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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인 Jan 29. 2024

이뭐꼬

손으로 쓰는 글

분명히 멀리서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가부좌를 튼 다리는 쥐가 난지 오래고. 눈은 감아보기도, 반쯤 떠서 방바닥 어딘가를 응시해보기도 했다. 사찰에 머물며 평생 처음 복식호흡을 해보고. '이 뭐꼬'라는 간화선 화두를 받아 들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내려가면 치킨에 맥주나 한 잔 하고 싶다'는 등 아무런 생각들이 아무렇게나 내 의식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계속 잡생각에 빠져있다 어느 순간 평소에 안 들리던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모두 멀리서 오는 소리들이었다. 처음에는 방 안에서 들리는 잡음, 예컨대 누군가 다리를 살짝 펴는 동안 나는 옷깃 스치는 소리, 나지막하게 내뿜는 한숨 등만 들렸다. 그러다 마치 소머즈가 된 것처럼 귀가 점점 열려 문 밖, 사찰 밖에서 나는 여러 가지 헝클어진, 그러나 질서 있고 정갈한 자연의 소리에 가닿게 되었다. 바로 그때 제일 처음 들었던 소리가 계곡물 흐르는 것처럼 굽이치고 휘몰아치는 거친 소리였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계곡물 일리가 없었다. 사찰 밖에 있는 계곡물은 겨울이라 거의 말라있었을 뿐만 아니라 꽝꽝 얼어있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을 두려움과 무서움 속으로 잠시 데려가던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시간이 지나며 좀 더 자세히 듣게 되었을 때였다. 그것은 나무가 거친 겨울바람에 저들끼리 이리저리 사납게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였다. 그것이 내 귀에는 마치 굽이치는 거대한 계곡물이 흘러내려가는, 쿠쿵하며 땅을 울리기까지 하는 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나무가 사정없이 부딪치며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자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무서웠던 건 정말 그 거친 계곡물소리, 아니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 안에 숨어있던 정체 모를 두려움이었을까? 이따금 오늘처럼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그때 사찰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와 '이 뭐꼬' 하고 있던 어리숙한 젊은 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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