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나는 과학자에서 목사가 되련다
[11] 어울리는듯 어울리지 않는듯
대구에서는 기간제 방과후 교사, 동탄에서는 짧았지만 대안학교 교사와 학원 단기 강사로 일을 했다. 나는 내 수업만 준비하면서 일방적으로 가르쳐주면 끝나는 단기강사였다. 하지만 내 입은 근질근질해서 학생들 한명 한명의 삶을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괜한 오지랖이 아닐까 걱정을 많이 했었지만 학생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마음을 열어주어서 감사한 마음이 크다.
대구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20살이 되었을 때 찾아와서 밥을 같이 먹자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괜히 뭉클하기도 했었다.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나를 오빠, 형이라 불러도 되겠냐는 말에 단칼에 안된다 말하고 25살 이상 되면 부르라고 하니 그래도 좋아하는 모습에 귀여웠다. 동탄에서 가르쳤던 학생들은 이제 동탄에서 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이 다행히도 아쉬웠는지 카톡 정도는 가끔 보내긴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았다. 수학은 나보다 더 잘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 지구에 70억명 넘게 있지만 나는 회사를 가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을 선택한 것 같아서 너무 즐겁다. 지금은 수학이 아닌 교회에서 전도사 일을 하며 삶을 빛과 소금으로 살으라며 말하고 있고 나도 그런 삶을 살아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생화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약회사를 가는 것이 내게 맞다고 생각했다. 과학을 통해 사람들을 돕는 것이 나의 목적과 비전이었기 때문에 제약회사가 나에게 자연스러운 옷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연구실에서 평생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어렵게 만들더니 학생들을 가르쳐 보았다. 학생들에게 수학과 과학을 알려주는 것이 내게 맞는 옷이라 생각했지만 내게 알맞은 옷은 아니었다.
무엇이 내게 맞는 옷일까 수 많은 고민 끝에 내게 어울리는 옷을 대전에 와서 찾을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는 수준을 뛰어넘어 아이들 한명 한명 인생에 같이 방향을 잡아주고 삶을 살아내는 것이 내게 가장 알맞은 옷이었다. 내게 멘토가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옷을 입더니 나의 다음세대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지금 나의 인생 중 가장 알맞은 옷을 입었는데 때에 맞는 새로운 옷을 입을 기대가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옷을 입을 때 그 순간을 설레어 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