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닝의 태동
첫 번째 이야기에서 다룬 두 갈래의 이러닝 흐름은 이러닝 기술이 주도했다기보다는 한국 사회의 교육 환경이 형성한 자연스러운 결과로 봐야 합니다. 시험 통과와 합격을 목표로 한 목적 중심의 교육과, 교육학에서 주로 다루는 수월성 중심의 교육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두 가지 큰 갈래입니다. 이 두 가지 교육 방식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에 비해, 이들 교육 체계를 비교하는 학문적 접근이 많지 않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이원화된 흐름이 이러닝 산업계, 특히 콘텐츠 개발을 주로 하던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기업들은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때로는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분화는 한국 이러닝 콘텐츠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의 이러닝 기술은 세계적으로 앞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 시장의 특수성에 맞춘 콘텐츠 개발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일부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5년 한국의 이러닝 시장 규모는 1조 4700억 원으로 성장했지만, 같은 해 이러닝 수출액은 고작 133억 원에 그쳤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이러닝 산업의 급속한 성장과 동시에 나타난 과도기적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이후 산업의 발전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번 장에서는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시장과 같은 목적 중심적인 교육 분야에서 주로 채택했던 동영상 기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2000년대 초반, 일반적인 컴퓨터 사양은 펜티엄 셀러론이나 펜티엄3 정도의 CPU에 32MB에서 128MB 정도의 메모리와 10GB ~40GB 정도의 하드디스크를 장착한 모델이었습니다. 현재 낮은 사양의 스마트폰도 8GB 이상의 메모리와 128GB 정도의 디스크를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컴퓨터의 성능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당시 컴퓨터에는 네트워크 케이블을 연결할 수 있는 LAN 카드와 CD-ROM이 일반적으로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그 무렵 DVD 드라이브도 점차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아직 모든 컴퓨터에 기본으로 탑재되진 않았습니다. 그래픽카드를 별도로 구매해 그래픽 성능을 높일 수도 있었지만, 일반 가정용이나 사무실에서는 많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키보드와 마우스는 PS/2라는 동그란 포트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마우스의 하단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볼이 들어 있어 움직임을 감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컴퓨터는 Windows 98이나 막 출시된 Windows Me를 운영체제로 사용했으며, 문서 작업과 파일 관리를 위한 프로그램들이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소프트웨어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설치된 소프트웨어는 대부분 불법이었지만, 몇몇 인기 소프트웨어는 무료로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MP3 재생을 위해 코원의 제트오디오를 주로 사용했고, 다운로드한 영상을 보기 위해 사사미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윈도우미디어 플레이어도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었지만, 당시 미디어 관련 표준이 정립되기 전이라 사용이 불편하여 널리 사용되진 않았습니다.
당시 인터넷 접속에는 인터넷 익스플로러(IE)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가 더 인기가 있었지만, 유료로 전환된 넷스케이프는 시장 점유율을 잃었고, 무료로 제공된 IE의 사용률이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결국 넷스케이프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로 전환되었으나, 이미 시장은 IE가 장악한 후였습니다.
IE의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한국에서는 Active-X 기술에 대한 지나친 의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웹 기술은 표준화 과정에 있었지만, 브라우저 간의 기술 경쟁으로 비표준 기술이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IE를 기반으로 개발된 웹사이트는 넷스케이프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Active-X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적으로 제공한 기술로, 윈도우 프로그램을 웹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당시 윈도우에서 사용되던 기술을 웹으로 전환하는 데 많은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IE에서만 Active-X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던 것입니다.
미디어 전송기술 시장에서도 브라우저 시장과 유사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스트리밍 미디어 시장에서는 리얼미디어(RealMedia)와 마이크로소프트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습니다. 1995년 리얼오디오(RealAudio)로 스트리밍 시장을 선점한 리얼미디어는 높은 압축률과 안정적인 스트리밍 기술로 초기 우위를 점했으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를 Windows OS에 기본 탑재하고 무료로 제공하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두 회사는 음질과 영상 품질, 사용 편의성에서 경쟁했으며, 리얼미디어의 유료 모델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무료 제공 전략이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결국 리얼네트워크스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고소했지만, Flash와 YouTube의 등장으로 스트리밍 미디어 시장이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주도권을 유지했습니다.
국내 개인 사용자들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를 기피했지만, 2000년대 초반 동영상을 서비스해야 하는 이러닝 업체들은 다른 입장이었습니다. 윈도우와 IE가 거의 독점하던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솔루션을 제외한 대안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체는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를 기반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동영상 스트리밍 수요가 급증하면서, 몇 년 뒤 대부분의 기업은 직접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에서 CDN(Content Delivery Network)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제품에 대한 의존도는 당분간 유지되었습니다.
당시 음악과 영상을 소비하는 방식은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태도였습니다. CD 앨범에 있는 음악을 간단한 프로그램을 통해 MP3로 변환하고, 이를 냅스터나 소리바다를 통해 아무렇지 않게 유통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행위를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권리로 여겼습니다. 영상도 유사한 방식으로 제작되고 공유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2000년 5월 출시된 소리바다는 이듬해 5월 기준으로 하루 평균 25만 명이 이용했고, 한 달간 450만 곡이 교환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각 개인의 컴퓨터에는 많은 음악 파일과 영상 파일이 저장되었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러닝 업체들은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공유 문화에 큰 문제를 느끼지 않았지만, 자신들이 직접 제작한 강의 영상이 이 방식으로 유통되는 것은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DRM(디지털 저작권 관리)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기술은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사용할 수 있었고, 둘 중 하나만 선택하는 것도 가능했습니다.
스트리밍은 재생에 필요한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받아 임시 저장소인 버퍼에 저장하고, 재생 후 삭제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다운로드는 전체 파일을 하드디스크에 저장하여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스트리밍은 저장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바로 재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하면 버퍼링이 생기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다운로드는 한 번 받아 놓으면 인터넷 없이도 재생할 수 있었지만, 용량을 많이 차지하고 불법 복제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닝 업체들은 콘텐츠 보호를 위해 일부 DRM 기술을 활용해 다운로드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스트리밍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2000년대 초, DRM 기술이 동영상 콘텐츠 보호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DRM은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한 기술로, 콘텐츠를 암호화해 허가받은 사용자만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Microsoft, Apple, Adobe, Sony 등 주요 IT 기업들이 각자의 DRM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고, 국내에서도 마크애니, 테르텐 등 보안 기술 기반의 업체들이 각자의 DRM 솔루션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러닝 업체들도 DRM 기술을 도입해 강의 동영상을 보호하려 했지만, DRM은 일종의 양날의 검이었습니다. 콘텐츠 제작자에게는 필수적이었지만, 사용자들에게는 불편을 초래했습니다. 정당하게 구매한 콘텐츠임에도 다른 기기에서 재생이 불가능하거나, 인터넷 연결이 없을 때 다운로드된 콘텐츠도 재생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습니다. 결국 DRM은 콘텐츠 보호와 사용자 편의성 사이에서 계속 줄다리기를 하는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러닝 기업들이 직면한 또 다른 난관은 동영상 제작과 관리였습니다. 당시 이러닝 업체들이 얼마나 많은 동영상을 촬영하고 스트리밍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대략적으로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2000년 초반에 제가 일했던 유비온은 비교적 작은 교육 시장이었던 금융 자격증을 중심으로 사업을 시작해, 이후 자격증 시장으로 확장했으며, 2004년 공인중개사 시장의 급격한 성장으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때 기준으로 한 달에 약 3,000시간의 강의를 촬영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때문에 회사의 동영상 관련 인력들은 촬영과 인코딩 작업으로 매우 바빴습니다. 수능이나 공무원 시험 시장에 진출한 더 큰 기업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동영상을 제작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월 10,000시간의 콘텐츠를 기준으로 하면, 하루에 약 400시간의 콘텐츠를 제작해야 합니다. 여러 교실에서 하루 10시간씩 촬영한다고 가정해도 약 40개의 카메라가 필요하고, 백업을 고려하면 80대의 카메라가 끊임없이 촬영을 해야 합니다.
녹화된 테이프를 인코딩센터로 옮겨, 공장처럼 인코딩 작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테이프에 2시간의 영상이 기록되었다고 가정하면, 매일 약 200여 개의 테이프가 인코딩되어 디지털 파일로 변환되어야 했습니다. 당시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더라도 모든 영상이 6mm 또는 4mm 테이프에 저장되었고, 이 테이프의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형식으로 변환하는 인코딩 과정이 뒤따랐습니다. 인코딩은 테이프를 재생하고, 비디오 캡처보드를 통해 컴퓨터로 영상을 전송한 후, 디지털 파일로 변환하는 단계를 거쳤습니다. 1시간짜리 동영상은 1시간 동안 재생하며 인코딩 과정을 거쳐야 했으므로, 200여 개의 테이프를 처리하는 데만 400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하루 10시간을 기준으로 운영된다고 가정하면, 40세트 이상의 인코딩 장비와 컴퓨터가 필요한 셈입니다. 유비온은 약 20대의 인코딩 장비를 보유하고 있었고, 더 큰 기업들은 아마도 100대 이상의 인코더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대규모 인코딩 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자체 워크플로우를 개발하고 자동화하는 것은 이러닝 기업들에게 자원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메가스터디는 '메가인코더'라는 자체 개발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인코딩 과정을 자동화했습니다. 유비온도 규모는 작았지만 유사한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했습니다.
이러닝 업체들은 동영상 서비스의 가장 큰 문제이자 고객의 주된 불만이었던 버퍼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해결이 요원해 보였던 이 문제는 다른 IT 분야에서 해답을 찾았습니다. 버퍼링 문제는 이러닝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음악, 영화, 게임 등 더 큰 규모의 주류 콘텐츠 산업에서도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습니다. 해결책은 CDN(Content Delivery Network) 서비스였습니다. CDN은 이러닝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동영상 스트리밍의 버퍼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CDN 기술이 적용되면서 동영상 전송 속도와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사용자가 동영상을 요청하면, CDN은 사용자와 가장 가까운 서버에서 콘텐츠를 전송하여 데이터 전송 거리가 줄어들고 버퍼링이 감소했습니다. CDN의 주요 장점으로는 빠른 전송 속도, 안정성 향상, 트래픽 분산, 글로벌 서비스 가능 등이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대형 통신사들보다 먼저 몇몇 전문 CDN 서비스 기업들이 등장했고, 이들 기업이 이러닝 업체들에게 CDN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안정적이고 고품질의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해졌습니다. 특히 피크 시간대 트래픽 관리나 대규모 동시 접속 처리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만, 초기 CDN 서비스 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대형 이러닝 업체들이 주로 도입했으나, 이후 중소 업체들도 CDN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CDN 도입으로 이러닝 서비스의 품질이 크게 향상되면서, 사용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졌습니다. 이는 이러닝 산업 전반의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0년대 초반은 이러닝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도전과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당시 사용된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인터넷 브라우저, 미디어 전송기술, DRM 기술, 그리고 동영상 제작과 인코딩 과정은 이러닝 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배경과 발전 과정을 통해 이러닝은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이유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다음에 다뤄질 콘텐츠를 주제로 한 글에서 수월성 중심의 교육 분야에서 주로 채택했던 플래시 기술을 활용한 상호작용성 콘텐츠 제작 방식과 SCORM 같은 표준의 활용에 대해 다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