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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카 May 30. 2023

낯선 언어를 대하는 자세

낯선 장소 그리고 낯선 언어

인생을 살다 보면 기쁨, 슬픔, 분노와 같이 다양한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감정은 바로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잠시라도 엄마가 자리를 비우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들만 봐도 곁에 엄마가 없다는 사실로 인한 두려움은 아이에게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연히 터득하게 되기 때문이다.


엄마가 곁에 없다는 두려움,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의 두려움, 낯선 사회로 발을 내딛을 때의 두려움처럼 모든 두려움은 그 대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서 생기기보다는, '잘 알지 못한다'는 무지의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무지에서 기인한 두려움은 평상시에는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깊숙이 숨어있다가도 그 대상을 마주하게 되면 가장 먼저 달려 나와 우리의 심장을 마구 때리고 두 눈이 흔들리게 만든다. 아마 고장 난 로봇이 감정을 가진다면 분명 이런 기분일 것이다.



두려움은 언어를 대하는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영어를 잘 알고 능숙하게 대화가 가능하다면 외국인을 만났을 때 자연스럽게 그들과 대화를 나누겠지만, 영어를 잘 모른다면 그들이 하는 말소리는 들리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원어민과 대화한다는 것이 굉장히 버거운 일이 될 것은 자명하다.


비장애인들이 외국어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다면,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수어가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해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이런 두려움을 가지게 한다. 낯선 이들과 대화하는 것에서 오는 두려움보다는 "내가 이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지? 상대가 나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다.


비장애인들과 대화하는 것은 언제나 외국인들과 대화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의 말을 하나라도 더 알아내기 위해서 애써야 했으니까. 마치 한국 드라마는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대사가 잘 들리지만 외국 드라마는 집중해서 들어도 영어 단어 자체를 모르면 들리지 않는 상황이라면 이해가 금방 될 것이다. 물론 지금은 수술과 듣기 훈련의 시간들 덕분에 소리로도 말의 의미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소리가 작거나 빠르게 지나가는 한국어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신경 써서 들어야 겨우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부모님과 함께 낯선 이국에서 외국어로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튜브가 있어야 물 위에서 동동 떠다닐 수 있는 사람에게 튜브 없이 헤엄쳐서 목적지까지 오라는 말처럼 아찔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차피 한국사람 말도 못 알아들었었는데 외국인 말 못 알아듣는 것쯤이야 뭐 어때? 굳이 대화를 한다면 바디랭귀지를 쓰고, 번역기를 돌리면 되지!"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두려움에 맞서기로 했다.



그렇게 당당하게 외치며 떠난 괌이지만 막상 마주하는 이들이 자연스레 걸어오는 대화들은 언제나 등줄기를 찌릿하게 만들었다. 단어를 알아들어야 대화가 될 테니 내 곁에는 그나마 귀가 트인 아빠가 함께 있었다. 하나보단 둘이 낫지 않은가! 아빠가 들은 단어를 말해주면 나는 내가 아는 단어들로 대화를 이어가거나, 아빠와 나 둘 다 모르는 경우에는 번역기를 써가며 소통을 했다.


자연스러운 듯 자연스럽지 않은 대화를 이어가는 나날들이 이어지려나 싶었건만, 여행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라 했던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을 건 비치에서 마주했다. 우리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해 주던 서버는 그의 곱슬머리를 더욱 탄력적으로 보이게 해주는 진한 검은색의 머리카락과 건강해 보이는 구릿빛 피부 그리고 푸근한 미소를 가진 남자였는데 그는 마치 디즈니사 모아이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마우이 같았다.


서빙 내내 친절하던 그는 결제를 할 때도 친절했는데, 결제를 하러 함께 걸어가는 내내 나에게 스몰토크를 건넸다. 내게 정확히 어떤 말을 건넸는지 모르겠지만 그 긴 문장 속에서 내가 알아들은 단 하나의 단어, 'GOOD'과 그의 표정으로 보아 식사에 만족했냐는 질문 같아서 좋았다고 대답했다. 이로써 끝맺을 대화가 아니었는지 그는 계속해서 나에게 말을 걸었고 점차 나는 동그란 눈을 뻐끔거리는 금붕어가 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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