
전기 밥솥을 비롯한 반찬거리, 학용품, 노트북 등을 이민 가방 3단짜리에 바리바리 싸고, 무거운 책 같은 건 배낭에 넣고. 그걸 등에 메고 양손으로 끌면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길 건너에 있는 유스호스텔을 찾아갔는데, 혼자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이민 가방이 40kg였고 배낭이 10kg이었거든. 숙소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나니 빨갛게 부은 내 두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고 그때 알았어.
'여기에 이렇게나 오고 싶었구나. 내 모험은 이제 시작이구나.'
곧 시작될 너의 모험도 즐겁고 의미있는 경험으로 가득했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힘든 일이 있다면 연락해. 소주 한두 병 싸 들고 슝~ 날아갈 테니. “케바케”의 나라를 안주 삼아 한잔할 날이 곧 오겠는걸?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