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꾸는 꿈 2
[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넓배많 :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가?
나름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더 참혹했으며 많은 좌절을 해야만 했다. 나의 아이디어를 빼앗겨 돈을 벌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단물을 빼먹으려는 모습들도 많이 보았다. 그리고 다음 세대 아이들을 함께 잘 양육해 보자며 선한 마음에서 시작한 일 속에서 우리의 중심을 반드시 지키며 일하자 말했던 나를 빼놓고 몰래 의논하여 아이들의 힘을 빼앗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았다. 아이들과 청년들만이 할 수 있는 순수하고, 창의적 생산을 할 수 있는 힘을 빼앗아 본인의 아이디어라 말하는 모습을 보며 많이 울었다. 너무 TMI이지만 영화 <신의 한 수>에서 마지막 바둑 대결을 이기려고 어린아이를 데려와서 아이만이 볼 수 있는 바둑의 수를 통해 악역이 이기는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안성기 배우가 네가 어떻게 그런 수를 둘 수 있냐며 소리치는 모습이 어른들 세계에 들어온 나의 모습과 같았다.
다음 세대 아이들과 청년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자 말하던 어른들은 모여든 아이들과 청년들을 통해 본인의 영광을 챙겨가는 것에 눈물뿐이었지만 그 모습을 내가 보았다는 것을 아는 어른들은 똑같이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보며 "저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말하고 결국 내가 가야 하는 길을 가야만 했다. "그들만의 리그", 혹은 "상류사회"와 같은 모습을 보면서 큰 실망을 가지기도 했지만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어떤 어른인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야 할 때의 리더가 되었을 때 어떤 리더로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지 그 생각이 나의 목을 조여올 때가 많았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같이 일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그냥 떠나버려도 그만이겠지만 나는 내게 맡겨진 아이들과 청년들 때문에 떠날 수 없었다. 나의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겠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하고 싶었다. 그 책임을 다 못하고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잘못을 돌리는 경우도 여러 번 보게 되니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고민을 수천, 수억 번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자리에서도 한 명이던, 두 명이던 소수의 아이들과 청년들이 남아서 나를 "선생님" 혹은 "멘토"라고 불러 줄 때 모든 어려움이 씻겨져 내려가는 듯했다. 내가 반드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시대 속에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며 나의 정체성을 확장시켰다.
세상이 넓은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일을 못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속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사람도 존재한다. 그 여러 모습들이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아니라 말했지만 내가 좋지 않은 사람이었으며 때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고, 일을 잘하기도 했지만 일을 전혀 못하는 때가 더 많았다. 다른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멘토가 되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답답해서 미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나를 보며 함께 하는 사람들은 여러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때에 맞게 움직이는 나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되는데 때에 따라, 필요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나의 여러 모습들이 진정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 "상류사회"에 실망할 것이 없었다. 그런 혹독하고, 참혹한 세상이라 말해도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나"를 만들어 갈 수 없다. 수많은 좌절, 환희, 즐거움, 분노 등 많은 감정을 반드시 경험하며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보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사명(Calling)과 비전(Vision)을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