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는 과학자에서 목사가 되련다
[15] 목사가 되는데 왜 과학을 계속 하는가?
아직 전도사이기 때문에 목사가 되려면 지나야 하는 길과 시간들이 있다. 과학을 포기하고 목사가 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믿고있는 것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내가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닌 나의 다음 세대를 위해 나는 더 많은 것을 찾고 배우고자 한다. 학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수 많은 방법 중에서 나만 가지고 있는 재능과 방법들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어떻게 잘 다가갈 수 있을까 고민들이 모이고 모여서 목회자(목사)라는 도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단순히 종교적으로 가르치려는 수준을 뛰어넘어 옳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보기에 합당한 것, 내가 성공할 수 있는 방법(way), 잘 사는 방법이 아닌 시대를 살아갈 때 때에 맞는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학생들도 양육하고 싶었다. 각 시대에 따라 살아남는 방법이 아닌 시대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부당하더라도 나의 생존을 위해 부당한 것을 선택하지 않고 옳은 것을 선택하여 선한 영향력이 나타내어지길 원한다.
세상을 알아가다 보면 부당한 일이 정말 많다. 부당하더라도 나에게 주어진 책임에 대해서 그 무게를 이겨내며 살아가고 있다. 나 개인이 잘 살기 위함도 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정말 많다. 눈물을 안고 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 부당함을 이겨내는 사람들도 부당한가? 그렇지 않다. 그 부당함을 끌어 안고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옳은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리더들이 정말 많다.
과학을 공부하다보면 납득되지 않는 부당함들이 많다. 모든 분야가 납득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이 존재할 것이지만 과학은 모순도 많다. 그 부당함과 모순을 선함으로 역전시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선함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선함을 배우기 보다 어른들의 부당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배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15-1] 역전의 과학
전도사로서 있는 지금이 학생들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만나고 있다. 학생들의 삶에 완전 개입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학생들과 마음을 나누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게 된다.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어른이어서 아이들이 잘 살아가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같이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 속에서 내가 방향을 되어주어 함께 걸어가는 이 순간이 능력이 되는 것을 느꼈다. 내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을 통해 힘을 매일 받게 된다. 내가 목사가 될 사람이기 때문에 나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을 통해 나는 더욱 어른이 되어간다. 매 순간 새롭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나의 옛날 방법은 아이들에게 재미도 없고, 어렵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지내온 것들을 공유하며 새로운 것을 아이들과 찾기 위해 나는 여전히 과학을 공부하고 있다. 새롭게 올라오는 논문을 꾸준히 읽고 있다. 과학을 전공한 나에게도 어려운 논문들과 원리들이지만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아이들을 위한 사명이 늘 뜨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